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깨끗한 부자가 내 길일까?

카잔 2014. 5. 27. 23:32


친구를 만나 신사동 가로수길을 걸었다.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터라 소화를 도울 겸, 구경도 할 겸 느긋한 걸음이었다. 가로수길엔 예쁜 카페와 매력적인 행인들이 많지만, 왕복 2차선 차로가 있어 조금은 번잡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로수길과 연결된 이면도로가 더 좋더라. 우린 도산대로 11길을 걷다가 나즈막한 이층의 창가로 들여다보이는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았던 그 창가 자리에 앉았다. 멋진 색감의 가죽 소파는 편안했고, 창밖으로는 상점의 모습과 길을 오가는 행인들이 보였다.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서 우린 약속이나 한듯이 잠시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의 경제력을 생각했다. 강연보다는 공부에 집중하는 몇년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며 산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면 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의 말로 침묵이 물러갔다.

"너도 그 생각했냐? 나도 돈이 좀 넉넉하면 삶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 

바람이 창 안으로 불어와 얼굴을 부드럽게 만졌다.

"밖에 사람들이 참 여유로워보이네. 저들은 어찌 이시각에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살까?"

이면도로 건너편엔 늦은 점심식사를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내가 말을 받았다.

"저들도 우리처럼 오랫만에 가로수길에 나온 걸껄."


친구도 나도 2~3년 만에 가로수길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저들도 그럴지도 모른다.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우리가 들어온 카페의 사장도 젋었고, 길거리에도 나이 지긋한 부호가 아니라 부티가 나는 젊은이들이 종종 보였기 때문이었다. 상대적 박탈감, 이런 류의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달라졌음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십여년 전, 교회 후배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형, 아무리 노력해도 출발선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출발한다면 부모 잘 만난 녀석들은 저만치 앞에서 출발하는 느낌이예요." 그도, 나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선생님이 마련해준 용돈을 매월 5만원씩 받았던 처지였다. 나는 녀석의 한탄스런 마음을 받긴 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불만도, 아쉬움도, 넋두리도 전혀 없었다. 


10년 동안 강과 산이 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얼마든지 변한다. 나도 달라졌다. 불만이나 넋두리까지는 아니지만, 아쉬움은 든다. 내가 만났던 가장 큰 부자는 부모님이 백억대의 자산을 가진 네살 위 형이다. 그도 부모님이 마련해 준 의류매장을 경영하며 많은 돈을 번다. 지나치게 많은 걱정을 하며 사는 그를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러움을 느낀다. 이것이 달라진 점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많은 돈일까? 돈 자체도 부럽다. 살고 싶은 곳에 살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까. 정말 부러운 것은 따로 있다. 밥벌이에 대한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시간을 줄 수 있는 자유! 나는 그것이 부럽다. 나는 속물이 되어가는 걸까? 현실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아직은 속물과 현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셈이다.


지난 주 내내 아껴 읽었던 『격몽요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군자는 옳은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지언정 결코 그 집이 가난한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집이 가난해서 살아나갈 방도가 없을 때는 그 궁한 생활을 구제할 방책을 생각해서 굶주리고 추운 것을 면하도록 할 뿐이고 재산을 풍족하게 쌓아두고 지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8장 거가장 中)


음식은 굶주림을 면할 정도, 옷은 추위를 피할 정도로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책에 쓰인대로 산다면, 나는 이미 걱정을 떨쳐내야 한다. 도학자들의 기준으로 볼때, 나는 이미 부유하니 도의 행함만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옛 선비들이 추구하던 빈부의 기준대로 살 순 없다. 나는 그들보다 물욕이 많고, 조선은 돈이 없어도 양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신분제도(양반, 중인, 상민, 천민)가 엄격한 사회였다.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다. 시대는 바뀌었다. 조선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의 숙명이 정해지는 신분사회였고, 지금의 세상은 그때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조선의 가치는 달라진 시대상을 고려하여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나는 유자들의 청빈(과 올곧음 그리고 배움을 향한 열정)을 배우고 싶다. 청빈(淸貧)!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청렴하여 가난함. 성품이 맑고 탐욕이 없는 자발적 가난.


청빈이 조선사회의 미덕이라면, 청부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 아닐까?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법과 질서까지 헤치는 악당들과는 다른 깨끗한 부자들! 읽고 싶은 책을 걱정없이 사고(지식인이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할 양은 조선시대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다),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떠날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나누며 사는 청부(淸富).


나는 돈 욕심보다는 자유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세운 가치에 걸맞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심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때론 돈 벌 기회도 마다할 때가 있다. 자유가 더 좋은 것이다. 친한 친구가 종종 나더러 "석아, 이제 너도 나이가 있으니 돈 벌 생각도 좀 해야 한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돈을 버느라 공부 시간을 줄이고 싶진 않지만, 내가 『격몽요결』의 청빈을 그대로 따를 만한 위인이 아님도 안다.


2001년에 읽었던 책 『깨끗한 부자』(김동호, 규장)가 떠올라,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당시에 썼던 독서리뷰를 찾아보았다. [blog.yes24.com/document/175025] (잠시, 열심히 책을 읽고 정성스레 리뷰를 썼던 20대 젊은 날의 내 열정이 그리웠다. 마침 어젯밤 서평쓰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터라 반가움과 아련함이 교차했다.) 리뷰엔 책의 내용을 요약한 구절도 있고, 청부를 향한 다짐도 눈에 보였다.


"나는 부자로 사는 것이 좋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싫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무섭지 않다. 가난하게 되는 것이 싫지만 만일 가난하게 되더라도 그 속에서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국 가난을 극복할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럴 자신이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이다. 마지막 문장의 자신감엔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다음의 세 구절을 가슴에 새긴다.


"부함을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난을 미화하는 것도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서로 다툴 때 하나님은 누구 편을 드시는가? 옳은 사람 편을 드신다. 깨끗함은 깨끗함 자체에 있지 가난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벌었다고 해서 다 내 돈이 아니다. 돈에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몫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몫(십일조)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몫(세금, 임금, 구제)이고, 셋째는 내 몫이다. 돈에 대해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돈의 바른 몫 가르기'를 정직하게 행해야만 한다."


"돈에 대해 욕심이 없다고 그저 자기 먹고 살 만큼만 돈을 벌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잘못된 사람이다. 자기 먹고 살 만큼만 벌지 말고 하늘에 쌓을 수 있을 만큼 벌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돈만 벌고 더 이상 돈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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