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어떤 기록은 나를 경영한다

카잔 2014. 12. 1. 23:56

 

요란한 날씨로 시작된 12월이다. 아침에는 눈이 제법 내리더니 정오 무렵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오후에는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는데, 화창한 하늘 사이로 가는 눈이 내렸다. 추위는 이 모든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종일 위력을 떨쳤다. 날씨처럼 하루 동안의 내 마음도 요동쳤다. 마음편지를 보내고서는 기분이 좋았고, 그 편지에 대한 회신을 받고서는 눈물을 글썽였다. 와우팀원의 블로그 컨설팅 후에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예비 와우의 마음 아픈 일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일 만날 이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바쁜 주간임을 알려주는 이번 주 스케줄 표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사사건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적어본다. 느긋하게 내 일상을 만지고 다듬기 위해. 

내게, 기록은 만병통치약이다. 어떤 기록은 나를 치유하고 어떤 기록은 나를 경영한다.

 

1.

12월 7일까지 해야 할 일들부터 정리해 보자. 유니컨 송년회 준비, 호텔 예약, 전남대 강연 준비, 와우 10기 F-up, 2015년 교육 프로그램 공지, 미국 여행 계획 수립 그리고 『인문주의를 권함』 송부. 꼭 해야 하는 일들이거나 중요한 일들이다. 12월 마음편지 미리 작성하기, 시애틀 포틀랜드 여행지 조사까지 한다면 훌륭하게 한주를 보낸 셈이 될 것이다. 아래는 이번 주 일정들.

 

02일(화). 와우팀원 만남, 저녁식사 약속

03일(수). 친구랑 중식, 와우팀원 만남

04일(목). 집필 미팅, 와우팀원 만남

05일(금). 전남대 강연(12시~18시), 삼촌 숙모 만남 (22시 서울역)

06일(토). 친척 결혼식(14시, 축의금 수납), 송년회 (18시)

07일(일). 와우 10기 지원자 만남

 

2.

빡빡한 느낌이 든다. 주범은 미국 여행이다. 8일부터 22일까지 나는 시애틀과 포틀랜드 여행을 떠난다. SSD 데이터 유실 사고로 너무 힘들어서, 여행이나 다녀올까 하여 계획한 여행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힘들었던 그때 떠났어야 했다. 당시 잡혀 있던 일정이 더러 있어, 그걸 피하다보니 12월 중순에 여행을 떠나게 됐다. 지금 내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졌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 못한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괴로움과 허망감에 많이 익숙해졌다. 잃어버린 2개월(10월, 11월)을 만회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바람과 의욕도 생겼다. 여행에서 에너지를 충전해 오지 않아도 되는데, 여행을 떠나게 생겼다.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여행으로부터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2015년을 어떻게 살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몇 가지의 걸을 만한 길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고 싶다. 시애틀에서는 오랜만에 친구도 만날 것이다. 말이 잘 통하는 그와 이야기 나눌 생각을 하면 설렌다. 명석한 그는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3.  

여전히 책은 읽지 못하고 있다. 책을 펼치면, 생각이 떠오르거나 정리하고 싶은 지식을 만난다. 예전 같으면 노트북을 열어 원고에 포함하거나 학습 폴더에 파일 하나를 만들어 공부를 이어갈 테지만, 지금은 화가 치밀 뿐이다. 그래도 한두달 전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몇 장을 뒤적이긴 했다.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는 누군가에게 추천하기 전에 잠시, 김탁환의 『읽어가겠다』는 책읽기의 동기부여를 위해서. 『읽어가겠다』는 읽기 편했다. 건질 만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여느 때 같으면 불만 요소일 텐데, 지금은 편안한 마음을 안겨 주었다. 아직은 '참 좋은 책이구나' 싶은 책을 읽지는 못한다. 그런 책들은 (공부하고 정리해 온 자료들을 잃어버린) 삶의 단절성 앞으로 나를 몰아간다.

 

4.

책만이 성장을 돕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 지식을 얻는 데에서는 독서가 효과적이지만,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생각하고 자극을 얻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다. 일요일 저녁에 두 명의 와우를 만나 식사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참으로 따뜻했다. 토요일, 와우스토리 설명회에 오신 분들로부터 얻은 에너지와 와우들과의 커피 타임에서 느낀 편안함 그리고 한 독자와 대화하며 얻은 공부 자극은 내게 행복과 열정을 안겨 주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내 하루 안에 그리움이나 힘겨움 뿐만 아니라 따뜻함, 행복감, 생산성도 함께 존재하게 된다. 누구나 종종 사람으로부터 힘을 얻을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힘겨움도 느낄 테지만.

 

5.

오늘 카페에서 일을 좀 했다. 재즈 캐롤이 흘러나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떠올라, 나는 지금 쳇 베이커의 <Autumn Leaves>를 듣는 중이다. 야밤에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꽤나 감성적인 사람임을, 행복은 큰 성취나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 속에도 깃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나의 감성과 도처에 행복이 존재함은 모르던 바가 아니나, 기록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시간에 그걸 음미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의 힘이다. 어미 고양이가 지 새끼의 얼굴을 핥듯이 작가는 글쓰기의 소재를 음미한다. 때로는 정성스레 매만지고, 때로는 뜨겁게 관찰하고, 때로는 가만히 응시한다. 종종 사랑하기도 한다. 쳇 베이커의 경우는 응시다. 그의 삶은 자신의 매혹적인 음악과는 동떨어져 있다. 20대에 재즈로 꽃피운 인생은 이후 마약과 여자로 망가진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음악은 감옥의 담장 밖을 뛰어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질녘 그의 음악으로 하루를 마감했고, 어떤 이는 담장 너머 감옥에서 연주는 음악을 녹음하여 음반을 내기도 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 삶의 불가해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 응시하게 만드는 뮤지션, 쳇 베이커. 그의 삶은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만, 음악은 가슴을 어루만진다. 모순적인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사랑해선 안 될 사랑으로 인해 또는 사랑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괴롭고. 

 

6. 

와우 한 명이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 수년 동안 알아오는 동안, 한번도 부탁하지 않았던 일을 오늘 내게 부탁하는 걸 보고서 그의 힘겨움을 좀 더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두 말하지 않고 그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힘든 일도 아니었다. 한 시간 삼십 분만 수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농담 한 마디를 건넸는데, 그는 웃지 못했다. 내 농담 코드를 좋아하던 그였지만, 힘겨움으로 마음이 약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직감했다. 내일부터 무진장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 녀석이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다. 앞으로 당분간 전화라도 자주 해야겠다.

 

7.

여섯 쪼가리의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한주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정돈되었다. 할 일들과 이번 주 일정을 리스트로 정리해 두고 나니, 갑갑했던 마음도 쬐금 나아졌다. 머릿 속에 여러가지 의무들이 산재해 있던 때보다는 말이다. 사실 이번 주의 빠듯한 일정은 내 탓이 크다. 최근의 '게으름'과 '임박착수형 기질'의 합작품이다. 결자해지의 태도로 열심을 내보자. 이번 기회로 부지런함과 열정을 회복하고 싶다. 다시 만족스러운 하루 하루를 만끽하고 싶다. 내일부터 나는 하루를 조각하는 일상 예술가다. 재료는 성실, 애정, 용기이고, 목표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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