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전남대, 강의력 실습 & 피드백

카잔 2013. 9. 14. 23:46

 

1.

전남대학교에서 개설되는 교양강좌 <생애와 직업설계>의 첫수업을 매학기마다 진행해왔다. 벌써 6년째다. 매년 불러주는 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지금도, 그리고 어제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도 문득 문득 그랬다. 일상 속에서 고마움을 잡아채어 느낀다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느낀다. 기분이 좋다.


인기가 많은 강좌라 두개의 분반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처음으로 반 하나를 더 늘려서, 세 분반이 되었다. 같은 강의를 세 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전할 '강연 주제'에 함몰되면 같은 강연을 세 번 한다는 것은 지루한 고역이 될 테지만, 내 앞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집중하면 세 번의 강연은 곧 세 번의 축제가 된다.


과장과 거짓된 마음은 없다. 그들의 눈은 정말 초롱했고, 나는 진정 축제처럼 즐겼다. 빼곡히 적어낸 강연 후기를 읽으며, 어떤 내용이 그들에게 유익했는지를 확인하며 30분의 쉬는 시간을 다음 강연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사실, 강연에는 이런 열심을 내지 않는 편인데... 전남대 학생들의 열정에 감염이 되었나 보다. 내게도 어느 정도의 공은 있을 테고.


여러 학생들로부터 강연이 좋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블로그 댓글로, 메일로. 전화번호를 공유하지는 않았으니 문자 메시지는 없었다. 문득 며칠 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팀장님은 와우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예요. 팀장님 키 높이보다 높은 벽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 같아요." 요즘 자주 떠오르는, 나에 대한 피드백이다. 


옳은 피드백이다. 그래서 아픈 피드백이다. 수긍하는 말이기에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말이다. 어찌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까지 만들어버렸을까. 자책하지 않는다.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지, 자책하며 그간의 노력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대목까지 허물어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얻은 것은 독립성, 내면세계의 안정, 얼마간의 지식과 전문성이다. 잃은 것은 폭넓은 인간관계, 다양한 경험과 도전이다. 당분간은 다르게 살아보자.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기 직전까지는 역발상으로 생각하고,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 내년 봄 학기의 수업 후에는 몇몇의 전남대 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해야겠다. 이 글을 읽은 학생들과.


2.

오늘은 유니컨 수업이 있었다. 강의력 첫 실습이 있는 날이었다. 늦봄부터 강의력에 대한 수업을 해왔고, 가을을 통해 각자가 예비강사로서 오디션을 하는 셈이다. 글쓰기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던 이도 관심과 비전을 갖게 되었고, 대부분의 유니컨들의 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발전과 성장을 보수적인 측정을 하는 내 눈에도 말이다.


글쓰기만큼 향상되어야 할 텐데, 하는 것이 나의 최소치 목표였다. 사실 강의력은 유니컨들에게 글쓰기보다 중요한 영역이다. 자기경영 분야의 강사를 꿈꾸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늦어도 내년 봄에는 '와우스토리연구소'의 주요 강연을 론칭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나의 중간치 목표다. 최대치는 머잖아 그들이 1인기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고.


수업을 진행하며 매우 흡족했다. A는 주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청중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만든 사례는 주제와 꿰뚫고 청중의 마음에 가 닿는 훌륭한 사례였다. B는 감성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무엇이지를 보여주는 멋진 시간을 만들어냈다. 자기다움이 빛났고, 세련되고 안정적인 진행이 돋보였다. 그의 시리지 강연이 기대되었다. 


C는 순수함을 가진 강사다. 그는 많이 긴장했다. 실력 발휘를 못할 만큼 긴장한 탓에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다 펼쳐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제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엿보았다. 열정과 순수함... 이것에 강의력과 전문성이 뒷받침되면 그것은 와우가 추구하는 강사의 모습이다. D는 강의 준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3.

두 명의 유니컨들이 나의 피드백을 이해 못한 눈치다. (그럼에도 나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어 나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나는 내가 가르친 것들을 반영하지 않은 강연에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어떤 이는 내가 후한 피드백을 주었다고 여겼다. 나는 후하지 않았다. 내가 강조한 것들 외에도 강연에 포함되면 좋은 훌륭한 요소는 많으니까. 

 

몇달 간의 강의력 수업을 통해 내가 가르친 것은 청중을 돕기 위한 '기본기와 노하우'였다. 나는 물론 기본기를 탄탄히 익혀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다운 길을 개척해 가기를 바란다.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기, 당연히 닦아가야 할 자신만의 빛, 내게는 두 가지 모두 당위다. 기본기에 충실하되, 자기다움도 발휘하라! 이것이 선생의 주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 그들의 열정을 더욱 불사르고, 한 걸음 더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열정과 방향 제시를 위해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일반론이 아닌 개개인에게 적합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은 피드백의 때와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피드백은 한 사람을 향한 애정과 이해, 피드백하려는 주제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성장의 원리에 기반한 때와 장소를 선택하는 지혜가 어우러져야하는 가르침의 정수다. 피드백의 기술에 한 두 마디로 설명하는 일은, 내게 불가능하다. 그저 피드백하려는 상황마다 세 가지 피드백 기준을 머릿 속에 상기시키며 최고의 피드백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해와 애정은 내 피드백이 그의 기질과 강점을 반영했는지를 분별한다. 

지식과 통찰은 잘못된 방향제시를 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줄여준다. 

피드백 시기와 장소의 선별은 피드백이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도록 돕는다. 

 

피드백에 대해 쓰면 쓸수록, 나의 최상주의가 피드백이라는 행위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이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진정성이 있는 피드백이라면, 비록 세 가지 조건을 위반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최고를 향한 집요한 노력이 실행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하고 온전함에 가까워지니까. 

 

피드백, 때로는 매처럼 내리쪼아야 한다.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의 변명이 궁색해지도록 집요하게 파헤쳐야 한다.

그의 삶에 번개가 쳐서, 허접한 것들, 가식된 것들이 쪼개지도록.

 

피드백,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그가 피드백 위에 거닐 때마다 행복하도록 따뜻해야 한다. 

되씹으며 음미할수록 기쁨에 넘치도록 달콤해야 한다. 

그가 태어날때부터 가진, 멋지고 가치 있는 것들이 발휘되도록.

 

매가 되던, 솜털이 되든 그것은 진솔해야 한다. 

거리에서 솜털을 주워와서는 안 된다. 그에게서 발견해야 한다. 

하늘에서 매를 잡아와서도 안 된다. 내 안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매가 되고, 솜털이 되고 싶다. 내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