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과연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카잔 2015. 8. 12. 23:51

1.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이런 금언 류의 말은 아무렇게나 조합해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생각' 대신 환경, 습관, 결심 등을 넣어도 공감하는 정도차는 있겠지만, 그럴듯한 말이 된다. 그러니 금언에 속지 말아야 한다. 금언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것은 재치나 재주에 가깝지, 그것이 지성과 지혜를 항상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금언의 가장 큰 유익은 사고를 추동한다는 점이다. 

 

2.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못 생긴 남자, 허풍쟁이 남자보다 용기 없는 남자가 더 매력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관하여 생각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말일 텐데... 나는 그걸 두고 여러 차례, 몇 분 동안에 걸쳐 생각했다. 이런 나를 보면, 녀석은 '너무 진지하게 사네' 또는 '너한테는 농담도 못하겠다'고 말하겠지만, 이것이 진지함라면 나는 진지하게[각주:1] 사는 게 맞다.

 

지금은 무(無)매력남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매력없는 남자인가' 하는 자기 함몰적인 이미지 관리 때문에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의 결과다. 정말 어떤 남자가 매력이 없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용기 있는 남자, 용기 있는 사람이 될까. 문득 헤이리예술마을의 한 카페 지배인이 떠올랐다.  내가 종종 들러 쳐다본 바로는 나 또래의 사내인데, 나는 그와 친구로 지내고 싶다. 지금껏 말 한 마디 못 꺼냈지만.

 

3.

생각은 결론 없이 끊어졌다. 일상이 시작되었고 수요일은 번역 수업을 듣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종강이라 수업 후 다른 수강생 3명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점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수강생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보다 열살 가까이 어릴 거라 생각했지만, 고작 세 살 어렸다. 그는 말 중간 중간에 나를 형이라 불렀다. 넉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넉살좋은 이들이 종종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 않은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형이라는 호칭이 고마웠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려나?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 친해진 경우가 드물다. 올해는 딱 두 번이었다. 지난 달, 나와 동갑내기 사내와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만남을 꼽으련다. 사실 세살 터울 그와 아직 친해진 것은 아니다. 그저 40~50분 이야기를 나눈 것 뿐이니까. 결국 이런 만남도 드물다는 뜻이 되겠다.  

 

진작부터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 탓인지, 오늘 아침에 용기를 내며 살자고 생각한 덕분인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와 글쟁이로서의 비전을 말했다. 친구 얘기를 해야 요즘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셈이고, 집필에 대한 비전을 낯선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건 내겐 정말 용기다. 조용한 수강실이라는 환경도 대화를 도와 주었다. 그와 말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을 말하고 있는 내가 어색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4.

과연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머리를 털면서 가졌던 "용기 있게 살자"는 생각은 그때 이미 머리에서 내 가슴으로 내려와 있었나 보다. 이성보다 가슴에 품은 열정이 더 행동지향적인 걸까? 하긴 머리보다 가슴이 손발에 더 가깝긴 하다. 열정은 무대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연극 배우와 같다. 일상을 지켜보다가 자기가 등장할 차례가 되면 뛰쳐나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역할을 열연하고 퇴장한다. 열정은 감정의 덩어리로 여겨지곤 하나, 가슴으로 내려온 생각도 열정이 된다.

 

이것이 친한 동생이 될지도 모를 사내와 이야기를 나눈 소감이다. 애일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무 대화를 독차지한 것은 아닌지, 괜한 말(이를 테면, 친구와의 사별)을 꺼낸 것은 아닌지 잠시 염려하기도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지나친 진지함이리라. '진작에 오늘처럼 용기 있게 살았더라면 친구 한 둘이 더 생겼겠다'는 생각도 글을 쓰면서 들었다.

 

5.

내일 아침에는 행동으로 낳고 싶은 또 다른 생각의 실험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화두는 이미 정했다. 어떻게 하면 박력남이 될까? 오래전부터 박력의 삶을 꿈꾸었다. 용기 있게, 힘 있게 밀고 나가는 힘을 박력이라 한다. 박력남이 박력을 추구하면 당연하고 때론 부작용도 만들 테지만, 진지남이 박력을 추구하면 변증법의 균형과 뜻밖의 반가운 결과물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든다. (그나저나 내게 용기 운운한 친구는 이성에 대한 용기를 뜻한 걸 텐데, 나는 엉뚱하게 삶을 향한 박력을 다짐하고 있다. 하하. 고맙다, 친구야.)

 

  1. 사실 진지함은 참 좋은 말이다. 사전이 말하는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라는 뜻에는 부정적인 구석이 없지만, 일상에서는 골치 아프게, 지나칠 정도로 생각에 치우쳐 산다는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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