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강사와 청중의 합작품, 강의

카잔 2014. 11. 21. 23:49

 

1.

오늘 <렉티오 리딩> 강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성공은 나(강사)와 청중들의 합작품이다. 이것은 겸양이 아니다. 같은 내용인데도, 청중에 따라 강연을 말아 먹기도 하니까.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참여한 청중들은 열정적이다. 강사는 청중의 열정을 먹고 산다. 내가 잘 진행한 공도 있을 것이다. 독서 강연을 시작한지는 10년이 넘었고, 마이크임팩트에서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든다. 자발적 청중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생겨났다.

 

방심은 금물이다. 독서 강연은 내가 좀 잘하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강연을 망치는 일을 경험한다. 나의 준비된 감각은 자발적 청중들에 한해서다. 기업체로 불려가 강연을 할 때에는 새로운 감각으로 준비해야 한다. 무슨 내용의 강연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강단에 서면, 효과적인 강연을 진행하지 못한다. 최근 파슬코리아에서의 독서 강연이 나의 준비 부족으로 실패한 케이스다. 마이크임팩트에서의 성공 원칙이 실패 요인이었다.

 

2.

지난 주 <철학의 탄생지, 고대 그리스>도 그르친 강연이었다. 4주 동안 고대철학의 핵심을 다루는 강연인데, 나는 첫 시간을 잘 진행하고 싶었다. 과욕이 강연을 망쳤다. 2시간 30분에 다루기에는 다소 많은 분량을 준비했던 것. 첫 시간 70분은 효과적으로 진행했다. 몇몇 청중에게 듣자 하니, 좋았던 점이 모두 첫 시간에 다룬 내용이었다. 한편 내가 생각한 강연의 백미는 소크라테스를 다루는 둘째 시간이었다.

 

지난 차수에서 좋은 호응을 얻었던 소크라테스 강연인데, 120분짜리 강연을 70분에 우겨넣은 것이 문제였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진도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유인물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청중의 이해를 돕지 못한 채로 진도가 나가니, 강의장 내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를테면, 시간이 닿는 데까지 진행하고 나머지 내용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었다.

 

강사나 교사는 종종 이와 비슷한 실수를 한다. 내용을 전하면 학습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진도에 눈이 멀면 청중이나 학생이 제대로 학습했는지보다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배움은 강사의 전달에서 시작되지만 청중의 수용으로 완성된다. “진도보다 학생이 흥미를 느끼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독서지도사인 와우를 코칭했는데, 나 역시 실전에선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3.

오늘 강연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좋았다. 이런 날이면 행복한 귀갓길을 만끽한다. 강사로서의 보람, 의미, 기쁨은 역시 청중들과의 지적 교감으로부터 온다. 여수에서 올라왔다는 여학생은, 강연 후 지하철 역까지 함께 걸으면서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함박웃음을 안고 던진 질문들에 나는 집중하진 못했다. 지인의 친구 두 분이 오늘 강연회에 참석해서 그와 차라도 한 잔 할까를 고민하던 터였다.

 

“고전이 왜 중요해요?”라는 여학생의 질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나는 홀로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 분을 만나게 되면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루를 카페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결국 이 시각까지 나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인문주의를 권함』 퇴고를 시작했다. 두 달 만의 일이다. 마음이 어려워질 즈음, 파일을 닫고 블로그를 열어 이 포스팅을 한다. 내일은 좀 더 많은 분량의 퇴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