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나의 초상 (6)

카잔 2014. 3. 17. 10:45

 

1.

메일의 내용을 다 쓰고 나면 곤혹스러운 일이 남는다. '어떻게 끝맺어야 하나?' 항상 건강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강이나 행복을 기원할 때에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더욱 건강하세요, 혹은

자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불교 경전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는 말이 나온다.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고 탐욕이 빠지면 도에서 멀어지기 까닭이란다. 내가 인삿말을 신중히 고르는 것은 도에서 멀어질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실제로 인생살이에 병 없이 사는 사람이 없고, 좋은 일만 벌어지는 인생은 없는데, 그걸 뚜렷히 목격하면서도 "좋은 일만 생기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허망하기 때문이다.

 

2.

나는 언제 책을 읽는가? 잠들기 전에 읽는다. 피곤하면 몇 장 읽지 못하다가 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에 읽다가 머리맡에 둔 책을 읽는다. 아침 일정이 있으면 그 호사를 누릴 수가 없기에 왠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아침 일정을 잡지 않는 편이다. (와우팀원과의 만남은 왠만한 일이다.)

 

강연이 있는 날이나 외부 약속이 있으면 아침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외출하기 전, 메일 회신, 블로그 포스팅을 비롯한 일상의 일들과 강연 준비, 와우들의 글 읽기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있기에. 하지만 외출은 나의 또 다른 독서의 장(場)이다. 이동시간은 책 읽기에 맞춤한 시간이다.

 

지하철을 애용하는 내게 흔들림 없는 지하철은 좋은 독서 공간이다. 지하철이 가는 곳이면 40~50분 동안 이동해도 괜찮다. 외출하는 것이 귀찮지, 일단 나서면 기동력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반면 모임 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책 읽는 것이 내겐 모임 후의 쉼과 재충전이고, 기쁨이니까. 

 

3.

무엇을 하고 싶은가. 글쓰기, 여행, 독서, 강연 그리고 달콤한 사랑

무엇이 되고 싶은가. 작가, 문학비평가, 훌륭한 강사, 탁월한 리더

무엇을 갖고 싶은가. 좀 더 넓은 서재, GLA, 와인셀러

어디에 가고 싶은가. 그리스, 피렌체와 로마, 미국, 영국, 청산도, 거제, 통영, 안동

어디에 살고 싶은가. 삼청동, 헤이리, 능내리, 바이마르, 몽펠리에, 아테네, 로마

 

4.

2014년 2월 28일 그리고 3월 4일, 이틀은 집으로 돌아와 세수하며 깜짝 놀란 날들이다. 헤어스타일의 촌스러움이 극한의 경지에 달했기 때문이다. 헤어컷 할 시기가 훨씬 지난 것도 한몫을 했다. (미용실을 싫어하는 난, 덥수룩이 절정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해 가곤 한다.) 나의 헤어스타일이 풍겨내는 이미지는 빈티, 덥수록, 꾀죄죄.... 등 내가 봐도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을 더한 것은 이틀 모두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점이다. 강연은 혼자 극장에 다녀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어두운 곳에 홀로 있다가 와도 모자랄 판에 불빛 밝은 곳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잔뜩 받고 왔으니까! 하필 그런 날의 내 외모가 저 모양이었다니!

 

사실 이런 일, 한 두 번이 아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모습을 '나의 초상'에 적어 두는 까닭은 나의 일면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하겠다.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내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사람. 물론 우리에겐 만족과 인정이 모두 필요하고, 둘의 조화를 이루면 더욱 멋진 삶을 이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한쪽에 우위를 두며 산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겠다는 결단이나 의지이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을 지향하게 되는 본연의 기질이다. 

 

'내면의 만족'이 자연스러운 이들은 옷차림보다는 태도를, 스펙보다는 실력을, 명예보다는 자유를 추구한다. 내가 이런 쪽이다. 나의 강점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인정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인정 추구자들은 외모, 옷차림, 스펙,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헤어스타일을 다듬을 시간에 오늘의 강연에 대해 하나라도 더 생각하자는 쪽이다. 만족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더 옳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취향과 가치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조화가 중요하다. 내게는 스스로 간과하기 쉬운 옷차림, 스펙, 명예,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이 어려웠다. 한마디로, 나는 좀 더 외모를 가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5.

몽테뉴는 『수상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친밀하게 사귀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품위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는 분들이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는 무슨 화제라도 좋다. (중략) 아름답고 정숙한 부인과 갖는 교제도 나에게는 포근한 기쁨이다." (『수상록』의 손우성 번역본은 완역판을 선사한 점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감사하지만,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프랑스어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몽테뉴와 같은 심정이다. 지적인 교류를 원하고, 지적인 이들과 우정을 쌓아가고 싶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알고, 인문정신을 추구하며 문학과 역사의 고전들을 읽어가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더 깊은 지성의 세계를 보여 줄 스승을 만나고 싶다. 배수경 선생님이 나를 인문고로 이끄셨다면, 인문학의 지성소로 나를 이끌어줄 선생님을 나는 만날 수 있을까. 지적이면서도 정서적인 교감을 하게 될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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