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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밟은 그리스 기행

카잔 2016. 8. 7. 08:50


1.

삶을 돕는 사유와 영성이 깃든 그리스 기행 에세이! 내가 이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그렇다. 그리스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대중적인 교양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림 한 장으로도, 탐스러운 먹거리로도, 묵고 싶은 호텔만으로도 여행은 시작될 수 있다. 저자의 경우는 어떨까? 왜 그리스일까?


"나는 세상이 나를 휘젓지 못하도록 현실적 욕구를 실현하고 싶었다. 경쟁 속에서 구질구질해지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욕구 또한 그 못지않았다. 사람 속에서 섞여 떠들기를 좋아하면서도, 어느 날은 배낭을 메고 깊은 산속 동굴로 들어가 홀로 머물었다. 양극단을 오가느라 분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교적 진리를 철학적 의문에 답해야 하고, 말뿐인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며, 영성을 합리적 지성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리스로 발길이 향한 것은 그래서였다. 피안을 향한 구도의 여정에선 묻지 못한 좀 더 구체적인 물음을 통해 우리가 겪는 현실적 모순을 풀어내고 조화를 이루고 싶었다."(p.9)


2.

저자 조현은 '영성'을 취재하는 기사다. 영성 자체를 취재할 수는 없다. 영성가, 종교인과 인터뷰를 하거나, 영성이 깃든 성지를 다녀와 글을 쓴다는 말이다. 책날개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세계일보사를 거쳐 1996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했다. 사회부, 정치부 근무를 하다가 종교분야를 자원했단다. 마음, 영성, 치유, 봉사, 공동체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나는 그의 여러 전작 중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었었다. 스테디셀러라 기대하며 손에 잡았지만, 내게는 내용이 두루뭉술하고, 관념적이었다. 본론이 시작되려는 찰나 글이 끝나버리는 느낌이었다. 나의 영성이 둔감해서인지, 실제로 책이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호기심을 해갈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 인생 학교』와 나와의 만남이 어떠했는지 살피는 일이다.


3.

책은 16개의 장에서 14개의 지역을 다뤘다. (아토스 산과 아테네가 2장씩 할애됐다.) 아테네, 델포이, 메테오라, 크레타, 산토리니, 트로이(는 그리스는 아니지만), 스파르타 등을 다뤘다. 눈부신 여행지보다는 영성과 삶을 사유하기에 좋은 지역 위주다. 미코노스와 나프폴리오가 빠졌고, 여행지로서는 매력이 덜한 스파르타와 아토스 산이 포함됐다. 특히 아토스 산은 여행지가 아니라 성지다. "아토스 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수도원 공화국이다. 짐슴도 암컷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금녀 국이다."(p.19)


책의 첫 장을 여는 지역이 바로 아토스 산이다. 1장은 가장 영성적인 장이다. 초반부터 "내 책은 이런 성격이오"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느낌이다. 예약을 하지 않아 수도원에 가까스로 들어가는 모험담(?)도 재밌지만, 여러 영성가의 일화를 들먹이며 애욕에 관해 서술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가벼운 에세이라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사색거리를 던지는 식이다.


"돈과 여자가 없으면 오직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란다. 저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이란 돈이 없으면 돈이, 짝이 없으면 짝이, 집이 없으면 집이, 직업이 없으면 직업이 곧 모든 고민을 일소시켜 주고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맹신하며 집착하는 청맹과"(p.37)라며, 1장의 말미에서 플라톤의 말을 소개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정복한 자가 고결한 최상의 승리자다."


4.

이처럼 『그리스 인생 학교』는 삶에 관한 '영성적 사유', 고대 그리스라는 '지적인 문화'로 이끄는 책이다. 그리스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 낭만과 지성을 버무려낸 나라다.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상큼발랄한 여대생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나올 법한 옷차림으로 델피의 신전에 머무는 학자들은 사뭇 다르다. 모두가 그리스다. 이 책은 후자의 느낌이다. 고고학이나 역사학보다는 종교학에 가깝지만.


5.

그리스 여행을 위한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무엇일까? 여행을 떠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끌림과 정보! 끌림이 있어야 여기를 과감히 떠난다. 정보가 있어야 거기에 제대로 도착한다. 끌림이 감성적이고 정신적인 준비물이라면, 정보는 이지적이고 실제적인 준비물이다. 여행자에게 『그리스 인생 학교』는 그리스에 관한 끌림을 안기는 책이다. 그리스의 맛집이나 동선, 지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여행 가이드에서 찾고 이 책에서는 그저 끌림을 만나면 되리라.


그리스를 통해 인간은 정신 세계를 거닐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영성이나 성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은 재밌게 읽힐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사는 중이고, 이 책은 삶에 대한 사유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저자가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관련서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쉬이 읽힐 거라 예상한다.


현대 그리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책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에 초점을 맞췄다), 자주 인용된 그리스 고전 문헌들의 출전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점(그래서 관심 있는 구절의 원전을 찾아 읽기가 힘들었다)은 아쉬웠다. 이 책의 결함이 아니라 나의 욕심에서 기인한 아쉬움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리스어에 대한 이해나 그리스 여행에 관한 실제적인 정보가 아니다. 함께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여행기를 쓴다면 이 책처럼 성찰이 깃든 책을 쓰고 싶어요. 저는 빌 브라이슨보다 이 책이 재밌었어요." "와우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를 끄집어내는 책이었어요." ('와우'는 자기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자기 성찰로의 초대! 이것이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임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