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아름다운 가치가 깃든 메일

카잔 2014. 11. 26. 20:22

 

몇 주 전, 짧은 내용의 메일 하나가 왔습니다. <월요일마다 연지원님의 편지를 읽고 있었는데 몇 주 소식이 없어 궁금합니다. 여행 중이시라면 다행이지만  편찮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메일을 받았을 때의 제 반응은 기억 못합니다만, 두 문장을 읽는 지금은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여전히 제 아픔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마치 허기와 비슷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오는 배고픔 말입니다. 나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무려 6주 만에 마음편지를 재개한 날입니다. 편지 말미에, 그간 힘들었던 제 개인사를 적으며 마음편지를 보내지 못했던 이유라도 적으려다 관두었지요. 관심 가진 분이 계실까 싶은 생각이 들어, 오지랖이라 여겼거든요. 마음편지를 발송하기 전에 보내주신 메일을 읽었더라면 오지랖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좀 아팠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지요. 여름이 시작되면서 제 일상에 힘겨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와 사별했거든요. 사랑과 우정의 상실에 눈물로 지새운 밤들이 많았습니다. 가까스로 추스려가며 지내던 차에 노트북 데이터를 모조리 날려버린 일마저 겹쳤습니다. 

 

기록광이자 작가인 제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사건이었죠. 자아를 상실한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그럴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엔 그랬습니다.)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고 종종 무서운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은 종종 '인생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가. 더 고통스러운 일도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거든요.>

 

이런 설명에 고맙다는 말을 더하여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 끝인사는 이랬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 어떤 분이신지 모르지만, 하늘에다 빕니다. 자주 행복하시고, 아주 많이 건강하시기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자판기를 쿵쾅 두드리며 쳤던 구절입니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저는 '항상' 건강하세요, 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항상'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시 메일이 왔습니다.

 

<아..고맙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도 이렇게 다시 글을 다시 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지원님, 그냥 많이 울고 또 울고 하세요. 힘든 시간 잘 돌보시고 부디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하고 건강해 지시길 기원할게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데 그런 재주가 없어 많이 미안해집니다.> 메일 제목은 "고맙습니다"였습니다. 나는 2주 후, 오늘에야 회신을 보냈습니다.

 

<마음편지 필자, 연지원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네요. 이렇게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지면 추위에 몸을 웅크린 채로 한 해를 보내겠지요. 연말이면,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세월이 무상하다고 말들을 하겠지만,

인생 말고는 달리 의미를 찾을 데가 없는 우리입니다. 이것은 자조 섞인 넋두리가 아닙니다. 자기실현과 관계맺기를 통해 매일의 시간을 기분좋게 살아야겠다는 덤덤한 다짐입니다. 위로의 말에 무슨 재주가 필요할까요. 따뜻한 마음으로 충분했습니다. 메일 제목을 "고맙습니다" 라고 쓰셨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고맙지요.^^>

 

메일을 보낸 이는 경남에 사는 어떤 주부입니다. 그 분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조곤조곤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차를 타고 내려가 그 분을 만났습니다, 라고 쓴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제게 그런 용기는 없습니다. 메일에도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았고요. 마음편지에서 이곳 블로그를 언급한 적이 없었으니, 그 분이 이 글을 읽으실 리도 없을 테지요.

 

메일에 회신하며, 저는 용기라는 가치를 떠올렸습니다. 그 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신 것에도 작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메일로든, 대면으로든 사람에게 다가서는 일에 주저함이 없으신 분일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소심한 분이시라면 말이죠. 용기는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고, 그런 용기가 멋진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짧은 메일에 작게나마 힘을 얻은 저로서는 그 메일을 보내게 된 여러 정신적 가치(그것이 배려든, 감수성이든, 용기든 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제 내면에도 아름다운 가치들을 함양하고 싶거든요. 삶의 힘겨움을 딛고 일어설 때에도, 삶에 아름다운 순간을 조각할 때에도 빛나는 가치들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요. 『미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주문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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