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연신 둘러보고 거듭 회상하고

카잔 2014. 8. 9. 08:43

벌써 한달 전의 일이다.  잠실 사무실을 동교동 삼거리로 옮겼다. 1층에 카페 꼼마를 품은 오피스텔 건물이다. 꼼마는 평범한 카페가 아니다. 문학동네에서 운영해서 책이 지천으로 깔렸고(그리 심한 과장은 아니다), 높은 천고까지 책으로 채워진 벽면이 예뻐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출현할 만큼 매혹적인 공간이다. 언제였을까. 홍대에서 신촌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본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엔 저기에서 살아야지!' 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인연이 됐다. 이사 전, 동네 탐방을 왔다가 카페 꼼마의 존재를 발견하고선 게임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이사'라는 삶의 골칫거리 게임 하나가 이리 수월하게 끝나다니! (돌이켜보니 끝은 아니었다. 결정도 골치 아프지만, 집을 싸고 옮기고 푸는 일도 만만찮았으니까.)

 

이삿날과 친구와의 사별이 며칠 간격이라 새로운 동네와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떠나는 아쉬움도 만나는 설렘도 느끼지 못한 채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꿈을 꾸듯 구름처럼 흘러 옅어졌다. 희미한 지난 몇 주를 돌아본다. 곧이어 새로운 삶의 공간을 둘러본다. 친구와의 영원한 이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세계는 또렷했다. 삼거리 대로를 면한 건물이라 창밖으로 주야장천 자동차의 주행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남산 너머에서 떠오른 해는 서쪽 하늘과 주홍빛 인사를 나누다 사라졌다. 책상에 앉으면 남산의 일출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이동하면 소리가 난다. 우리는 황인종이니 나는 그 소리를 황색 소음이라 부르기로 했다. 백색 소음처럼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그 소리가 나는 좋았다. 황금들녘처럼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황색 소음이 들리면 때때로 홀로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무엇을 위하여?

 

이곳은 사무실이 아닌 작업실로 부르기로 했다. 연남동 작업실! 실은 동교동이나 지내다 보니 연남동의 매력을 따오고 싶어 얼른 개칭했다. 사무실보다는 작업실이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람들과 함께 회의하고 수업하는 일보다는 홀로 글을 쓰고 공부하는 곳으로 바꾸자는 생각으로 평수를 좁혀서 이전했던 것이다. 작업실 겸 주거지다. 많은 살림들이 양평 집에 있지만, 주로 거주하는 공간은 이곳이다. 

 

다시 주위로 시선을 보낸다. 낡은 소파베드가 놓였고, 와인셀러가 한쪽에 자리했다. 주방 한 편엔 나를 자주 유혹하는 와인잔들이 놓였다. 이 작은 공간을 가장 많이 점거한 놈들은 책이다. 700여 권은 책장에 꽂혀 지낸다. 수십 권은 책상과 소파 옆을 차지했다. 제법 안다고 생각하는 책들과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어우러진 장서다. 기지()와 미지()가 혼재된 세계인 것이다. 신비로웠다. 작은 방 하나에 미지의 세계와 기지의 세계가 들어차 있다는 사실이! 장서가 곧 내 인생이었다. 책장 사이사이 지난 세월이 깃들어 있으니 몇몇 장서는 곧 나의 과거였다. 새롭게 읽을 책들로 앞으로의 날들이 형성될 테니 어떤 장서는 곧 나의 미래였다. 별안간 한달 전 세상을 떠난 녀석이 양평의 장서를 보면서 놀랐던 모습이 떠오른다. 녀석은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책 좋아하는 거 니가 모르면 누가 아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지나고 보니 잠깐이나마 양평 서재를 함께 보기를 잘 했구나 싶다. 점점 뜻깊은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아서! 찬찬히 돌이켜보니 지나치게 짧게 머문 게 아쉬워질 것도 같다. 녀석의 항암 치료를 위해 함께 아산병원에 가는 길에 잠깐 들렀을 뿐이었으니. (이크, 큰일이다. 녀석의 얼굴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한두 마디만 더 적어보련다.) 우린 절친한 친구였다. 책은 나보다 적게 읽지만, 책 소재로도 대화가 이뤄졌다. 특별한 날이든 평범한 날이든 책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초등학교 말고 이렇게 써야 추억이 더욱 생생해진다) 같은 반으로 만나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26년을 서로에게 최상의 친구로 지냈다. 

 

거친 파도처럼 추억이 밀려들까 봐 다시 나의 공간을 둘러본다. 회상을 막아서는 소박한 저항이다.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으니  할 일 많은 날에는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에어컨이 숨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여름의 온기에 맞서고 있다. 책상도 어수선하다. 메모지, 디지털 기기 케이블, 잡지들, 필기도구, A4 인쇄물, 머그컵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딱 내 모습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한 나의 내면 말이다. 책상부터라도 주말에 싸악 정돈해야겠다. 내면세계도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에. 

 

산만한 물건들은 모두 내 일에 필요한 연관품이다. 케이블은 수업 녹음파일을 노트북으로 옮기기 위함이고, 인쇄물은 강연 팔로업 메일을 보낼 명단이 적힌 용지다. 메모엔 글쓰기 소재가 흘린 글씨체로 잠들어 있다. 머그컵은 일과를 시작하는 의례로 마시는 커피를 위한 필수품이자 일종의 제기()다. (돌이켜보면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외삼촌 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좋아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곳곳에서 내가 보였다. 바로 착수하지 못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일을 시작하는 성향의 사내가 보였고, 그 사내가 '아직은 준비가 안 됐네'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미루며 살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미래보다는 지나온 과거가 나를 잘 보여주듯이, 소지품이든 장식품이든 물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다. 당연한 일이다.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인생의 면면들이고, 인생은 점점 자기 주인을 닮아가니까.

 

그래서일까.

시간과 공간을 더듬어 살피는 일이 싫지 않다.

외려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주위를 자주 둘러보고

지난날을 돌이켜보기 위하여.

 

연남동 작업실에서 내다보는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