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2015년 성찰일지 (2)

카잔 2015. 2. 1. 02:18


2015년, 2월이 되었다. 한 달의 마지막 나흘 동안 나의 귀가 시간은 항상 자정을 넘겼다. 고향에서 친구가 올라오기도 했고, 마지막 철학 수업을 마치고 뒤풀이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1월에서 2월로 넘어가는 오늘도, 나는 집에 있지 않았다. 귀가하니 새벽 1시 18분이었다. 나는 분명 욕심쟁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새로운 달로 넘어가는 찰나에 지난 한 달을 돌아보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야밤에 노트북을 켰다.  

 

1-1.

올해는 월마다 빛나는 책을 읽어야지. 책 선정을 신중히 할 뿐만 아니라 최대한 많은 책을 읽어야지. (읽는 족족 그런 책을 만날 순 없을 테니까.) 이것이 나의 독서 목표였다.


글쓰기 과정(플로라이팅 4기) 1주차 수업을 위해 파리 리뷰의 『작가란 무엇인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 피터 엘보의 『힘있는 글쓰기』를 읽었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은 작가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라 글을 쓰는 태도와 글쓰기를 향한 헌신을 배울 수 있었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유명한 파리 리뷰 인터뷰집이다. (뉴욕에서 출간되는 잡지 <파리 리뷰>는 대작가들의 인터뷰로 유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저는 비평보다는 번역을 좋아한답니다. 번역할 때는 판단을 내리도록 요청받지 않으니까요. 그저 한 줄 한 줄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제 몸과 마음을 통과해가도록 할 뿐입니다. 비평도 세상에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제가 할 일은 아니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힘있는 글쓰기』는 실용적이고 통찰도 넘쳤다. 오랜 시간 글쓰기를 가르친 저자의 경력은 분명 좋은 책을 내는 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좋은 글쓰기 책은 창조적 자아와 비판적 자아의 균형적 성장을 강조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두 자아를 키우는 방법론까지 제시한다면 매우 탁월한 책이 되는 셈인데, 그런 책은 많지 않다. 『힘있는 글쓰기』는 창조적 자아가 심리적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비판적 자아까지도 심리적 문제로 접근했다는 점은 아쉽다. 비판적 자아는 글쓰기 감각과 퇴고의 기술에 달린 문제다.


1-2.

남경태 선생의 『철학입문 18』을 비롯한 몇 권의 철학 입문서를 읽었다. 『철학입문 18』은 이론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철학 비전공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주체, 인식, 무의식, 언어, 이념 등의 주요 개념들을 스토리로 풀어낸다. (이전 출판사에서의 제목이 『스토리 18』이었다.) 남경태의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과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에서 각각 자크 라캉과 알랭 바디우의 챕터를 발췌독했다. 현대철학을 알아가는 맛이 달콤한 요즘이다. 올해 내로 푸코, 바디우, 아감벤, 지젝에 관한 좋은 책을 한 권씩을 읽어볼 생각으로 기초를 다지는 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뒤적였지만, 책을 살피며 필요한 대목만 확인하기 위한 독서였기에 끝까지 읽은 책은 없다. (전재원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장 마리 장브의 『아리스토텔레스』)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이론적 지식보다는 실천적 제안들을 많이 담은 책이다. 생각하도록 돕고, 삶에 적용하도록 이끄니,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을 추구하는 책인 셈. 소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니 않으니 입문자에게도 유익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기보다 유익할지는 모르겠다.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했고, 2008년 문학동네에 발표되었던 신경숙의 단편 「모르는 여인들」을 읽었다. 지젝의 책은 '시대적 텍스트'로서 집어든 책이다. 단편을 읽으면서는, 사랑은 상대의 가장 초라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이는 행위라는 점, (대개는 이기심 때문에 한 사람을 떠날 텐데) 우리가 이타심으로도 누군가를 떠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 점이 개인적인 독서 유익이었다. 단편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서도, 이야기의 서두를 장식한 아주머니의 달리기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지 난감하고 막연했다.

 

1-3.

2월에는 좀 더 많은 단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모르는 여인들』 에 실린 단편들을 모두 읽을 계획이다. 현상학과 구조주의에 관한 입문서를 읽는 것으로 현대철학 기본기 쌓기를 계속 진행하고,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와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을 끝까지 읽고 싶다. 2월은 세계문학의 대작들을 읽어두어야 하는 달이기도 하다. 『오뒷세이아』, 키케로의 에세이, 『돈키호테』 등을 읽어가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세계문학에 손을 댈 시간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노스럽 프라이의 책은 틈틈히 읽어나갈 생각이다.

 

2.

2015년 Great Legacy Academy 수업을 시작했다. 첫 강좌 GLA START 과정이 성공적으로 출발했고, 이 강연은 나를 춤추게 한다. 참가자들의 열의와 적극적 반응도 고무적이지만, 그 이전에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내적인 충만감을 느낀다. 지난 한해 동안 공부하고 준비한 내용이어서인지, 수업 내용에 대한 자신감도 느껴졌다. 늘 나의 지식과 실천에 미완성의 느끼는 나로서는 생경한 감정이었다. 오만에 빠져 어떤 생각이나 확신에 함몰되지 않는다면, 얼마간의 자신감이 수업 효과를 높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배운 것들을 익히고 삶의 현장에서 검증하겠다는 생각 뿐이니, 자신감의 효과를 더욱 드높이는 일도 강사로서 해야 할 일이겠다. 

 

'™ My Story > 거북이의 자기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경영의 최종적 실현  (0) 2015.02.08
반응이 곧 존재다  (2) 2015.02.04
나는 왜 이 글을 썼을까  (1) 2015.01.21
2015년 성찰일지 (1)  (1) 2015.01.18
명실상부가 나를 위로하다  (2) 201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