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머리 띵한 월요일의 풍경

카잔 2015. 9. 22. 19:25

월요일은 직장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부담이 높아지는 날이다. 변화경영연구소 마음편지를 보내야 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수업이 세 개나 있다. 오전에 마음편지를 쓰고 점심을 먹자마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 마음편지 작성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탓에 종종 점심을 간단식으로 해결하는 날도 있다. 오후부터 시작된 수업은 밤까지 이어진다. 13:30 발터 벤야민 세미나, 16:00 『계몽의 변증법』 강독회, 그리고 19:30분 초급 라틴어 수업.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세상에는 즐기기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즐기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능숙해지거나 깊어지고 나면, 즐기게 되는 경우도 많으리라. 월요일 수업들은 아직은 즐기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수업을 모두 듣고 난 후면, 나는 반쯤은 멍해지고 나머지 반은 해방감에 뿌듯해진다. 멍함은 머릿속이 배움으로 꽉 차서일까, 하루치 용량을 초과해서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세 수업에 다루는 텍스트가 하나같이 초고난도라는 사실이다.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발터 벤야민의 텍스트와 2시간 20~30분 동안 씨름하고 나면, 막걸리 한 잔을 하거나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10분 휴식 후 아도르노 수업이다. '내가 어쩌다가 아도르노의 텍스트를 읽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텍스트가 어려워서이기도 하고,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얻는 결실이 미미한 것 같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부를 이어가는 이유는 가끔씩 마음 속으로 탄성짓게 만드는 구절을 만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문제점이 존재한다. 수업 때에는 알쏭달쏭하게나마 탄성을 지었던 문장을 홀로 읽으면 한숨 짓게 된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들. "계몽에게 의미로 놓여 있는 체계는 인식의 형체다. 인식의 형체는 사실들과 결합된 채 최상으로 완성되어 있으며, 자연지배에서 주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체계의 원리들은 자기보존의 원리들이다. 미성숙은 자기보존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써 증명된다."(『계몽의 변증법』3장, 문병호 역) '계몽'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난해하다. 내게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만 두거나, 무릅을 쳤던 구절만이라도 곱씹으며 계속해 가거나.

 

 

고난도 머리 싸움의 절정은 라틴어 수업이다. 라틴어 수업은 독해 숙제가 있어 더욱 괴로운데 3주 전부터 나는 수업의 부담감을 한 방에 해결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결론 하나를 내린 것이다. '숙제는 하지 말고 결석도 하지 말자!' 수강생들 중 숙제를 하지 않고 오는 이는 나 뿐이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수강생들은 모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신다.) 결론이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많이 가벼워지긴 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숙제에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시는 편이다. (과연, 이건 다행인 걸까?)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업 청강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라틴어 문법 자체가 복잡하다. 오히려 숙제를 안 하기에 이해하는 바와 암기한 문법들이 조금씩 뒤처지게 되어 수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의 목적을 상기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라틴어 수업을 듣고 있는가?' 키케로나 몽테뉴의 텍스트를 읽겠다는 등의 거창한 목표의식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인문서에 간간이 등장하는 라틴어 낱말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라틴어 사전을 찾아 간단한 문장을 해석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라틴어 수업은 내 기대성과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향해 진행되고 있었다. 어찌보면 다른 수강생들과 비교하면 나의 청강 목표는 애초부터 낮았던 것이다. 나는 그분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대로 가면서 라틴어 공부를 즐겨야 하는 과업 속에 내던져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편안한 안일주의나 어려우면 기피하는 반지성주의에 빠지지 말아야하는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나름의 결론이 앞서 생각한 과제도 결석도 No 라는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월요일 수업 부담은 여전하다. 벤야민 세미나는 텍스트를 읽어가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분들에게 미안해진다. 부담감으로 나를 괴롭힌 이는 다름 아닌 나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벤야민 세미나 참여 권유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또 자문한다. '이 놈의 라틴어 수업을 왜 신청했을까?' 과정이 힘겨우니 자꾸 내가 세운 비전과 목표의 타당성을 묻게 된다. 정말 원하는 것인지를 따지며, 나는 읊조린다. '고난은 길 위에 선 이를 생각하게 만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