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사람이 좋으면서 혼자이고 싶다

카잔 2014. 4. 14. 09:18

창경궁 돈화문 건너편에는 <학아재>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값이 다소 비싼데도 정갈하고 예쁘게 나오는 차림을 보고서 매료된 곳입니다. 생맥주에 곁들여 마른 안주를 차려놓은 모양새, 와인에 과일을 절여 만든 음료의 예쁜 빛깔 등 주문했던 모든 메뉴가 제 값에 걸맞는 위용을 뽐내었습니다.

 

지난 주, '서양문학사'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 <학아재>에 갔습니다. '세계사' 수업도 들으셨던 분들이고, 와우도 있어서 제겐 무척 편안한 자리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 참 좋겠다.' 말없이 가만히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신뢰해 주는 분들이라 그윽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였습니다. 이미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던 터였지요. 저의 요상한 마음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혼자이고 싶고, 혼자 있을 때엔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변덕'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인데, 그런대로 적절한 표현이지만 마땅한 마음까지는 들지 않습니다. 딱 두 마음을 오가는 것 뿐이고 수시로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요.  

 

저는 '욕심'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호젓한 자유와 함께 있을 때의 풍요로운 교감을 동시에 얻으려는 욕심! 우리에겐 자유도 필요하고 교감도 필요합니다. 홀로있음도 필요하고 함께있음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둘을 상반관계이기보다는 보완관계로 보아야 할 겁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혼자만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보다 교감의 즐거움에 흠뻑 젖어들어야 하겠지요. 혼자 있을 때에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고 외로워하기보다는 자유로움을 한껏 음미해야 할 테고요. 아! 나는 학창 시절 때의 실수를 또 반복하고 말았네요. 

 

학창 시절의 나는, 학업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유 중 하나는 영어 시간에 국어를 공부하고, 수학 시간에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비효과적인 공부 방식이라면, 혼자만의 시간에 교감을 갈망하고 함께 있는 시간에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은 비효과적인 인생살이입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종종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생살이의 최고급 지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서 슬쩍 지나가는 대사입니다. (실제의 대사보다 제가 조금 과장되이 표현했을 겁니다. 제 신념이어서요.) '최선'과 '시작'은 제 인생에 조각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내게 참으로 필요한 개념들.

 

동의하신다면 이런 당부를 드리고 싶네요. 혼자 계세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세요. 누군가와 함께 있으신가요? 그와 교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세요. 자유와 교감을 위한 일을 시작하세요. 한 시간 만이라도 고독한 자유시간을, 두 시간 만이라도 친구를 만나 교감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람이 싫으면서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고종석의 소설 <플루트의 골짜기>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선생의 여러 글들을 읽어보니, 그보다는 제가 사람을 조금 더 낙관하는 마음을 가졌더군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리 표현하게 됩니다. "나는 사람이 좋으면서 혼자이고 싶은 것이다." 

 

다음의 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나는 자유가 좋으면서도 사람들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유와 교감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제자리에 놓인 물건은 가지런합니다. 욕구도 제자리를 찾을 때 아름다워집니다. 혼자 있을 때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그에 걸맞는 욕구를 추구하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와 교감을 동시에 누리게 될 날을 꿈꾸면서.

 

삼청동 식당 <삼청화>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 photo by niceplan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