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가슴이 섬뜩했던 날의 깨달음

카잔 2014. 4. 4. 11:53

 

"KU 시네마파크에서 롯데시네마 거리가 가깝나요?" 친하게 지내는 지인 K로부터 카톡이 왔다. KU 시네마파크에선 <몽상가들>이, 롯데시네마에선 <블루 재스민>이 상영되던 날이었다. 며칠 전에 추천드렸던 영화들이다. 상영관까지 알려 드렸더니, 직접 관람하러 가시려나 싶었다. "두 편 다 보고 싶어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가능하겠더라고요." 그 분의 말에, 두 상영관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려 드렸다. (하나는 건국대 안에, 하나는 건대 바로 앞에 위한 영화관들이다.) 

 

이틀이 지나, 어제 K를 만났다. 늘 만나는 J와 함께 셋이서 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K에게 물었다. "영화 보셨어요?" 웃으면서 말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어제도 J를 만났어요. 오랫만에 명동을 구경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 정리를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못 갔어요. 처음 가는 곳이라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온 몸이 서늘해졌다. 자연스럽고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내 가슴을 섬뜩하게 만든 것은 내 모습 하나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K는 부지런한 가정 주부다. 정리 정돈 벽이 있어서 항상 집안 쓸고 닦기는 기본이고, 모든 살림을 정돈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당신 스스로도 정돈에 자신의 대한 집착을 아신다. 타고난 성격이라 그렇게 정리정돈을 할 수 밖에 없음도 아신다. 여느 주부들처럼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엄마와 아내로서는 용감하지만, 자기 삶의 영역에서는 그 용기가 자취를 감춘다. 새롭게 배우는 것에 특히 그렇다. 운전을 하고 싶어하지만, 운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식이다.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어떤 이는 개인의 성취를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관계지향적이다. 어떤 이는 자유 시간의 확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가 하면, 다른 이는 함께하는 시간의 확대가 제일의 우선 순위가 된다. K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고,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시라는 권함이 그에겐 유일한 답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도전하지 못한다거나 정리정돈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아까워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년 전에 정리해 둔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보내고 있는 하루 하루를 닮아간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자기경영의 중요한 화두라고 믿는 명제다. K는 항상 정리정돈을 하고, 첫걸음에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느낀다. 어제, 영화를 보지 못했던 이유도 그렇게 두 가지였다. 집안 정리정돈을 하느라 그리고 처음 가는 길이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홀로 영화를 보려던 계획은 메일회신, 와우카페 방문, 블로그 포스팅을 하느라 실천하지 못했다. 자각치 못하면, 나도 매번 이렇게 살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섬뜩했다.

 

영화야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요한 계획과 바람들도 이와 비슷한 모양새로 놓치거나 실천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살고 싶은 인생대로 오늘 하루를 사는가? 우리는 오직 현재를 산다.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갈 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발걸음 뿐이다. 서울을 떠남은 과거요, 부산에의 도착은 미래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볼때, 누구도 동시에 두 공간에 머물 순 없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아가로 태어나 점점 노인이 되어간다. (태아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집어삼킨 첫 음식은 죽음의 씨앗일 것이다.) 누구도 70년 인생 전체를 단박에 살지는 못한다. 우리는 오직 하루를 산다.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을 가졌다면, 오늘 하루가 그 모양을 닮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아닌 하루만을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보낸 하루를 축적해가야 좋은 삶이란 결실을 얻는다. 하루경영, 이것이야말로 자기경영이라는 놀이의 정수다.

 

모든 하루를 원하는 대로 살 순 없다. 그러한 삶은 없다. 어떤 하루는 아파하며 보낼 것이고, 어떤 하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보낼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보내야 하는 숱한 하루들도 인생사의 일부다. 나의 관심은 '한 달 중 며칠을 원하는 대로 살았는가'이다. (원하는 삶을 가족과 관계가 부재하는 이기적 삶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이 관계와 균형을 원한다.) 단 하루도 자신의 바람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면, 바라던 삶도 요원할 것이다. 365일 중 좋은 하루를 늘려가는 것! 나의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