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아내의 산후 우울증에 대한 고민을 털어왔다. 그와 아내 모두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셋이서 만났다. 그녀는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나는 이것저것 물으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속내를 털어놓음으로 또는 누군가의 경청으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걸까. 그녀는 다른 분위기로 말했다. "그래도 좋을 때도 많아요." 힘들다고 말하다 보니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좋을 때가 많은 게 사실이라 꺼낸 말인지도.
앞으로도 힘든 게 있으면 더욱 털어놓기를 바라는 마음, 털어놓고서 괜히 후회스러우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적절하기를 바라며.
"네가 힘들다고 말해도 그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셔. 이해인 수녀님도 이런 말을 하셨더라.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행복하다고 해서 힘든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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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의 즐거운 대화는 조인성과 공효진이 남녀 주인공인 드라마 얘기로 흘러갔다. 친구 아내가 농담을 던졌다. "자기야, 오빠 조인성 닮지 않았어?" 후배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만히 보면 분위기랑 손짓이랑 뒷모습이 좀 닮았어."
내가 말을 받았다. "수영아, 앞으로 네 신랑까지 함께 의사소통하려면 조인성 이야기는 빼야겠다. 쟤 표정 좀 봐." 유쾌하고 친밀한 분위기 덕분에 함께 웃었다.
실은 종종 듣는 말이다. 외모 칭찬 말이다. 정확히 표현해야겠다. 뒷모습에 한정한다면 멋있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다. 12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앉은 의자 뒤에서 본부장님 왈, "외모가 정말 멋져요. 얼굴 돌리기 전까지는." 모두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정말 웃겼다.
그리곤 생각했다. 하나라도 멋지다면 좋은 일이라고. 자조나 자신감 없음은 아니다. 나의 외모가 보통 이하라고 느끼기에 하는 얘기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남자 중 7~8할이 자기 외모를 준수하다고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는 늘 의이했다. 정말인가? 나는 욕실 조명이 아무리 근사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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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많은 날이었다. 귀가하여 10분짜리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는 건 큰 낙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의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채널을 돌리는 사이, 조인성 주연의 드라마 엔딩 자막을 보았다(고마워 사랑아, 였던가). 최근 드라마 얘길 자주 들어서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TV도 즐기며 사는구나. 드라마도 즐거움인데, 나는 지금껏 책만 보며 살았구나.' 언젠가 내게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부하는 재미, 책 읽는 희열로 살았다. 지적 생활을 누리며 배움의 기쁨을 맛본다. 더러는 배운 것을 나누고 전하며 보람도 느낀다. 내가 놓치고 있는 삶의 즐거움도 많겠지? 드라마로 울고 웃는 카타르시스,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드는 황홀, 벗들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우정, 식도락에 빠져드는 즐거움, 그리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기쁨들.
삶의 다차원적이고 다채로운 재미를 생각하는 날엔 독서에 바친 날들이 아쉬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카잔자키스의 말이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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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답시고 사들인 책들이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 책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책값이 오피스텔 전세값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땐 책이 웬수 같았다. 책을 사는 대신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를 샀더라면! 이런 허황된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물론 이번 생엔 그리 값비싼 명품을 구입할 일은 없겠지만, 책값의 절반 정도는 물건 구매가 아니라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에 썼더라면 좋있을 것 같다.
"네가 힘들다고 말해도 그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셔. 이해인 수녀님도 이런 말을 하셨더라.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행복하다고 해서 힘든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태양은 날마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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