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내가 만난 최고의 스승

카잔 2015. 10. 7. 20:01

1.

2005년도 연말의 추억이다. 나는 한국리더십센터 연말 행사를 준비하는 TFT팀의 일원으로 강사 섭외를 담당했다. 내게 주어진 예산은 2회 강연에 100만원이었다. TFT 회의에서는 김재동, 한비야 같은 유명 인사도 거론됐다. 젊음의 패기 덕분인지,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김재동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30분에 900만원이란다. 그 말에 기겁을 했는지, 협상을 시도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혀를 내두렀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다음 후보 분에게 연락을 했다. 유명한 작가였다. 그 분도 두 번의 강연에 '100만원'이라는 금액에 난색을 표하셨다. 나는 몇 차례 정성스러운 메일도 보내고, 행사의 취지도 말씀드렸다. 그 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그대의 열정에 손을 듭니다. 그렇게 합시다." 12월 17일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홀에서 나는 그 작가 분을 에스코트했다. 책으로 읽었던 분을 직접 만나뵈니 설렘과 감격이 가슴을 두들겼다. 구본형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2.

내가 처음 읽었던 구본형 선생님의 책은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였다. 자기경영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지 수년이 지난 후였고, 그의 대표작도 아닌 책이었지만 우연히 읽은 첫 책에서부터 매료되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구절이 여럿인데, 그 중 하나를 찾아 보았다.

 

"변화의 핵심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은 가장 알기 어려운 대상이다. 이것을 알아 가는 것이 인생의 과제다. 점점 자기다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변화다."(p.144) "독자는 저자의 생각을 얻을 때 진보한다"는 교훈도 이 책에서 얻었다. (이 말만큼은 선생님보다 더욱 치열하게 실천해왔다는 생각도 든다.)

 

3.

나는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지원했다. (지금 생각하니 어딘가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행운으로도 느껴지고, 스스로가 기특하게도 느껴진다. 10년 가까이 스스로를 만족시킬 만한 도전을 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도 문득 발견되었다.) 일년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나는 끈기 부족과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탓으로 대부분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연구원이 된 이후로 4년 동안 매해 선생님과 해외 여행을 떠났다(몽골, 뉴질랜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가슴 시릴 정도로 그리운 추억들이다.   

 

4.

선생님과 함께하는 수업은 양가감정을 느끼게 했다. 수업 전에 해야 하는 숙제는 부담스러웠고, 수업 시간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행복이었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 윤색된 감정이 아니다. 수업을 하는 당시에도 내가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장면은 바닷가 수업과 전략 수업이다. 수업 기록을 찾아보면, 한 두 줄의 기록으로도 그 날의 장면이 선연히 떠올려지는 수업들이 있을 것이다. (틈날 때마다 그 날들을 복원해 볼 생각이다.)

 

수업을 하시는 동안, 선생님은 제자들의 말을 경청했다. 제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그 분만큼 충분히 주는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선생님이 내놓으신 조언이 항상 유효했던 것은 아니지만(자주 이상적이었고 가끔씩은 관념적이었고 더러는 즉흥적이었다), 그 분의 시선과 목소리는 항상 여유롭고 부드러웠다. (번개처럼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이 빛났고 지긋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시선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목소리는 그윽했다. 자꾸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나는 선생님과 여유와 시선 그리고 통찰을 본받고 싶었다.  

 

5.

나는 구본형 선생님을 더 알고 싶었다. 1인 기업가로서, 자기경영 전문가로서의 모습 뿐만 아니라, 인간 구본형의 모습까지 알고 싶었다. 그의 멋진 모습을 엿보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닮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선생님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실하게 준비하여 정성스레 진행하는 인터뷰어가 되어 스승과 제자 모두에게 인터뷰를 해 볼 요량이었다.

 

어느 사석에서 용기를 내었다. "선생님, 저랑 인터뷰 한 번 해 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은 그러자고 하셨다. "정말요? 선생님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제가 좀 준비되면 선생님께 일정 여쭐게요." 선생님은 미소를 보이셨고,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얄팍한 수를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생각한 바를 재빠르게 실행으로 옮기는 인물은 못 되었다. 인터뷰 준비는 더디게 진행되었고, 나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살았다. 결국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진행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