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10개의 순간을 기록하다

카잔 2015. 8. 18. 12:29

 

1.

오늘 13시에 꽤나 흥미로운 미팅이 있는데, 그래서 무언가 사전 준비를 좀 하려고 했지만, 결국 조금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보다 앞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와우팀 8월 수업에 대해 생각했고(10기들에게 간단한 소식 하나를 전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려를 해야 했다), 메일 회신을 하는 일에도 얼마간의 시간을 썼다. 이런 활동들은 분명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하면서 즐겁거나 교감하는 '기쁨'이기도 하다. 이 말을 합치면 '일하는 기쁨'이 되는 건가.

 

2.

'오늘은 바쁜데, 집안 일을 하루 건너 뛸까?' 아침에 하루 일과를 체크하며 든 생각이었다. 아내나 가정부가 있지 않은 이상, 집안 일은 매일 쏟아진다. 이 놈들은 어김이 없다. 먼지는 날마다 성실하게 쌓이고, 빨랫감도 꾸준히 자신의 몸집을 키워간다. 어마무시한 진공청소기를 실내에 두고 24시간 가동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벌거숭이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평생 맞이해야 할 일상이다. 오늘은 굵직한 일정이 3개나 있기에, 마음이 분주했다. 하지만 글모닝(아침 집필)을 거르지 않았고, 식사를 소홀히 먹지도 않았다. 일상경영의 핵심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라 믿으니까.

 

3.

오전 시간을 카페 '블랑'에서 보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오전 근무 공간인 셈이다. 블로그에 GLA 수업 공지까지 올리고나니 12시가 훌쩍 지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니체의 『아침놀』을 읽느라 50분 정도를 보냈었다.) 마음이 다급해져 잠시나마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오후를 차분하게 싶어서다. 20~30분을 투자하면, 나의 하루경영에 여유와 상념을 정돈할 수 있으니, 대개는 남는 장사다.

 

사실 이 포스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따로 있다. 수업 공지 포스팅을 하나 아래로 밀어내는 것이다. (나는 공지 콤플렉스가 있다. 수업을 공지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몰려든다. 아는 게 없다는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히고 주저하게 한다. 종종 공지를 수업 시작일에 빠듯하게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때문이다.) 이 포스팅으로 임무 완수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메인 화면에서 두번째 포스팅이 된다고 해서 공개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참 나도 웃긴다. 4번, 5번에 대해 쓸 말이 남았지만, 오늘 밤을 기약해야겠다. 출발해야 할 시각이다.

 

4.

이동하면서 오늘 미팅을 위한 안건들을 꼼꼼히 읽었다. 미팅에서 이야기나누면 좋을 키워드가 직관적으로 떠올랐다.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또한 이야기 나눌 화두들이 건져질 거라 생각했다. 이것은 나에 대한 자신감인 동시에 경청과 소통의 힘에 대한 신뢰다. 내 안에 그가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A와 B가 경청하고 소통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사유의 디딤돌이 되어 우리는 새로운 잠시 아이디어를 가진 C, D, E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5.

만나 이야기를 나누나 보니, 우리는 동갑내기 사내였다. 학번으로는 같고, 출생년은 달랐다. (내가 음력 1월생이다.)  수개월의 차이가 나는 셈. "저보다 형이면 형이라고 부르려고 했어요." 서로 나이를 이야기하다가 그가 던진 말이다. 이 한 마디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형이라 부를까요, 뭐 이러다가 서로 편하게 '씨'를 붙여 부르기로 했다. 회사에서 부르는 직함은 그 순간 지워졌다. 입에 붙은 호칭이라 대화하다가 한 두 번 더 쓰기는 했지만. (나는 와우팀장이라 불리기에 '팀장'이라는 호칭도 편한했지만, '~씨'도 좋았다.)

