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글 쓰고 책 읽고 배고프고

카잔 2015. 8. 13. 19:19

1.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도서관 <지혜의 숲>에 왔다. 주차를 하고서 핸드폰 알람을 “21:00” 분으로 맞추고서 눈을 붙였다. 점심 식사 후의 단잠은 오후 일과를 활기차게 보내도록 돕는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지켜가고 있는 습관이다. 내게는 15~20분 정도가 적당한데 15분 동안 자고 싶으면 16분을, 20분 동안 자고 싶으면 21분을 맞춘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하게 15분을 자는 것은 아니니, 일종의 비합리적인 모습인 셈이다. 누구에게나 비합리성은 발견될 테고.

 

단잠 덕분에 상쾌해진 기분으로 도서관에 와서 글을 썼다. 요즘 집필에 열심을 내는 중이다. 올해 안에 반드시 출간한다는 목표로 날마다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출판사에 보낼 만한 원고가 작년부터 노트북에 잠들어 있던 터였는데, 원고가 다듬어질 때마다 가슴마저 후련해지는 8월이다. 책이 내 손에 들리는 날이면, 기분이 어떨까? 첫 책을 출간했을 때의 감격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 덧 만으로 7년도 더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2.

글을 쓰다가 잠시 쉬려고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렸다. 지난번에 읽다가 꽂아두었던 김남주 시집 사상의 거처를 읽을까 하다가 창작과비평사 코너를 지나쳐 문예출판사 쪽으로 갔다. 한국문학의 역사의식을 뽑아 들었다. 제목만으로도 끌림이 강한 책이라 언제고 읽어야지하던 책이다. 정치, 종교, 문화, 사회, 역사에 무관심한 예술이 위대한 예술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미주의자(예술지상주의자)들의 작품 또한 당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이 책을 뽑아든 직접적인 이유는 9월에 진행할 한국현대사 수업 때문이다. 역사의식이 깃든 문학 작품을 소개하면, 역사적 현장성과 문학적 상상력 덕분에 수업이 생생해진다. 한국문학의 역사의식한국 현대시의 역사의식, 한국 현대소설의 역사의식, 옛 시의 역사의식 이렇게 3부로 구성된 책이다. 나는 1부에서 ‘4.19 혁명을 시인들은 어떻게 이해하였나를 읽었다. 이미 4.19 혁명의 시인으로 김수영과 신동엽을 읽었지만 이 책 덕분에 두 시인 외에도 주목할 시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진 참조)

 

이승화 저 『한국문학의 역사의식』p.85

 

3.

사진을 찍으려니 핸드폰은 문자 메시지가 와 있음을 알린다. 이크! 그러고 보니 오늘은 꼭 연락해야 하는 일이 있음도 떠올랐다. 며칠째 미뤄온 일들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미루며 살까? 이유는 안다. 더 적절한 시기를 찾고, 더 나은 방식을 찾고, 더 준비하면 좋은 일들을 하느라 그렇다. 이 징글징글한 완벽주의... () 쯧쯧, 나도 할 말이 없다. 배가 고프기도 하니, 이제 도서관을 나서야겠다. 다음 행선지는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저녁 식사와 함께하는 책읽기의 시간!

 

오늘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는 날이다. 사실 홀로 있으면서도 시간을 잘 보내기가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기질에 따라 하루종일 혼자 있으면 생산성과 에너지가 떨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와 반대다. 혼자 있으면 굉장히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운동도 했고, 4시간 이상 원고를 썼고(블로그 포스팅한 시간은 제외) 두 끼는 직접 챙겨 먹기도 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계란 후라이를 하는 정도였지만.) 50여쪽이 넘는 책을 읽기도 했고, 운전하는 동안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명반 <Birth of the Cool>을 감상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끼니 문제가 고역이다. 사람들 붐비는 맛집에는 혼자 가기 미안해서, 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나 1~2인용 테이블이 없는 집에는 그저 미안해서, 붐비는 시간대에는 더 많은 손님이 앉을 기회를 뺐는 것 같아서 못 간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먹을거리가 제한된다. 때때로 이런 제약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식당을 발견해도 그저 멋적어서 못 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날에는 1인이 가나 2인이 가나 반찬이 비슷하게 나오고, 음식 단가가 비싼 삼계탕이나 갈비탕 집에 가거나 카페에서 샐러드를 먹는다.

 

오늘은 오후 3시에 출발하기도 했고 출발하기 전에 바나나를 하나 먹었고 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도 챙겨두었다. 그리고 저녁을 헤이리 예술마을의 아다마스에서 샐러드와 커피를 먹기로 예상했던 터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고, 대개는 식사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곤란스럽게 만든다. 대충 떼울 수도 없다. 건강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근본이니까. 자연스레 식사 친구가 대한민국 곳곳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90분~120분 정도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를 나누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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