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따뜻하게 보낸 어느 주말

카잔 2014. 8. 25. 10:22

 

주말을 고향에서 보냈다. 친구의 49재를 지냈고 가족들과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섬으로 시작된 주말 일정은, 일요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만남과 대화로 채워진 주말,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찬 주말이었다.

 

 

1.

토요일이 친구의 49재였다. 대구 시외의 어느 절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였다. 산 자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죽은 이와의 이별이 슬펐다. 49개가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다. 눈물은 낯선 의식에서보다는 익숙한 일상에서 더욱 자주 나는 법. 참석한 이들은 스님과 함께 기도문을 읽기도 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 안위 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도로 도로 지미사바하” 뜻 모를 음을 따라한다고 해서 마음이 신성해지는 건 아니다. 49재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의식이 갖는 의미를 아는 것이리라.

 

불교의 윤회사상과 조상 영혼을 숭배하는 유교 사상이 절충되어 전해오는 의식이 49재다. 다음 생을 좋은 곳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고(불교), 후손을 잘 도와달라는 바람을 비는 것이다(유교).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통이니, 그 기원과 실효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현세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49재에 참여하면서 했다. 때로는 이성적 사고보다 맹목적 신앙이 서민들의 힘겨운 生에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그 믿음이 자기기만이고 비이성의 소산일지라도 말이다.

 

2.

49재 이후, 친구들과 가까운 스타벅스로 차를 몰았다. 삼십대 중반 사내 다섯이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졌다. 친구 한 명이 가위바위보로 찻값을 내자는 제안에 모두들 유쾌하게 참여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친구를 큰 주제로 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건강, 우정, 친구의 가족들 등이 대화 소재였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의 마지막은 우정을 쌓아가기 위한 노력에 관한 것이었다.

 

마음 맞는 벗들일지라도 인생살이에 밀리다 보면 자주 만나기가 어려우니, 모임 주기를 정하고 회비를 모으는 건 다들 비슷하리라. 우리도 매월 회비를 이체하고, 매해 두 번씩 서울과 대구를 번갈아가며 테마모임을 갖기로 했다. 회비금액, 주관자 순서, 총무를 정하는 등의 구체적 진행지침까지 정했다. 모임 하나가 생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데, 친한 벗들과의 만남이 어떤 추억들이 쌓여갈지 기대된다.

 

 

3.

주말, 본가에 있는 동안 틈나는 대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외할머니, 외삼촌 그리고 동생과 진솔하게 대화했다. 시간을 정해놓은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2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외할머니께는 이미 준비한 주제가 있어서 내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할머니께 고마웠던 점을 10분 정도 말했더니, 할머니는 2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니한테 이런 이야기를 다 하네. 마지막이자 처음이지 싶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참 좋다.” 내 마음도 참 좋았다.

 

치매 초기 증상이신 할머니께서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던 것과는 달리, 동생과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밀도가 높았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경찰공무원 시험이 대화 주제였다. 마음이 좀 어떠니?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네. 공부 방식에서 아쉬운 점도 많고. 동생의 첫마디에서부터 후회가 느껴졌다. 뭐가 가장 후회스럽냐? 동생은 핸드폰 사용, 늦은 취침 시각 등 여러 가지를 말했다. 시험 전에는 누구나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 최고의 성적이 아닌 공부한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말했다. 동생이 시험을 치르고 나면, 둘이서 술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잠깐씩 외숙모와도 대화를 나눴지만, 숙모의 외출 시간과 내가 집에 있던 시간이 맞지 않아 대화 시간이 가장 짧았다. 며느리로서의 삶에 대한 힘겨움을 잠시 들었을 뿐이었다. 일요일 오전, 외삼촌과는 대화를 길게 나눴다. 전날 동생과 나눴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집안의 소소한 고민들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열두 시 약속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쉽다. 할머니께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들에 대해서 여쭙고 싶었던 이야기도 못 나눴다.

 

대화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인가 보다. 가족들과 나눈 여섯 시간이 넘는 대화 덕분인지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4.

주말 마지막 일정은 배우자에게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여 힘들어하는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친구는 내게 메일을 보냈었다. 배우자의 이해못할 모습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일차로 메일 회신을 했고, 이번 만남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한 터였다. 우린 늦은 점심을 함께한 이후,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내가 위로나 도움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헤어지기 얼마 전, 나는 카뮈를 언급했다. 그의 부조리 개념에 대해 말하고서 그의 명언을 소개했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5.

포스팅 제목을 뭐라고 붙일까? ‘OO으로 보낸 어느 주말’ 정도의 제목이면 좋겠는데, 어떤 단어가 좋을까 생각했다. 몰입? 이건 다소 주도적인 느낌이 든다. 나는 순간에 열심히 젖어들었을 뿐 무언가를 주도하지는 않았다. 보람? 내 마음을 표현한 단어이긴 하나 주말이 보람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은 보람 대신 의아함도 있었다. 따뜻하게 보낸? 이것이 좋겠다. 49재에도 따뜻한 만남이 있었고, 친구들과의 대화는 우정이 따끈해진 시간이었고, 가족과의 대화는 따뜻함 자체였으니까. 상투적 표현이긴 하나, 정말 따.뜻.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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