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힘으로 삶을 촉촉하게

- 밥장 <밤의 인문학> 앨리스

 

조르바 원고로 다룰까 말까?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신간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책이었거든요.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만 가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열 가지는 되더군요. 어떤 챕터에서는 합격점을 주며 ‘원고 써야겠다’ 싶다가도, ‘아니! 이건 아니지’ 하며 고개를 가로젓곤 했네요. 결론이요? 여러분이 지금, 읽고 계시잖아요.

 

1) <밤의 인문학>은 반디 앤 루니스에서 만난 책입니다. 책을 집어든 것은 단순한 호기심. ‘오? 밥장 씨 신간이네.’ 일만 오천원을 지불한 까닭은 김경란 아나운서의 추천사. “은근 중독성 있는 뽀글이 헤어로 덮인 그의 머릿속엔 혼자 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아기자기한 세상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자기 세상을 창조하여 즐기는 이들에게 끌리거든요.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느끼고 배울 것들이 많을 거라는 직관으로 구매했으니, 나의 기대는 작가의 지성보다는 삶의 모습을 향한 셈입니다. 그의 존재를 4~5년 전에 알았지만, 책은 처음 읽네요. “수요일 밤이 되면 우리는 빠에서 책과 인생을 논한다.” 앞표지에 쓰인 문구에서 풍겨오는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신선한 기대감! 나는 빠(bar)를 잘 모르거든요.

 

2) 첫인상은 좋았지만, 첫 대화는 시시했습니다. 맥주를 다룬 첫째 장이 별로였거든요. 통찰보다는 맥주에 관한 정보를 짜깁기한 느낌이었고, 그가 자주 듣는다는 콘 펑크 션의 「Too Tight」는 내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잘못 알려진 인용구를 쓴 것도 거슬렸고요.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증거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라며 소개한 인용입니다만, 실제로는 맥주가 아닌 와인을 두고서 한 말입니다. 1779년,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거든요. “Behold the rain which descends from heaven upon our vineyards, there it enters the roots of the vines, to be changed into wine, a constant proof that God loves us, and loves to see us happy.”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증거다.”

 

중대한 실수는 아니고, 책은 사소한 일상으로 가득했지만 시시한 잡담이야말로 에세이의 매력임을 알기에 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에세이를 읽는 묘미는 ‘성실한 따라하기’입니다. 그가 음악을 언급하면 찾아서 들어보고, 음식을 이야기하면 직접 맛을 보면서 작가의 세계로 잠입해 보는 겁니다. 2장까지 잠입했더니 4장까지 연속으로 재밌게 읽었네요.

 

3) 책을 구매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목에 쓰인 말,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이것이 요즘의 관심사거든요. 인문학을 제목으로 차용한 책들이 많지만, 내용까지 인문학을 잘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문학은 우선 문사철 식견이지만, 사실 그것 이상입니다. 인문정신이 깃들어야 하니까요.

 

인문학의 기본 방정식은 이렇습니다. 인문정신 + 문사철 식견 = 인문학. 심화 방정식은 조만간 다루도록 하지요. 문사철 식견을 통해 인문정신을 함양하고, 인문정신을 통해 문사철 지식을 살아있는 지혜로 탈바꿈하는 능력이 인문 소양이지요.

 

제가 말하는 인문정신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 예를 들자면 비판, 상상력, 감수성, 합리성, 자유 등의 가치입니다. 인문정신을 찾으려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라고 물어야 합니다. 개인에게 적용하면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를 붙들고 고민하는 것이고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나다움을 키워가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인문정신이 간과하고 인문 지식만을 강조합니다. 아쉬운 책입니다. 최근 2편이 나왔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밥장의 <밤의 인문학>에 문사철 지식은 없습니다. 좋은 책들이 소개되나 책의 내용을 깊이 다루기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대목만을 일부 뽑아내었습니다. 하지만 밥장에겐 살아있는 인문정신이 있습니다.

