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에피쿠로스를 읽을 필요가 있는가?

카잔 2014. 4. 1. 15:32

 

쾌락주의로 유명한 에피쿠로스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주요한 오해는 그가 무분별하게 쾌락을 추구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그가 설립한 '정원' 공동체는 여자와 노예 뿐만 아니라 창녀들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는 다분했다. 하지만 실제의 에피쿠로스는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의 해방'의 수단으로써 쾌락을 추구했을 뿐이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우주의 본성에 대해서도 글을 썼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윤리에 대한 주장들이다. 그는 많은 책을 썼다고 하나, 온전히 전해지는 책은 한 권도 없다. 그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3세기의 그리스 철학자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기반한다. 이 책에는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담고 있는 편지와 글이 실려 있다. 그 중 욕망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언급을 일부 정리해 보았다. 

 

-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하라. 자족이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 이로운 욕망과 해로운 욕망을 분별하여 사려깊게 선택하라.  

- 정직한 자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부정의한 자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 필연적 욕망과 해를 끼치지 않는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켜라. 해로운 욕망은 완강히 거부하라.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민주주의가 해체된 그리스의 몰락기였다. 개인들의 행복이 위협 당했다. 그가 개인적 행복을 강조한 시대적 배경이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이 해소된 상태, 즉 쾌락에도 쾌락의 질적 차이를 구분했다. 지속적인 쾌락인가, 육체에 유익을 주는 쾌락인가 등을 따져 물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의 제거에 관심이 더 많았던 사상가였다. 다음을 보자.

 

- 인생의 한계를 배운 이는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

- 총족되지 않더라도 고통을 주지 않는 욕망은 추구할 필요가 없다. 

- 우리에게 오랫동안 큰 해를 준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악습을 완전히 몰아내자.

- 고통의 제거가 곧 쾌락의 크기를 결정한다.

 

에피쿠로스는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 그가 무분별한 쾌락 추구자라는 오해가 무용한 것은 아니다. 당시 유행했던 퀴레네 학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퀴레네 학파에게 쾌락은 '순간적이고 동적인 쾌락'이다. 그들의 인생 목적은 가능한 즐거운 순간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다. 쾌락의 원천이 무엇이든 묻지도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질을 따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의문이 든다. 에피쿠로스는 어찌하여 그토록 오해에 휩싸이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쾌락의 추구'와 '현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사상이 기독교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스티븐 그린브랫 교수는 "초기의 기독교는 에피쿠로스 사상을 사악한 위협으로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에피쿠로스에 대한 오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의 책 『1417년 근대의 탄생』4장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에피쿠로스의 현재성은 분명하다. 1) 그가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분해된 것은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감각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2) 건강한 즐거움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 그는 쾌락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며 모든 욕망을 따르지 말고 추구할 욕망을 사려깊게 선택하라고 권한다.

 

3) 그는 자연과학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자연현상이 신과는 무관한 것이라 말하며 자연학을 연구해야 불필요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신화와 미신이 가득했던 고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자연과학은 '고통과 욕망의 한계에 관한 지식'을 주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결실인 식품영양학, 의학 등은 고통을 제거해 주는 지식이다.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게 도움이 되었던 점은 고통과 욕망에 대한 그의 통찰들(2번)이다. 자연과학의 필요성은 20대부터 느껴왔고,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를 통해서도 깨달은 바 있다. 본 포스팅에서는 에피쿠로스를 개략적으로만 소개했지만, 그의 윤리학적인 명제 중에 고통과 욕망을 다룬 것만 모두 뽑아 공부해 볼 생각이다. 배울 수 있는 지혜를 모두 얻고 싶다. 에피쿠로스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다.

 

- 그의 사상을 금욕적 쾌락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 에피쿠로스주의에도 공동체성이 있는가? 

(그의 사상은 개인주의에 기반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우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관계 속의 개인'을 추구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덧. 기독교 유신론을 가진 이들은 에피쿠로스를 신중히 접해야겠지만, 무턱대고 금기시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릴 거라는 두려움이 든다면, 아직 제대로 신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 (회의와 갈등이 없는 신앙은, 신이 아닌 신에 대한 관념을 믿고 있는 거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신앙에 확신을 갖고 더욱 정교한 신념을 추구하라. 기독교는 지적 자살을 요구하지 않는 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