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의미, 지혜 그리고 용기

카잔 2014. 1. 17. 15:42

 

어젯밤,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독서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나는 땀을 많이 흘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땀이었다. 실내가 더운 것도 아니고 긴장한 자리도 아니었는데, 땀이 왜 났을까? 오늘 아침, 눈을 뜨며 무거운 몸을 느끼면서야 컨디션이 좋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귀가길이 살짝 피곤하긴 했다.

 

아침을 눈을 뜨니 9시 15분. ‘아이고야, 큰일이네.’ 약속시간에 늦을 타이밍이었다. 몸이 피곤하고 말고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중요한 만남이었고, 만남을 연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이동했지만 30분 이상 늦었다. 3시간 시간을 내었기에 2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미안했다. 이해해 주어 고마웠고. (와우팀원이었다.)

 

웬 늦잠? 6시간 잠자는 것으로 알람을 맞춰뒀지만, 듣지도 못했다. 7시간 30분을 잤다. 내 몸이 원하는 수면의 양이었을 것이다. 몸이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는 훌륭한 자기경영이다. 어젯밤,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입이 심심하고 배가 고팠지만 입의 요구보다는 몸의 필요에 따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입은 맛난 것을 달라고 떼쓰지만, 몸은 다른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욕심이 우리를 과로로 몰아갈 때, 몸은 충분한 수면과 적당한 휴식을 말한다. 맛난 음식 앞에서 입은 과식을 유혹하지만 몸은 적당한 섭취를 부탁한다. 문제는 부탁보다 유혹이 강하다는 점이다. 지금 내 몸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휴식일까? 일일까? 건강한 음식일까? 맛난 군것질거리일까?

 

(최근 몇 개월 동안, 살이 빠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밤에도 살찔 만한 것을 먹곤 하지만, 일시적인 일이다. 평소, 10시 이후의 취식은 드물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많이 걷고, 일하는 도중에도 자주 스트레칭을 한다. 식사를 할 때에도 몸의 필요를 생각하며 건강한 먹거리인지를 묻는다.)

 

2014년 들어서 많이 잤고, 많이 쉬고 있음에도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다. 연초에 비해 기침이 잦아들긴 했지만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 와우팀원과 헤어지면서,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몸을 누이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고민이 든다. 이것은 몸의 필요인지, 안락하고 싶은 마음의 유혹인지.

 

강남역 지하철 게이트 앞까지 가서 난 멈춰 섰다. ‘일도 많이 밀렸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분 동안 갈등하다가 발걸음을 돌려 1번 출구 계단을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많은 이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인파를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결국 역삼동 주민센터 인근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왠지 한적할 듯해서 선택한 곳인데, 스타벅스 앞에 다다를 때 즈음 은근히 기분 좋았다. 창가 쪽에 길게 늘어선 1인석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좋다. 한적해서.’ 나는 지금, 여기에 세 시간째 앉아 내일 수업을 위해 책을 읽었고 자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 글을 썼다. 쉼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일을 선택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쉴 새 없이 움직여야만 생산적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위와 휴식의 가치도 신뢰한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거나 요즘의 컨디션에 불만을 품고서 무리한 것도 아니다. (나는 잠을 좋아한다. 할 일만 없다면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과 독서를 반복하고 싶다.) 그런데, 왜 집 대신 스타벅스를 선택했고, 선택의 과정에서 고민을 했나?

 

그것은 일과 쉼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균형을 찾으려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법과 맡은 일을 책임 있게 완수하는 태도를 익혀야 한다. 안락함이 책임을 침범해서는 안 되고, 일 욕심이 몸의 말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오늘 나의 고민은 일과 쉼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앞서 나는 이렇게 썼었다. “쉼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일을 선택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일이 쉼보다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행복이 증가한다는 러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쉼이 일보다 항상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지혜는 특수성 속에 존재한다. 필요한 것이 그때그때 달라지니까.

 

쉼이든, 일이든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의미다.

그 필요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다. 원함이 아닌 필요를!

지혜를 실천해내는 박력이 곧 용기다. 용기가 실행을 이끈다.

나는 의미, 지혜, 용기를 추구하고 살고 싶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