 

우리는 공부하는 모임에서 만났다. 책과 공부를 좋아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각별하다는 점이 둘의 공통점이다. 그를 만난 것은 어느 수업에서였다. 첫 수업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복사한 유인물이 적어서 한 부를 더 복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날 수업이라 부탁하기 멋쩍으셨는지 선생님께서 직접 일어서는 찰나, 내가 나섰다. "제가 복사해서 오겠습니다." 이미 일어섰기에 선생님은 내게 유인물을 맡기셨다. 수업이 조금 진행되다 또 한 명의 수강생이 왔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그가 유인물을 받아갔다. 그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약 50여일이 지나 오늘 만나보니, 과연 닮은 점이 있었다.

 

6.

함께 식사를 하며, 나는 내 짧은 직업 경력을 이야기했다. 그의 삶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꺼낸 말들이었기에 내 말이 끝나고 물었다. "이게 간단한 제 삶 이야기인데, 어때요? 지금 계신 회사에는 몇 년째세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나누다 보니, 처음 만나 밥을 먹으면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주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의 진중함 따위가 아니라, 말을 길게 하다 보니 숟가락질을 할 새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서로를 배려하며 말을 주고 받았다. 이야기는 카페에서 이어졌다. 그는 에스프레소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둘의 대화는 편안했고, 즐거웠고, 유익했다. 같은 재료, 다른 농도! 닮았다는 말은 어쩌면 비슷한 취향, 관심, 가치관이 조금씩 다른 농도로 삶을 산다는 말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7.

저녁 미팅은 취소되었다. 상대가 급한 일이 생겼나 보다. 낮 12시 즈음에 "죄송하다"고 온 연락을 약속 시간 10분 전에야 확인했다. 얼른 회신했다. "(미안해요.) 오늘 바쁘게 지내느라 확인을 늦게 했네요. 마음 편히 저녁 일정 보내세요." 괄호 속의 말은 마음에서만 머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아니예요, 선생님." 라고 한 번 더 반응하게 만드는 말이었고, 내가 연배가 사과하면 상대가 더욱 미안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낸 마지막 카톡은 "네네 죄송해요. + 눈물이모티콘"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길 잘 했구나 싶었다.

 

8.

애일당에 와서 '유니컨' 관련한 공지글을 쓰고, 친구 박상에게 메일을 썼다. 내 힘든 마음을 담은 꽤 긴 메일이었다. 눈물을 짓기도 하고, 옛 일을 후회하기도 하고, 메일의 마지막에 가서는 힘을 내마 하고 약속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오갔지만 미소를 머금거나 하지는 못했다.) 녀석에게 메일을 보냈다. 녀석 메일의 비밀번호를 아무도 모르니, 나와 녀석만 알고 있다는 생각과 기대를 했다. 메일을 반송되어 돌아왔다. 휴면계정이란다. 쉬면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휴면'인데, 죽음도 휴면에 불과하면 좋겠다. 서로 다른 곳에서 좀 쉬다가 다시 클릭 한 번으로 만남이 재개된다면 참 좋겠다. 내세가 과연 그러한 것일까?

 

9. 

밤에는 상성라이온즈 야구의 막바지 부분을 조금 보았다.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여, 스트리밍 동영상을 멈추고,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2015년 나의 목표 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올해의 2/3가 지나가고 있는데 목표 달성률은 처참하다.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101가지 목표"도 꺼냈다. 4년 전에 작성한 것인데, 이 역시 고작 하나를 달성했을 뿐이었다. 4년에 하나씩 달성하는 수준이라면, 목표 완취에는 404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평생 목표는 차치하고, 올해 목표 관리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8월 18일 버전'으로 조금 수정했다.

 

10.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읽던『아침놀』을 펼쳤다. 99번째 잠언에서 니체가 묻는다. "우리 모두는 어떤 점에서 비이성적인가?" 그리고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판단들과 더 이상 믿지 않는 교설들에서 여전히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의 감정을 통해서 말이다."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도 마찬가지겠지? 이 책은 전문가들이 구분한 니체 저작물의 초기, 중기, 원숙기 중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함께 중기에 해당되는 책이다. 이제 니체는 (간간히 2차 문헌의 도움을 받긴 해야 하지만) 번역본만으로도 독해가 조금씩 이뤄져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원전까지 검토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