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주의자로 산다는 것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

 

 

유미주의자, ‘예술적 미의 창조’를 인생의 목적과 최고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저 역시 예술을 즐기고 추구하는데, 그것은 ‘인생을 위한 예술’입니다. 반면 유미주의에 경도된 예술가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 심지어는 ‘예술을 위한 인생’을 추구합니다. 예술을 위해 인생의 다른 가치들을 모두 희생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유미주의자 한 명을 소개합니다. 장밋빛 성공과 수많은 음반을 뒤로하고 대중을 떠난 천재 뮤지션입니다. 그는 팬들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글을 남기고 떠났지요. 일부를 옮겨 봅니다.

 

“이제 그만 둡니다. 다른 할 일이 있어서요.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저를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캐나다에서 음악, 음악의 고독, 고독의 고독과 약속이 있어 가는 것이니까요. (…) 캐나다에서는 나와 피아노, 음악만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말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음악만 남게 될 겁니다. 피아노, 나, 그 어떤 것도 거치지 않은 음악 말입니다.”

 

바흐의 작품을 즐기는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그는 떠났습니다. 이제 대중은 굴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그의 숨결이 깃든 음반만을 만날 뿐입니다. 굴드의 편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참 좋구나’ 하는 감동이 아니라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에서 온 울림입니다.

 

여기, 유미주의자 한 명을 더 소개합니다. 부드러웠던 굴드보다는 훨씬 극단적이고 무례한 유미주의자인데,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둔 중년의 증권브로커입니다. 그도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떠남은 유미주의자들의 특징인가 봅니다). 아내에게 짧은 편지 한 통을 남기고서.

 

“이제 내가 당신과 아이들을 집에서 맞이할 수는 없다오. 당신과 별거할 결심으로 파리로 떠날 테니까. 이 편지는 내가 파리에 도착한 뒤에 보낼 것이오.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고 이 결의는 절대 바꿀 수 없소.”

 

스트릭랜드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입니다. 가족을 떠난 것을 두고서 던지는 비난이 아닙니다. 그는 친구의 아내를 빼앗고도, 그 아내가 자살을 했는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술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한 그의 신조는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입니다. 이것이 곧 유미주의식 태도고요.

 

대학 시절 읽었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불쾌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는 자유주의자이지만, ‘타인의 부자유를 대가로 누리는 자유’를 싫어하거든요. 꿈을 추구하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불행을 기반으로 꿈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나의 불쾌감은 스트릭랜드가 지닌 극단적인 유미주의 때문임을 훗날에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서머싯 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문판 문고로 <The Summing up>을 읽으면서이고, 단편 <레드> 읽고서는 그의 대표작을 모두 읽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시간의 파괴력과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잘 표현한 <레드>에 감동했거든요.

 

<레드>의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떨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서로를 배신하거나 변심한 것은 아닌데, 세월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요. 시간, 인생, 사랑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입니다. (몸의 단편은 매우 뛰어난데, 아쉽게도 책은 절판되었습니다.)

 

인생 앞에서 나는, 인생의 본질과 의미와 실재를 모두 알 수는 없다고 믿는, 인생 불가지론자입니다. 나의 이런 가치관이 <레드>와 잘 맞았습니다. 그의 대표 장편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읽기를 계획한 까닭입니다.

 

작가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고서 <달과 6펜스>를 다시 들여다보니, 스트릭랜드의 영웅적인 면모가 보였습니다. 그는 예술 이외의 것들에는 차가운 사람이지만 예술을 향해서는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그림을 팔려고 안달하지도 않고, 명성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오직 그림만 생각하고 그림만 그렸습니다. 예술에 관해서는 순수했습니다.

 

어느 자기계발서에서 ‘평범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달과 6펜스>를 소개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몰입과 헌신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니까요. 하지만 작품이 가진 힘을 온전히 언급하지는 못했습니다. <달과 6펜스>를 이해하려면 유미주의의 빛과 그늘을 모두 느껴야 하니까요.

 

유미주의의 미덕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헌신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죠. 스트릭랜드가 내뱉은 말은 자기경영의 차원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잘 표현했습니다. 절박감과 몰입 말입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겨냈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무슨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유미주의의 악덕은 희생의 범위가 무조건적으로 광범위해진다는 점입니다. 전통이나 인습, 도덕을 져버리는 것까지는 용납합니다만 (수호할 필요가 없거나 타파해야 할 인습과 도덕이 있으니까요), 가족의 불행에도 아랑곳 않는 지점까지 나아간다면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지점이 유미주의로 가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갈림길입니다.

 

유미주의의 빛과 그늘을 염두에 두고 <달과 6펜스>를 읽으면, 잃어버린 꿈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는 소설로만 판단하거나, 예술지상주의로 인해 파탄 난 가정의 비극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은 없을 테지요. 스트릭랜드에게서 악인과 영웅의 모습을 모두 발견할 테니까요.

 

나에게도 꿈이 있고, 내 안에도 악인과 영웅이 있습니다. (조르바) <달과 6펜스>는 꿈을 이루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예술 세계(꿈)와 일상 세계(현실)의 양립이 가능한지, 두 세계 중 하나가 더 끌린다면 어느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 두 세계의 조화를 이루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정도의 차이를 차치한다면,

자기실현의 욕망이 강한 사람들은 모두 스트릭랜드의 후손이 아닐까요?

떠남을 감행하든, 평생 동안 마음에 품고 살든 말이지요.

 

- 유미주의의 피로 살고픈, 조르바.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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