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나도 한때 농구를 좀 했다

카잔 2016. 2. 23. 12:19

나도 한때 농구를 좀 했다

- 무엇이 실력을 만드는가

 

농구는 90년대 중고등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체육 시간, 축구공을 차는 학생보다 농구공을 던지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배리 본즈나 마크 맥과이어보다 마이클 조단, 허재, 이상민, 전희철이 학생들의 영웅이었다. 길거리 농구대회도 자주 개최되었다. 스물 세살 장동건이 주연한 16부작 미니시리즈 <마지막 승부>(1994)는 당시의 농구 인기를 실감케 했다. (동민(손지창)의 180도 터닝슛은 어설펐지만, 다슬이(심은하)는 남심을 저격했다.)

 

90년 초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도 농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매일같이 즐겼던 축구는 중학생이 되면서 농구로 바뀌었다. 나는 농구를 곧잘 했다. 친구들과 점심 시간, 체육 시간마다 농구를 했다. 오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입성하곤 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농구했다. 시합을 하루에 일곱 게임, 여덟 게임씩 하던 시절이었다. 10개 반이었던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농구를 최고로 잘 하는 이로 나를 꼽는 친구들이 많았다.

 

휴일에도 집앞 농구 골대에서 공을 던지곤 했다. 신천 고수부지에 설치된 농구장은 고무 코트는 아니었지만 농구를 즐기기에 괜찮았다. 워낙 농구가 인기 있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어 심심찮게 시합을 즐길 수도 있다. 농구장에 농구 좀 한다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으면 말은 건넨다. "한 게임 하실래요?" 그러다가 종종 고수를 만난다. 김준엽이라는 형이 기억난다. 삼성전자의 김현준이 떠오를 정도로 슛이 정확했다. 안수영(가명)은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드리블 실력이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잘 했고, 그는 뛰어났다.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욕망이 솟구쳤다. '나도 수영이처럼 드리블 하고, 준엽 형처럼 슛을 던지고 싶다.' 나는 더 잘 하고 싶었다. 나는 홀로 농구장에 나가 연습했다. 시합은 재밌지만 연습은 지루했다. 연습 때에는 공을 던지다고 해서 스코어가 올라가지도 않고, 공을 튀기며 제쳐나갈 상대 선수도 없다. 시합 때의 스릴이나 이겼다는 짜릿함도 없었다. 연습은 무엇에 쓰는 단어일까. 답은 분명했다. 시합에서 드리블 실력을 키우거나 연습할 수는 없었다. 잘 하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것은 연습이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동호인들은 드리블 할 때, 주로 한 손을 쓴다. 수영이는 두 손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공은 자신의 무릎 사이를 지나다녔고, 허리 뒤로 갔다가 앞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심지어 상대 선수의 다리 사이로 공을 튀겨 드리블 하기도 했다. 정말 경이로웠다. 나는 홀로 드리블 연습을 했다. 지루할 때까지 했다. '기술'이란 녀석은 앎으로 내 것이 되진 않았다. 거듭된 연습으로 몸으로 익힌 후에야 비로소 시합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드리블 연습이 끝나면 슛팅을 연습했다. 어느 날엔 하루 종일 터닝슛 하나를 연습했다.

 

실력을 키워주는 것은 언제나 연습이었다. 연습의 관점에서 보면 시합은 연습의 결실을 맛보거나 연습해야 할 나의 약점들을 발견하기 위한 장이었다. 연습은 다른 운동을 할 때도 중요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여전히 농구를 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농구만 하지는 않았다. 당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구를 칠 때도 연습의 중요성은 여전했다. 실전 시합도 중요했지만, 어떠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는 연습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끌어치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 차례에 걸쳐 몇 시간 동안 연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나의 농구나 당구 실력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나는 치열함과 끈기가 부족했다. 목표도 낮았다. 연습으로 이룬 약간의 성장에도 얼른 자족하고 말았다. 섣부른 자족, 이것이 내 행복의 근원이고, 시시한 실력의 원인이었다. 농구도, 당구도 그랬다. 나의 시야는 너무 좁았다. 나의 세계는 고작 학교 울타리였다. 10개 반 중학교에서는 농구를 제일 잘 했고, 15개 반 고등학교 때에는 당구를 1~2등 쳤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넓었고, 고수들은 이곳저곳에 존재했다. 

 

나는 치열하게 연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안함과 재미를 쫓지, 연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프 콜빈은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연습이 힘들고 지루하다는 사실이 확실히 당신에게 희소식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연습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당신은 그만큼 차별적인 존재가 된다." 이것이 내가 학교에서나마 실력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그림을 많이 그려보는 일과 동시에 선을 긋고 채색을 하는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한 편의 글을 써 보는 것도 중요하나 소재 발굴의 눈을 키우고 연습을 통해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기본적 기술을 파악하여 익혀야 한다. 농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드리블, 슛팅, 패스 능력을 키워야 한다. 글쓰기의 기본적 기술은 무엇일까. 그림 그리기의 기본기는 무엇일까. 질문의 답변을 찾고, 찾은 후에는 기술을 하나씩 묵묵히 연습해야 한다. 이것이 실력을 낳는다.

 

실력 쌓기에는 전문가의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은 있지만, 공짜나 지름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