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카잔 2015. 1. 20. 08:12

1.

데이비드 실즈의 책 제목이다. 나는 실즈의 전작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힘들게 읽었다. 내용은 좋았으나, 묘하게 잘 읽히지 않았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도 힘겹게 읽기는 마찬가지인데, 두 권 모두 어려운 책이 아닌데 무엇 때문일까. 책 속 두 구절에서 힘겨움의 원인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 

 

실즈 : "나는 본문이 전혀 나뉘지 않은 책은 정말이지 거의 읽지 못한다." (p.200)

실즈 : "나는 가끔 앞에서 뒤로 읽기를 멈추고, 뒤에서 거꾸로 읽어 온다." (p.201)

 

나의 낮은 가독력은 낯선 작가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평균 독자들보다는 작가들 이름이나 작품명을 아는 편이니까. 실즈는 내용이 쭈욱 이어진 책보다 번호로 내용이 나뉘어진 책을 훨씬 잘 읽는다고 했다. 그와 달리 나는 번호로 나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차이가 없다. 다만 실즈의 책을 조금은 덜컥거리며 읽는 중이다.  

 

메모가 곧 책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에는 동의하지만, 내용의 구분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어떤 성향을 가진 것 같다.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게 이 책을 끝까지 읽으려는 이유다. (지금은 절반쯤 읽었다.) 나는 나와 다른 기질의 강점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탁월함에 이르고 싶은 욕심쟁이 독자다.

 

2.

실즈는 주제에 관한 다양한 소재로 글을 산만하게 펼쳤다가 결말 부분에서 절묘하게 봉합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 기술을 '화룡점정 글쓰기' 또는 '화룡점정의 기술'이라 부른다. 마지막에 용의 눈을 그려 넣었더니 용이 날아오르듯, 마지막 대목이 글의 전체를 비상하게 만드는 기술.

 

화룡점정의 기술은 의도적으로 갈고 닦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기질 덕분일 것이다. 이것은 일부 탁월한 사상가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가 그렇다.) 이런 글은 일부만 읽어서는 글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 글 전체가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그 방향은 알기 위해서는 전체를 알아야만 하는 묘한 글이다. 책의 뒤표지에 쓰인 이다혜 기자의 글을 보니, 그녀는 화룡점정 글쓰기가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표현했다.  

 

이다혜 : "멋진 논픽션이라면, 마지막 대목이 글 전체를 요약하거나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흐름상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막내 기자 시절에 배웠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면 『문학은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가』를 읽어보면 된다."

 

화룡점정의 기술은  박학 + 직관 + 논리 + 감수성의 결과다. 박학은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펼칠 수가 없다. 직관은 '이것'과 '저것'의 연결을 순식간에 이끌어낸다. 논리가 결여되면 연결이 느슨해져 비약이 된다. 여기서의 감수성은 배치에 대한 감각을 뜻한다. 기막힌 마지막 문장을 선택하는 힘 말이다. 굳이 감수성이라 말한 것은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멋진 기술이지만, 모든 멋진 논픽션이 이렇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화룡점정의 기술'을 논픽션 쓰기의 최고 또는 유일한 방법론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다혜 기자가 막내 시절에 배운 기술은 고품격 수사학 중 하나일 뿐이다. 리영희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이리 말했을 것이다.

 

"논픽션은 팩트가 중요하지. 팩트로 시작하고 팩트로 끝나야 해. 수사는 그 다음이야." 선생이 '수사'를 언급했을지는 모르겠다. 언급하시더라도 예술적 감각보다는 사실 전달을 위한 감각 정도를 뜻하셨으리라. (선생이 논픽션 글쓰기에 대해 말씀하신 책이 있는데, 지금 내게 그 책이 없어서 정확한 인용을 못했다.)

 

3.

이다혜 기자는 이 책이 화룡점정의 기술을 제대로 구현해낸 책이라고 평했다. 대체로 동의한다. 두어번은 용을 비상시키지 못했다고 느꼈지만, 그것이 저자의 봉합 실패인지 나의 독해 실패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책의 몇 대목을 꾸역꾸역 읽곤 했으니까.) 구분이 될 때까지는 이 책을 놓치 않을 것이다. (나는 시시한 책은 미련없이 그만 읽는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나는 이 책을,

 

* 화룡점정의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피며

* 저자가 그 기술의 대가인지를 회의적으로 진단하며

* 간간히 등장하는 통찰을 사유의 기회로 삼으며

* 모르는 작가가 나오면 인터넷 서핑을 해 가며 (대부분 국내 미출간이라 고역이다.)

* 어떤 작가는 자기애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실즈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으며)

 

읽고 있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How Literature saved my life』 책세상, 2014)

 

[덧] 독서의 기술 연마와 그 기술의 공유는 늘 제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책 읽는 장면 하나를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방법론적 지식은 이론보다는 이렇게 구체성으로 더 잘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느낀 게 있으면 또는 궁금함이 있으시면 댓글 부탁합니다. 소통이 구체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