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으로 독립하는 게 내 목표야.”
그녀가 말했다. 말은 또렷했지만 무언가를 실행한 눈치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부모님 댁에서 분가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본가와의 거리나 얼마나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지, 살려는 동네의 매물은 잘 나오는지, 요즘 시세는 얼마 쯤인지 등이 나는 궁금했다. 느긋하게 하나씩 물었다. 질문이나 생각은 속사포 같이 쏘아댈지라라도, 대화는 테니스의 긴 랠리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내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안다.
“요즘 월세는 얼마나 해?”
“동네마다 다르지. 어디에 살고 싶은데?”
자신의 물음이 엉성하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이내 말을 받았다.
“아직 그걸 결정 못했어.”
“얼만큼 떨어져 살고 싶은 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네. 아예 가깝든지 아니면 좀 멀리 가든지. 가까우면 여러 모로 편리하지만 네가 바라는 걸 이룰 지가 미지수고. 강남에서 가장 작은 방이라면 50만원부터 시작하면 될 걸. 이만한 크기는 될 거야.”
두 팔로 허공에다 선을 그으며 말했다.
“80만원 내외면 혼자 지내기에 꽤 괜찮은 오피스텔 까지도 구할 수 있을 테고.”
80이라는 숫자에 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비치는가 싶더니, 꽤 괜찮은 방이라는 맥락에서는 얼굴이 밝아졌다.
“비싸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자유의 값이겠지. 집에 있으면 생필품 살 일이 없지만, 나오면 다 구입해야 하잖아. 공과금도 내야 하고. 이 모든 게 자유를 얻는 대가라 생각하며 살아, 나는.“
*
일요일 오전, 먼지제거기를 굴리며 방바닥을 찍찍 훔쳐냈다. 아침마다 하는 일이지만 휴일엔 구석구석까지 팔을 뻗는다. 먼지는 놀랍다. 매일 훔쳐대도 어디선가 등장하여 종횡무진 날고 긴다. 녀석들의 활동 범위에 감탄하는 사이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청소한지 두 시간 만에 다시 찍찍이를 돌렸다. 금방 닦았는데도 눈에 먼지가 보여서다. 이내 하얀색 스티커에 회색 먼지가 잔뜩 묻었다. 이건 먼지가 아니라 이물질인데, 뭘까?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의심쩍은 소파 위에다 찍찍이를 돌렸더니, 찍찍이에 작은 검은색 점들이 잔뜩 박혔다. 소파가 낡아 검은색 인조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 소파에서도 각질이 떨어지네. 모든 것들이 낡고 늙는구나. 먼지 중 일부는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이 낡고 늙어간, 마지막 흔적이겠구나.‘
어제는 몸보신을 한다고 민어탕을 먹었다. 국물까지 남기지 않느라 배불리 먹었다. 과식한 다음 날엔 절식하거나 소식하는 편이라 오늘 아침식사는 간단히 먹었다. 간단한 식사라 해도 손은 가야 한다. 달걀을 부쳤고 과일도 씻었다. 접시와 컵이라도 사용했으니 설거지는 당연지사!
휴일이라 세탁기도 돌렸다. 수건 빨래여서 베개 커버를 벗겨 세탁기에 넣었다. 90분쯤 지나면 세탁기가 삐삐 소리를 내어 완료를 알린다. 나는 방금 글을 멈췄었다. 냉큼 달려가 섬유유연제를 넣은 후 헹굼 버튼을 누르고 왔다. 수건에서 나는 좋은 향기를 기대하면서. 15분 후면 빨래를 꺼내어 건조대에 널어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샤워할 때는 욕조 청소까지 할 생각이다. 이렇듯 휴일은 소소한 집안일을 하는 날이다. 휴일에 부지런을 떨어야, 평일은 찍찍이만 돌리고 분류 수거 정도를 하면서 지낼 수 있다. 평일이라 해도 설거지는 기본이고.
*
“이 나이 먹도록 늦게 들어간다고 잔소리 듣는 게 말이 돼?“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잔소리를 비롯한 엄마의 간섭, 가족끼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등은 부모님께 얹혀사는 대가일 것이다. 성인인데도 월세를 내지 않고, 생필품도 사지 않고, 엄마가 해주시는 집 밥을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치러야 한다. 가장 뼈아픈 대가는 자유일 테고!
손상된 자유를 되찾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월세나 전세대금, 각종 공과금, 여러 생필품에 돈을 써야 한다. 시간적 대가도 무시무시하다. 청소, 설거지, 빨래라는 집안 일 3종 세트는 평생 시간을 앗아가는 성실한 시간도둑이다. 당신이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아니라, 건강하고 깨끗한 자유를 원한다면 말이다.
게으름도 얼마간은 제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자유 속에서 살게 될 것이고,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이 조금씩 나빠질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짙은 현실이다.
모든 것을 공짜로 받던 아기처럼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시간, 체력, 물질적 대가를 치르지 않고 마냥 얻는 것도 없다. 대가를 치를 줄 모르는 사람은 사는 일이 불공평하고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공짜 자유는 없다. 주고받음을 인생살이의 지혜로 삼으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막상 네 얘길 들으니 좀 더 얹혀 살까? 그런 생각도 드네.”
그녀의 이 말이 잊히질 앉아 끄적인 글이다. 금방 대답하기는 힘들었다. 애틋한 마음으로 적잖이 떠들었음에도 대화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제법 길었던 랠리는 끝이 났지만, 생각은 점점 많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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