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평범한 휴일 오전의 일상

카잔 2015. 8. 23. 11:41

1.

난 이런 게 참 신기합니다. 삼일 연속으로 정확하게 7시 30분에 일어났거든요. 규칙적 습관을 가졌거나(요즘 잠드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죠) 알람을 맞춰 둔 것도 아니고, 우연이라 하기엔 신기함이 앞섭니다. 눈을 뜨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취침 시간을 계산합니다. 제 오랜 습관입니다. 5시간 40분. '아! 15분만 더 잤으면 좋을 텐데..' 램수면을 염두에 둔 바람이지만, 알람이나 햇살의 재촉 없이 자연스레 깼으니 거의 램수면 주기에 맞춰 일어났다는 생각도 듭니다. (램수면 주기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90분 단위의 취침이 좋다는군요. 6시간, 7시간 30분...)

 

2.

사과원액으로 만든 주스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마음이 느긋해지는 날이고 이불 빨래와 화장실 청소가 떠오릅니다. 화장실 청소와는 달리 이불 빨래를 매주 하는 건 아니지만, 한다고 하면 일요일에 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글쟁이, 와우리더 등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한 사람의 주부가 된 듯 한 순간이죠.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게으른 주부는 아닐 겁니다. 끼니를 거르는 일 없고, 날마다 청소를 하니까요. 1인 가구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인데, 그들은 모두 직업인과 생활인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겠지요. 직장인들의 역량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생활인으로서의 부지런함도 저마다 다를 테지만 말이죠.

 

3.

어젯밤에 챙겨둔 식탁 위의 간단한 아침식사 거리를 먹고 신문을 펼쳐 듭니다. 사실 신문을 읽을 시간은 지극히 부족합니다. 신문을 한 면씩 넘길 때, 가끔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춰,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모든 사람들이 정지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다. 책이랑 신문 좀 읽게.' 지금 당장 그럴 시간을 갖자니 할 일도 많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니까요. 하하하. 이 생각을 글로 활자화하고 나니 왠지 쓸데 없는 생각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아 기대감도 드는군요.

 

신문을 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관심 기사를 오려 따로 모아두긴 합니다. 오늘은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결과(북한의 도발 소식과 함께 이번 주 가장 놀랐던 뉴스였거든요), 대학생들의 타임푸어에 관한 기사를 오렸습니다. 뇌까지 암이 퍼졌다는 지미 카터에 관한 단신과 젊은 소설사 손보미에 대한 짧은 평론을 읽었고요. 제가 문학비평에 관심이 많아 가끔씩 소설집을 읽곤 하는데, 손보미는 2014년, 201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가입니다. 대통령 임기 후에는 해비타트 운동으로도 유명했던 카터의 소식에 친구가 떠올랐음은 당연지사였네요.

 

4.

이제 청소를 시작합니다. 휴일 청소이니 평소보다는 조금 더 신경을 씁니다. 오늘의 집중구역은 화장실 청소입니다. 집중구역이 따로 있긴 하나 방 청소 역시 평일과는 다릅니다. 구석구석 진공청소기 주입구를 들이대고 쓱삭쓱삭 물걸레를 훔칩니다. (저는 물걸레 대신 세균박멸 기능이 있는 물티슈를 쓰고요. 낭비를 못하는 의식이 습관화되어 일회용 물티슈의 경우는 접고 접고 또 접어 활용하죠.) 휴일마다 하는 화장실 청소도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변기 뒷쪽 구석까지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 줄과 타일 사이사이에 낀 물때도 지웠네요.

 

5.

'10시에는 '블랑'에 도착해야지!' 하는 가벼운 계획이 있었는데, 10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시간을 맞추려고 서둘거나 마음 조급하게 움직인 건 아닙니다. 휴일을 그리 살면 고달프잖아요. "계획하지 않은 시간은 자신의 약점으로 흐른다"라는 교훈을 20대 초반부터 가슴에 새긴 자연스러운 제 삶의 리듬입니다. 마음 속의 가벼운 계획 말입니다. '가벼운'이라고 한정한 것은 모든 계획은 유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방향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매순간을 살아가면서도 외부세계에 뛰어들어 지혜롭게 교류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멋진 인생을 만들 거라 생각하거든요. 주도적이면서도 협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좋네요. ^^

 

인생사는 불청객처럼 찾아들지만, 그것들이 모두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행운, 의미, 축복도 예고하지 않고 불쑥 찾아들곤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부정적 뉘앙스로 쓰는 단어 '불청객'은 가치 중립적인 개념이라 봐야겠지요. "오라고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온 손님"이라는 뜻일 뿐이니까요. 계획은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면, 계획을 책상 서랍이나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바로 화답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가 이리 길어져 버렸네요. (다른 이들의 요청만을 소중히 다뤄온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의 화두는 '이제부터는 자기 내면의 요청도 소중히 다루기' 정도가 되겠지요.)

 

* 어느 휴일의 오전, 지극히 평범한 제 일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진솔하게 내어놓으면 누군가와 공명하리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것이 평범의 본질일 테니까요. 오늘 오후는 그다지 평범하지 않습니다. 저녁에 강연이 있고, 퇴고도 해야 해서 내내 글만 쓸 생각이거든요. 이건 분명 예외적인 주말의 모습이니, 언젠가 평범한 주말 오후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포스팅을 함으로써, 이 글도 이대로 인정해 두고요. 머잖아 글을 다듬긴 하겠지만, 태어났으니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고 싶거든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녀석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 소박한 단상도 제겐 깨달음의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