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책을 이야기하는 졸바

단편소설의 대가를 스승으로!

카잔 2014. 4. 25. 06:50

소녀는 자신의 남동생과 함께 자주 친구와 어울렸습니다. 세 아이는 모두 문학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잘 맞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되었고, 친구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프랑스 단편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기 드 모파상이고, 소녀의 친구는 사실주의 소설의 경전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입니다. 안타깝게도 소녀의 남동생은 지나친 공부와 심장병으로 20대에 요절했고요.

 

모파상의 어머니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고 재능을 키워주고 싶어, 어린 시절의 친구 플로베르에게 아들을 지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모파상은 어머니의 편지를 들고 플로베르를 찾아갔습니다. 스승의 나이 52세, 제자의 나이 23세의 일인데, 그들의 사제관계는 플로베르가 세상을 떠난 198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단 하나의 언어만이 있다. 그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에는 단 하나의 동사, 그것을 수식하는 데에는 단 하나의 형용사밖에 없다. 작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단어, 그 동사, 그 형용사를 발견할 때까지 찾아야 한다.” 모파상이 스승 플로베르에게 배운 글쓰기 원칙입니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에게 과제를 내었습니다. 매주 산책길에서 관찰했던 사물을 1백줄 가량 글로 써서 자신에게 평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세계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에게 도제수업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정은 힘들었습니다. 마냥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승의 가르침은 혹독했고, 혹독한 만큼 모파상의 작가적 역량이 키워졌습니다.

 

스승은 『비곗덩어리』에 이르러 제자의 작품을 격찬합니다. 모파상의 주된 문제의식은 ‘위선’이었고, 『비곗덩어리』는 배운 이들의 위선을 폭로한 중편소설입니다. 플로베르가 대가의 작품이나 다름없다고 칭찬했는데, 작품은 장편 『여자의 일생』과 함께 모파상의 대표작이 되었지요.

 

모파상의 작품만 언급하지 않고, 스승과의 관계까지 기술한 것은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배울 스승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행하게도 부러움은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모파상의 작품을 읽으며 스승을 발견했거든요. 다름 아닌 모파상 말입니다. 그의 단편들은 내 글쓰기가 이를만한 지향점과 일치했고, 얼마 동안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단편소설로요. 장편보다는 단편이 내게는 어울립니다. 장편 서사를 구성할 만한 힘(구성력)이 약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끈기가 없어 하나의 주제에 오래 천착하는 것도 저와는 잘 안 맞고요. 반면, 하나의 사건,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들, 인물의 행동 뒤에 숨겨진 심리묘사 등은 어느 정도 훈련하면 해낼 거라 생각합니다.

 

모파상의 작품을 좀 더 읽어보려고요. 그 역시 구성력이 약한 편이라 잘 맞을 듯 합니다. 물론 위대한 소설가들과 비교해서 약하다는 겁니다. 모파상의 힘은 간결한 문체, 예리한 사회 관찰, 객관적 태도 유지, (교훈을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잉여가 아닌) 해석의 잉여를 유도하는 끝맺음 등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랑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모파상은 장편 <피에르와 장> 서문에서 자신의 소설론을 피력했는데, 읽지 못했는데도 몇 구절에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재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지요. 재능은 지속적으로 시간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모파상은 이리 말했더군요. “재능은 긴 인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실현의 여정에 필요한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출간이 되든, 그렇지 않든 단편소설은 제게 적합한 표현방식입니다. 머잖아 창작을 시도할 텐데, 그 날을 위해 부지런히 단편소설을 읽어가는 중입니다. 나라별 단편을 엮은 창비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하여 데이비드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등이 독서 목록의 책들입니다.

 

요즘 핫한 그녀, 앨리스 먼로는 단편작가입니다. 대개의 작가들이 장편과 단편을 모두 쓰는 것을 생각하면 고유한 길을 걸어간 셈입니다. 단편전문(?)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상된 것은 처음입니다. 단편소설 작가 지망생인 제게는 묘한 흥분이 일었고요. ‘이것은 내 인생의 표지다’ 라고 다소 흥분되고 과장된 해석을 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긴 했습니다.

 

기 드 모파상은 안톤 체호프와 함께 세계문학사에 이름을 새긴 단편소설의 대가입니다. 제게는 모파상이 더욱 끌립니다. 그가 문장과 표현에 더욱 공을 들이고 좋은 문장을 향해 매진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연과학에 기대어 글을 썼다는 점은 유사점이네요. 동시대의 인물이니 ‘자연주의’라는 당대의 시대 사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문예출판사의 세계문학선 <모파상 단편선>으로 처음 모파상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244페이지에 자간도 널찍한 책인데 19편의 단편이 실렸습니다. 한국문학의 소설집은 단행본 300페이지 분량, 8편의 단편의 불필요한 불문율을 따르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정형성에서 벗어나 있지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나는 첫 작품 ‘보석’에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9세기 파리 시민들의 생활상 하나를 콕 집어 가치관의 강요 없이 표현한 작품인데, 인생의 모순과 사람의 양면성까지 절묘하게 드러내어 잠시동안 ’그야말로 작품이구나’ 하며 찬탄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랑탱 씨는 품위 있고 성품이 온화하고 정숙한 여인과 결혼했다. 아내의 모든 점을 좋아했지만 두 가지 점은 예외였다. 극장에 가는 취미와 가짜 보석을 좋아하는 취향. 아내는 남편이 ‘싸구려’라 부르는 보석들을 넋을 잃고 관찰하고 음미하곤 했다. 아내가 폐렴으로 죽고, 살림이 어려워진 랑탱 씨는 가짜 보석이라도 팔려고 보석상에 가져갔다. 6~7프랑은 받으려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것은 진짜 보석이었고 집안의 모든 보석을 파니 19만 프랑이 넘는 큰 돈이 되었다. 그는 정숙한 여자와 다시 결혼했지만, 그녀는 남편을 들볶았다.

 

아내는 애교도 많고 성품도 온화했지만 바람을 피웠지요. 보석은 남자들로부터 받은 선물이고요.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랑탱 씨는 비참했지만, 그 선물들 덕분에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가게 됩니다. 아, 인생의 모순! 남자는 많은 돈으로 사교 생활을 하다가 ‘정숙’에 초점을 두어 여자를 선택했을 겁니다. 새 아내는 정숙했지만 남편을 괴롭힙니다. 첫 아내는 온화했지만 바람을 피웠고요. 아, 인간의 이 양면성!

 

단순한 구성의 소설이나, 사회를 관찰하여 주제를 뽑아내고, 인생에 관한 통찰을 소설에 잘 녹아내는 작가, 기 드 모파상. 당분간 배우고 즐기고 추종할 만한 작가를 만나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