™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정신없이 보낸 이틀을 돌아보며

카잔 2013. 10. 20. 01:30

 

1.

순식간에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이 지났다. 입원 중인 친구가 내게 전화하여 비보를 전해 준 것은 금요일 오후였다. 나는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서 녀석을 차에 태웠다. 그가 홀로 힘겨워할 것이 뻔하여, 병원에서 외출시켜 나의 일정에 합류시킨 것이다. 우리는 인사동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친구와 잠시 헤어진 나는 안동에서 온 귀한 손님을 잠시 만났다. 그리고서 다시 친구를 만나 이후의 시간을 쭈욱 함께 보냈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친구가 입원 중인 병원에서 잠을 잤다. 피곤했는지 친구가 편하게 잠드는지도 모른 채, 침대 옆 보조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토요일 아침에 먼저 눈을 뜬 덕분에 친구의 잠자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고통없이 곤하게 잔다. 그랬기를 바라는 내 마음 뿐인지도 모르겠다. 대구로 내려가는 친구를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왔다. 녀석을 꼬옥 안아주고 돌아서면서, 나는 울었다.

 

2.

간밤에 보조 침대가 불편했나 보다. 눈을 붙인 시각은 6시간 이상인데, 잠이 부족할 때 찾아드는 눈 시린 증상이 느껴졌다. 낮잠을 잘까 하다가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실은 만사 제쳐두고 오침 즐기기가 내 주특기인데, 오늘은 주특기 발휘도 안 됐다. 친구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꼬인 일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둘 다 겠지. 

 

3.

오후에는 유니컨 수업을 진행했다. 3시간 짜리 수업인데, 알찬 시간으로 채운 것 같아 뿌듯했다. 흐트러진 마음을 내색 않고 수업에 집중한 것이 만족스럽다. 어지러운 마음이었기에 평소보다 외모에도 신경을 썼다. 딴엔 말끔하게 차려 입었다. 힘들 때에는 슬픈 기색을 띠고 거리를 서성이지 말고 곱게 화장하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4.

저녁에는 다시 안동 손님을 만났다. 어제의 짧은 만남에 양해를 구하여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석촌 호수를 산책했고, 안동에서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 본래 삶의 거처는 브라질이고, 지금은 안동에 계신 노모를 모시기 위해 당분간 한국에 들어와 계신다.) 맛난 안주에 소주를 곁들여가며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5.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35분. 휴식하면서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전 하이라이트를 보고서, 집안 정리정돈을 하고 나니, 새벽 1시 30분이 되었다. 하루가 어찌 흘러갔나, 들여다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깜빡 졸았다가 눈을 뜨며 확인한 시각이다. 얼른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스케치했다. 잠이 쏟아져 색깔을 입힐 시간은 없다. 그렇게 쓰인 게 이 포스팅이다. 

 

이틀을 보내며 들었던 생각을 정리한다. 생각의 출처와 과정은 생략하고서. 

- 어서 외할머니와 여행을 떠나자. 만사를 제쳐두고! 지체하면 놓치고, 놓치면 후회한다.

- 이기심을 제어하고 사랑을 발휘하여 친구에게 시간을 주자. 최고의 사랑은 함께함이다.

- 고품격의 매너를 잃지 말자. 상대가 매너를 모르거나, 서로 주고받음이 아닐지라도.

 

매너 얘긴 설명을 덧붙여야겠다. 나는 오늘 수업 후에 와우들과 90분 동안 당구를 쳤는데,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 우리 팀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수구를 살짝 굴려 적구 하나만 맞쳤다. 이것은 스포츠맨십과는 정반대의 비겁한 행위였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다. 나의 비겁함에 매우 부끄러웠다.

 

6.

내일 일정도 많다. 오전에 와우와의 식사, 브런치는 아트100 프로젝트 글쓰기 팀과의 만남(인데, 대상이 모두 와우들이다), 오후에는 와우팀원 미팅, 저녁에는 대구에서 올라오는 친구 마중. 모처럼만에 바쁜 휴일이다. 예배를 언제 드려야 하나, 시간경영이 필요한 날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아쉽지만, 나의 바람이 빨리 실현되어 신기하기도 하다.

 

주중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당분간 와우들을 자주 만나야겠다. 최근 와우들과의 만남에 소홀했으니.'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기도 하는데, 생각에 이어 시간차 없이 생각한 대로의 인생이 찾아오면 놀라우면서도 생각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곤 한다. (물론 인생은 매우 큰 존재여서,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는 모습도 지녔다.)

 

7.

이제 샤워를 하고서 잠들어야겠다. 1번 글을 쓰기 시작한지 40분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제 오늘의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뒤돌아보기엔 귀한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유익한 일인데, 자기 인생을 읽는 것은 더욱 유익하다. 책은 종종 나의 관심사를 벗어나거나 기질을 무시한 조언을 건네지만, 각자의 인생이 주는 조언과 피드백은 적합하고 정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