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주위를 둘러보니

카잔 2014. 8. 9. 08:43

 

1.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사는 공간이 보인다. 잠실 사무실을 얼마 전에 동교동으로 옮겼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사건과 맞물려 아쉬움과 설렘은 맛보지 못했다.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주거지를 향한 설렘 없이 지내왔다. 이곳은 사무실이 아닌 작업실로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과 함께 회의하고 수업하는 일보다는 홀로 글을 쓰고 공부하는 곳으로 바꾸자는 생각으로 평수를 좁혀서 이전했던 것이니까. 작업실은 곧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살림들이 양평 집에 있지만, 거주하는 곳은 이제 동교동 작업실이다.

 

다시 시선을 둘린다. 낡은 소파베드가 놓였고, 자주 나를 유혹하는 와인셀러와 와인잔들도 한쪽을 차지했다. 이 작은 공간을 가장 많이 점거한 놈들은 책이다. 책장에 약 700권이 꽂혔고 몇 권은 책 상과 소파 옆에 놓였다. 에어컨이 숨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방의 온기에 맞서고 있다. 작업실 책상을 보니 어수선하다. 메모지, 디지털 기기 케이블, 잡지들, 필기도구, A4 용지 인쇄물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주말에 싸악 정돈해야겠다.

 

산만한 물건들은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의 연관품이다. 케이블은 수업 녹음파일을 노트북으로 옮기기 위함이고, 인쇄물은 강연 팔로업 메일을 보내야 할 명단이 적힌 용지다. 메모들은 글쓰기 소재다. 잠시 주위를 살폈더니, 내가 보였다. 준비 되어야 일을 시작하는 성향의 사내가 보였고, 그 사내는 '아직은 준비가 안 됐지' 하며 결국 이런저런 일들을 미루며 살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소지품이나 내가 구매한 물건들이 나를 드러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이 놓인 모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연하겠지. 삶은 자기 주인을 닮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