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부끄러움, 열심 & 출간 의뢰

카잔 2013. 12. 12. 23:57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했다.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야밤인데도 초코바 하나를 먹었지만, 입맛이 없어서인지 달콤한 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서 하루를 돌아본다.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공존하는 하루였다. (초로에 접어들 즈음, 나의 인생을 돌아볼 땐 뿌듯함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_

 

1.

밤 9시 이후에는 (가급적) 음식을 먹지 말아야지! 건강을 위해 세워놓은 작은 원칙이다. 식욕은 강력한 유혹이지만, 내겐 건강을 향한 욕심도 있어서 그럭저럭 잘 지켜가는 편이다. 원칙은 잘 지켜질 때 빛 나는 법! 

 

하지만 원칙 안에 슬그머니 끼어든 '가급적'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철저히 지켜내는 편은 못 된다. 욕구에 굴복하고 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죄책감일 것이다. 요즘엔 죄책감 대신 부끄러움만 느끼려고 애쓴다.) 오늘은 식욕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욕구에 나를 내어주어 부끄러운 날이다.

 

2.

부끄러움을 상쇄시키고 싶은 걸까?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몰입하여 글 하나를 다듬었고(마음만큼 잘 매만져진 건 아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시는 분을 만나 2시간 30분에 이르는 미팅을 가졌고, 저녁에는 <인문소양과 인문주의>를 주제로 강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피곤함을 달래며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을 읽었다. 피곤함을 참으며 독서했다는 말이 아니다. 독서를 함으로써 피곤함을 덜어냈다는 의미다.

 

3.

2012년 4월 11일에 탈고한 원고를, 이제야 출판을 결심하고서 출간을 의뢰하는 메일을 썼다. 글을 쓰고 퇴고하고 탈고하면서 이미 성취감을 흠뻑 느껴서일까? 메일을 보내고서, 살짝 후련하긴 했지만 기쁨이나 성취감은 없었다. 아마도 내게 글쓰기의 보상은 글쓰는 행위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출간과 인세는 보너스라고나 할까. 

 

그런데 난 지난 해에 완성한 원고를 왜 이제야 보낸 것일까. 부지런히 원고를 매만졌던 것도 아니고, 관련한 공부를 하여 내용을 보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미뤄왔다. 이 미룸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있기나 할까? 퇴고도 하지 않으면서 출간하지도 않은 까닭은 이를 테면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데에 차가 무지막지하게 밀렸다. 상대도 교통체증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얼마나 밀리는지 어느 정도나 늦을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 채로 기다린다. 약속 시간은 2시다. 길눈이 밝은 나는 이곳만 통과하면 뚫릴 것 같아 연락을 잠시 뒤로 미룬다. '잠시'가 쌓이고 쌓여 결국 2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연락을 한다.

 

나는 다음 달에 보내지, 라고 생각해 왔다. '다음'이 쌓이고 쌓여 1년 9개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