 

인문 정신과 문사철 식견을 조화롭게 다루는 작가는 없냐고요? 있지요. 내공과 인기를 모두 지닌 강신주 선생이 그러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직이라는 인문정신을, <김수영을 위하여>는 자유라는 인문정신을 강조한 책입니다. 한 강연에서는 ‘감수성’을 한 시간 내내 강조하더군요. 그가 인문정신을 뽑아내는 근원은 문사철, 특히 동서양 철학이고요.

 

4) 밥장의 경우로 인문정신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의 (개인주의적) 인문정신이 잘 드러난 챕터는 아마추어, 사치품, 늙는다는 것, 여행 등입니다. 사치품을 다룬 챕터에서는 데라야마 슈지의 ‘일점호화주의’를 소개합니다. 슈지는 괴짜 작가여서 소개하고 싶지만, 다른 할 말이 많아 자제합니다. 슈지의 저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 나오는 말을 보시지요.

 

“잠이야 담요 한 장으로 다리 밑에서 자도 상관없으니 일단은 원하는 스포츠카부터 사고 보자. 사흘 동안을 빵과 우유 한 병으로 떼운 뒤, 나흘째는 레스토랑에 간다. 돈을 평범하게 사용할 때 얻게 마련인, 균형 잡힌 매너리즘과 가능성이라는 지평을 깨부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밖에 없으리라.”

 

일점호화주의, 이해하셨지요? 돈이나 시간을 쓰는 라이프스타일의 하나로 취하고 싶지 않으세요? 제가 재테크나 노후 준비, 시간관리, 균형을 추구해 왔기에 저만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슈지의 말이 현실적이고, 매력적이라 느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런 일점호화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한 우리 시대에는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다.”

 

밥장도 덧붙입니다. “저는 그림으로 돈을 벌면서 돈을 쓰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만의 사치품을 하나씩 끌어 모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 그린다고 고생하는 엉덩이를 위해 허먼 밀러의 에어론 체어도 샀습니다. 흔한 짝퉁 대신 아르테미데의 톨로메오 스탠드 아래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다른 페이지를 보니, 벤츠 SUV도 차고에 들여놓았다네요.

 

챕터의 마지막 대목에서 밥장은 묻습니다. “사치품이란 결국 상대적인 것입니다. 60명의 사람들에게는 60억 개의 라이프스타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의 사치품은 무엇입니까? 당신만의 일점호화주의는 무엇입니까?” 물음을 끌어안는 순간, 우리는 삶에 대해 사유하게 되고, 사유가 진행되는 동안 인문정신이 하나씩 영글어갈 겁니다.

 

5) 인문정신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정신을 사유하는 일도, 자기 삶에 필요한 정신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인문정신은 곧 삶의 비평입니다. 비평은 잘잘못을 가려내는 작업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무엇이 마음에 들고, 어떤 점을 개선하고 싶은가?’

 

비평을 돕는 것은 외부의 관점입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자는 게 아니라, 가끔은 다른 이의 관점으로 인생을 들여다보자는 말입니다. 밥장도 좋은 관점 하나를 삶으로 보여 줍니다. 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알면, 그에게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많은 배움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쾌락주의자입니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준비’보다는 ‘만끽’에 무게중심을 두고 삽니다. 항상 미래를 준비하느라 오늘의 행복을 보류하며 사는 분들은, 마음을 열고 밥장을 읽으면 좋겠지요. 유익을 얻을 겁니다. 아래의 목록은 밥장의 블로그 포스팅 중 ‘나를 만드는 14개의 단어들’의 일부입니다. 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목록이죠.

 

- 가슴 : 가슴 예쁜 여자를 만나면 내 가슴도 설렌다. 설레면 그림을 그리게 된다. 가슴이 곧 그림이다.

- 놀이 : 심각해지만 말부터 헛 나온다. 부담스러울수록 경쾌하고 가볍게 어깨에 힘을 빼고 언제나 놀이처럼.

- 하루살이 : 나의 좌우명은 ‘하루살이 정신으로!’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은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하자. 그래야 괜한 죄책감 없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 무리 : 무리하지 말자. 내 능력의 80퍼센트까지만 한다. 나머지는 그냥 남겨 둔다. 힘들면 늙는다.

