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언젠가 부르고픈 노래들

카잔 2016. 5. 29. 05:17

1.

<신의 목소리>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일반인과 가수가 노래 경연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전문가에게 도전한다는 포맷 자체가 흥미를 끌었다. 케이윌에 도전한 지우진 씨는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라는 노래를 깊은 감성으로 불러냈다. 근소한 차이로 케이윌이 승리했지만, 나는 지우진 씨가 더 우세했다고 느꼈다. 윤도현에 도전한 과학 선생은 반듯한 태도와는 달리, 실력이나 연출력은 시시했다. 윤도현의 압도적인 승리가 당연했다. 밋밋하게 부른 JK김동욱에게 방효준(?) 씨가 승리한 것도 마땅했다. 지우진 씨가 아쉬웠다.


2.

과학 선생은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1994년에 발표된 이 곡은 먹먹한 추억을 불러냈다. 우리는 고등학생이었다. 나와 나의 친구들 말이다.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이었을 때나, 우리의 유흥은 비슷했다. 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이른 새벽까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남자 여섯은 남자 가수들의 곡을 선택해 멋을 부렸다. 김민종, 윤도현, 김광석이 단골이었다. 간간이 이문세, 이승철이 소환되기도 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는 조용필의 노래를 즐겼고, 종종 Girl의 <아스피린>도 불렀다. 18번 곡 중 하나는 <모나리자>다. 녀석이 허리를 돌리는 춤을 추면서 이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다. 지난 해, 넷이서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모나리자>가 흘러나왔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슬그머니 채널을 돌렸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지 일년 남짓 지난 시기였다. 채널 변경이 고맙기도,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했다.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녀석과 둘이서 노래방에 갔던 적도 많다. 많은 곡을 함께 불렀다. <너를 보내고>, <친구를 위해>, <사랑 Two>, <하늘 아래서>,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서른 즈음에>, <휴식 같은 친구>, <모나리자>, <내가 아는 한 가지>, <Come Back Home>! 녀석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유난히 함께 부르고 싶었던 곡은 김민우의 <휴식 같은 친구>였다. 함께 부를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3.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친구였고

또 괴로웠을 때면 나에게 해답을 보여줬어.

나 한번도 말은 안했지만 너 혹시 알고 있니?

너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걸." - 김민우 <휴식같은 친구>


4.

지금 녀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살아 있다. 함께 했던 추억으로, 함께 불렀던 노래로, 함께 다녔던 공간으로, 함께 나눴던 대화들로, 버젓이 존재한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존재지만 녀석의 말이 들리고, 추억을 느낀다. 언젠가 노래방에 가게 되면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불러 보고 싶다. 지금은 용기가 없지만, 언젠가는 말이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 만남과 이별은 계속 이어진다. 기쁨이자, 슬픔이다.


만남이 진하고 깊고 기쁠수록, 이별은 지독히 슬퍼진다. 삶의 역설이다. 얄궂다. 나는 만남을 사랑한다. 그럴수록 이별은 삶의 아픔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이 두려워 만남을 저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보다 많은 결혼식에 참석할수록 보다 많은 장례식에 가게 된다"는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도 않으리라. 이렇게 다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이 아프고 슬프다. 멀리 떠나고 싶다. 아주 멀리, 이별이 없는 곳으로...


5.

멀리 떠나고픈 마음은 나약할 때의 정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의 진실한 마음이다. 하지만 내 감정의 일부이지 내 감정의 전부는 아니다. 일부에 함몰되지 않고, 일부를 무시하지도 않고 나를 들여다본다. 참치캔을 따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며칠 전, 혼자 집에서 마시려고 사 온 술이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온 몸에 알싸한 기운이 감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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