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춤을 추며 행진하는 사람

카잔 2015. 8. 27. 12:17

1.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사랑 고백처럼 달콤하고, 이곳 서울역사 내의 공기들이 반짝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걸핏하면 삶의 의미를 몰라 염세적인 정조에 휩싸이곤 하는 요즘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숨 쉬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A4 3페이지 남짓의 글 하나를 완성했거든요.

 

작은 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이 생경하면서도, 반갑습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말이죠. 보다 자주 써야겠습니다. 훨씬 더 부지런히 써야겠습니다. 이런 생각은 은근히 나를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집필했던 원고를 몽땅 잃어버린 사건을 지우거나 덮어버리거나, 그 방법이야 어떻든 그 일과 화해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 이것 보세요. 어찌, 이리도 순식간에(!), ‘예전의 그 사건지금의 내 행복이 가로채려고 하는지요. 니체가 말한 망각의 조형력을 익히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내 행복을 즐기는 시간이니, 간단히 두 줄로만 설명해야겠군요. 해석과 생각 그리고 실천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겨 드리고요.

 

어떤 기억은 비의지적으로 찾아들어 우리의 현재를 집어 삼킨다.

때때로 망각의 힘을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현재를 지켜야 한다.

 

2.

올해 안으로 출간하려는 책은 모두 21개의 장입니다. 그 중 3부의 7장은 마지막까지 갈무리지하지 못해 은근히 부담이 되었는데, 방금 막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이 마음에 듭니다. 지금 내 행복의 배경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앞서 말한 A4 3페이지 남짓의 글 말입니다. 혹시 아세요? 작가들은 종종 오늘 기뻐했던 글로, 내일은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설사 그렇더라도 그건 내일의 일이지요. 성경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나는 내일의 염려와는 별개인 오늘을 살렵니다.

 

3.

지금 내가 머문 카페에서는 믹서가 시끄럽게 가동되는 중이고, 서태지의 소격동 전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유 버전이네요. 서태지가 아니라 아이유가 불러도 좋네요. 어쩌면 내 마음이 좋아서 너그러워졌던 탓일 테고요. 소격동에서 멀지 않은 서울역사 내의 한적한 카페에 머문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로 남겨두는 거고요. 아줌마가 혹시나 하는 어투로 묻습니다. “안 덥죠?”

 

나는 미처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명랑하게 대답합니다. “.” 쳐다보지 않은 무례함이라 느낄 겨를도 없었을 겁니다. 그녀 역시 바쁘게 지나갔으니까요. 그녀는 나를 열심히 일할 청년이라 여겼을지, 카페에서 죽치고 있는 불청객이라 여겼을까요? 저는 후자의 부류가 되지 않기 위해 넓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사람이 많을 때면 2~3시간을 넘기지 않고, 혹 넘길 때면 추가 주문을 하고, 이왕이면 차려 입고 카페에 가는 편입니다. (차려 입어도 근사할지는 모르겠군요.) 최소한의 폐만 끼치며 살고 싶거든요. 이제 일어나야겠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

 

4.

홍대의 어느 카페로 이동하여 자리 잡았습니다. 오전에는 카페 '블랑', 오후에는 이곳에 옵니다. 카페 이름을 적고 싶지는 않네요. 나만의 비밀 아지트로 남겨두고 싶어서요. 오늘 이곳에 들어서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스무 살 때의 일입니다.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개인 명상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아 동기들을 초대했었습니다. 좋은 의도였지만 스스로 명상시간을 앗아간 셈이 되었더군요. 그래서 다른 요일날로 다시 개인 명상시간을 정해 매주 나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수행 같은 걸 한 건 아니었고요, 그저 생각하고 기도하고 책을 읽던 시간이었죠.)

 

최근 '블랑'을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하고서 새롭게 나의 아지트를 삼은 모습과 그때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혼자 웃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도 향유하는 것이 있네요. 맨날 소비하고 마는 줄로만 알았는데, 카페에서의 시간만큼은 향유라고 할 만 합니다. 나는 카페에 있을 때마다 시간을 누리고 카페에서의 경험을 소유한 느낌이 들거든요. (향유는 누리어 갖는 것이고, 소비는 시간과 돈을 들여 없애는 겁니다.) 많은 책과 영화를 지금껏 향유하지 못하고 소비만 해 온 듯 하여 섭섭했는데, 카페 경험만큼은 향유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기쁩니다. 영속적 나눔은 향유로부터 옵니다. 나눔은 내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내 것이 되지 못한 것을 나누는 것은 나눔이 아닌 증여일 뿐인지도 모르죠.

 

5. 

현재에 몰입하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직 시간이 오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일 뿐 아직 현재가 아니죠. 현재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시간입니다. 바로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음미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시간이 현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향유하는 시간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르고요. 시간의 향유! 그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온갖 일상, 순간, 만남, 행위, 사색을 내 머리, 가슴, 사지로 겪으며 사는 것 말입니다. 차창 밖으로 많은 차들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운전은 두 다리를 나약하게 합니다. 무심히 보내는 시간이 오감을 둔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감 없이는 향유도 힘들 텐데 말이죠.

 

이곳에서 나는 마지막 장의 퇴고까지 마쳤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읽어야하지만, 지금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듭니다. 요즘 내가 시간을 보내는 모습 정도면 몰입이고 향유라고 하고 싶습니다. 2015년 8월이 저물어가는데, 내게는 한 권의 책을 집필했던 달로 기억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