 

그는 자기를 더욱 자기답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면서 자기 철학을 찾은 작가입니다. 그의 책과 블로그에서 드러난 자기철학을 살펴보면 어떤 것들은 물질적인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정신적인 가치입니다. 관념론과 유물론, 다시 말해 이상과 현실의 균형 감각이 엿보입니다.

 

6) “오빠는 너무 진지하고 일탈을 몰라.” 연구원 후배의 말입니다. 나는 ‘부뚜막에 자주 올라가는 고양이’라고 말하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건 오빠 기준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교육담당자인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너는 삶의 재미를 몰라.” 나는 웃으면서 내 삶도 재밌다고 반발했지요. 밥장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말이 맞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쾌락주의를 추구하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기준에서의 노력일 뿐이고 진짜 쾌락주의자들이 보기엔 순진한 애들 장난 정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쾌락주의자가 되지는 못해도, 가끔씩은 쾌락주의라는 관점으로 내 삶을 찔러 보아야겠습니다. 찌를 때마다 기쁨의 피가 흘러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쁨은 삶의 정수니까요.

 

밥장의 ‘쾌락주의’는 글과 그림을 향한 ‘적당한 열심’과 어우러져 그의 삶을 빛냅니다. 예술가로서의 미덕인 진솔함을 기본으로 갖춘 공도 크겠지요. 나도 진솔한 편이니 그리고 적당한 열심도 가졌으니, 이제 쾌락주의라는 삶의 조미료를 내 인생에 살짝 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7) 독서 재미는 밥장의 필력 덕분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밤의 인문학>이 다룬 주제에 대한 책을 읽은 바가 없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다면, 내용이 주는 감동과 재미까지 느끼실 겁니다. 저는 ‘쪼금은’ 다독가로 살아온지라, 이미 고민해 본 주제가 많았고 그래서 재미가 ‘반감’됐지요. 소멸이 아닌 반감인 것은 밥장의 필력과 유쾌한 삶의 모습 때문이고요.

 

‘밥장이 맥주에 취해 읽은 책, 나눈 삶’

‘인문학의 힘으로 삶을 촉촉하게’

 

이라는, 뒷표지 문구도 적절합니다. 처음에는 ‘삶을 유쾌하게’가 더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촉촉하게’도 어울리네요. 좋은 책에서 따온 인용구가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취한 것 같기도 합니다. 취한 탓일까요? 사실 글을 쓰면서는 밥장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책에는 ‘추천 보류’ 도장을 찍으려 했었지요.

 

하지만 <밤의 인문학> 일독을 추천하고 싶어졌습니다. 더 취하기 전에 추천을 보류하려 했던 까닭을 적어 둡니다. 밥장은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다독의 여부보다 ‘책을 어떻게 읽는가’입니다. 주관적으로 꽂히는 대목만 읽어내는 (풍크툼 방식의) 독자인지, 아니면 책의 핵심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독자인지 말이지요.

 

꽂히는 대목만 받아들여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작가의 책을 추천하고 싶진 않거든요. 하지만, 책의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꼼꼼히 읽는 작가들 중에도 말랑말랑한 글쓰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좋은 책들을 가볍게, 일부분만 다루기도 합니다. 밥장은 어느 쪽일까요? 꽂히는 것만 건지는? 내용을 모두 건졌지만 필요한 것만 활용할 줄 아는 프로 글쟁이?

 

이 책만으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판단은 못했지만, 그의 필력에 취해, 그가 다룬 주제들의 중요성에 반해, 나는 <밤의 인문학>을 추천합니다. 그가 권한 맥주 때문일까요? 수요밥장무대의 빠(bar) 때문일까요? 정신이 깨어나도 나의 추천은 유효할 듯 하네요.

 

- 와인에 취해 인문학을 나누고픈, 조르바.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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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나유라 2014.05.19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조르바에 소개되자마자 교보문고에서 잠깐 찜해두었다가, 외출 겸 중고서점 나드리때 득템했습니다. 거의 새책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40% 저렴하게 구입했습니다. 밥장과 나는 닮은 구석이 많은 듯 합니다. 앞부분만 읽었는데 오늘 집에 도착하면 더 책장을 넘기며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밥장이 자주 드나는 Bar에도 2014년이 가기 전 들러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