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자유!

카잔 2013. 12. 24. 22:18

 

1.

이리 될 줄은 몰랐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시간을 혼자 보냈다. (역시, 예측불허의 인생이다.) 오후 네시 즈음, 나는 헤이리의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결정한 일이 일상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은 괴롭고 마음 아플 것 같아 조르바 원고쓰기에 몰입했다. (비도덕적이거나 몰염치한 일을 저지른 건 아니다. 일상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결정을 하나 했다.) 카페에는 여러 연인들이 오고 갔다. 카페에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 이는 나 뿐이었다.

 

한길사 북하우스에 들어서는데, 예전에 연인과 함께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샀던 추억이 떠올랐다. 산다는 것은, 특히 점점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이별이 잦아지는 과정이고, 이별한 이를 떠올리며 싸한 가슴을 어루만지는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갤러리아팰리스 앞 짧은 벚꽃길, 삼청동은 구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장소고, 한길사 북하우스는 연인이 추억되는 장소다. 그리움도 추억도 시간 속에서 옅어질까? 그렇다면 다행인 걸까, 아닌 걸까?

 

적어도 낭만주의자들에겐 아쉬운 일이다.

그들은 그리움, 추억, 자연 등의 단어를 좋아하니까.

 

2.

북하우스에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감상적인 느낌에 빠진 것은 아니다. 자주 왔었던 카페라 잠시 슬픈 추억에 잠겼던 거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라 일상적인 어느 평일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말이다.) 나는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위로, 평안을 줄 만한 책을 고르고 있었다. 미술 서적을 뒤적거렸고,  재즈와 클래식 서적을 들었다 놓았다.

 

두 권짜리 반 고흐 평전을 샀다. 마음에 드는 클래식 서적도 있었지만, 한길사 책이 아니라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문하기로 했다. 이론서 세 권도 구입했다. 『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는 아프리카 권의 소설들을 다룬 탈식민주의 문학 비평서다. 『존재와 공간』은 하이데거의 사유를 중심으로 '공간'을 탐구한 철학서고, 『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아서 단토의 예술론이다. 미학은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다.

 

3.

크리스마스 이브여서겠지? 걸려온 전화도, 카톡도, 메일도 적었던 하루였다. 매일 이러면 외로워지겠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이런 자유가 좋다. 매주마다 하루씩 주어지면 좋겠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주어지기를 바라다니! 삶에는 주어지는 게 있는가 하면(성격, 부모님, 가정환경, 고향, 신의 섭리 등),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일상 속의 자유는 후자일 텐데, 나도 모르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음을 바꾸자. 그리 살자고! 

 

저녁 식사는 북하우스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맛났다. 잠깐 읽은 책도 즐거웠고 한 시간 남짓의 원고를 쓴 시간도 쏜살같았다. 나는 시간의 매혹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달콤하게 보냈다. 기분이 좋다. 이것은 자기기만이 아니다. 시간을 자기 곁으로 만든 이의 순전한 기쁨이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간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가는 길이 막힐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탄절이 시작되는 12월 25일 0시를 집에서 편안하게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