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비 오는 날의 벤쿠버

카잔 2015. 11. 13. 09:35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즐겨 찾는 카페에 왔다.

추적추적,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자동차들,

우산 쓴 보행자, 차분한 쓸쓸함,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지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루마의 <Kiss the Rain>이 어울리는 장면.

 

그날 아침, 나는 벤쿠버에 있었다.

가는 비가 약하게 내리는 날씨였다.

자동차가 오가는 길 건너편에 스타벅스가 보였

내 등 뒤에 선 건물은 시립도서관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행자였다.

 

비 올 때마다 종종 떠오르는 장면이다.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카페에 앉아 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장면을, 나는 듣는다.

그리고 노란색 단풍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본다.

6년이 지나, 태평양 건너의 도시 서울에서 사는 내게

저 벤쿠버의 장면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스타벅스에 들어섰다.

북미 사람들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기억이 맞다면, 아침 8시가 안 된 시각이었다.

출근 중에 잠시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신문을 펼쳐 든 사람들 그리고 여행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침 시간을 즐겼다.

나는 홀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적당량의 고독과

잔잔한 행복감이 나를 감쌌던 것 같다.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지났다.

오늘은 서울에서 이루마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아! 그날 들었던 음악이나 

그 날의 일정표라도 남아 있다면 

더 많은 기억을 끌어올 수 있을 텐데...

...

 

어쿠스틱 음악도 어울리고

허스키한 보이스도 그럴 듯하게 들려올 가을 날,

창 밖 거리가 은행잎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가을비가 내 마음까지 적신다. 머릿속에 어제 햇살이 떠오른다. 

늦가을을 향하는 시절인데도 유난히 따뜻했던 햇살,

맑은 하늘. 은행나무가 유난히도 노랗게 빛났던 날.

어제 노오랗던 나무에 오늘은 비가 촉촉히 내린다.

 

짧은 가을,

그래서 더욱 애틋한 가을.

 

벤쿠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꼭 읽지 않아도 될 책을 읽었다.

그것은 여유의 산물이었다. 벤쿠버 여행은

3주 동안의 상파울루 여행 뒤에 붙여진 보너스였다.  

벤쿠버에서의 시간이 혼자였지만 따뜻했던 것은 

함께있음의 진한 행복이 내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리라.

 

 

당시의 나는 오롯히 상파울루에 집중하느라

벤쿠버 여행을 살뜰히 준비하지는 못했다.

빈틈이 많은 여행이었고 그래서 여느 다른 여행과는 달랐다.

그 다름이 벤쿠버 여행을 향한 그리움의 원천인 걸까.

빈틈 사이 사이에 깃들었던 여유와

함께 있음 후에 누렸던 차분한 고독감.

나는 그것이 좋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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