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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독파에 박차를 가하다

카잔 2016. 8. 31. 15:51

2016Aug 1. 고전 독파에 박차를 가하다
- 서양문학사 강연에 대한 몇 분의 극찬


[요약] 한 회사에서 서양문학사 강연을 진행했다. 특강이 아닌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된 대장정(?)이었다. 강사로서 아쉬움이 남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좋았다. 몇 분들의 극찬으로 안도감도 느꼈다. 지성을 향한 열의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전 독파에 더욱 매진하리라!


2주차 강연 후, 여러 교수님들이 흡족한 반응을 보이셨고, 질문도 이어졌다. “니체가 근대철학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구체적으로 더 듣고 싶습니다.” 나는 아는 만큼 대답을 드렸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3시, 졸릴 수도 있는 시간대였지만 지루해하거나 졸음에 빠진 청중은 한 분도 없었다. (5주차 1교시엔 몇 분이 조셨는데, 나의 강연이 다소 지루했다.)


대표님도 만족하셨나 보다. 나를 불러, 본인께서 기획하는 강연 기획과 전체 커리큘럼이 그려진 표를 보여주셨다. 전지 두 장을 겹쳐야 하는 엄청난 크기의 종이에 자잘한 글씨로 학문 전 분야를 조망하는 내용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한 칸 만이 비었다. “문학사만 없어서 초청한 거예요.” 청소년들에게 좋은 교육을 전하고픈 대표님의 비전을 들었다.


나는 적잖이 감동했다. 대표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두 분의 비서가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며 말했다. “대표님, 이러신 적이 처음이네요. 강연이 마음에 안 드시면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바로 방으로 들어가시거든요.” 역삼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안도감이 찾아왔고, 몇 권의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는 열망과 함께.


4주차 강연 쉬는 시간, 김OO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강사는 정말 많이 읽었고만.” 옆에 계신 분께서 거드셨다. “저도 공감합니다.” 두 교수님은 훌륭한 강연이라고, 여러 분야에 대해 지식이 해박하다고 칭찬하셨다. 주례사처럼 부사나 과도한 표현은 없었다. 2교시를 신바람을 타고 강연했다.


5주차가 끝난 뒤에도 두 분의 교수님이 간결한 피드백을 주시고 가셨다. “훌륭한 강연이었습니다.” 김OO 교수님은 해외 연수차 참석하지 못하셔서 비서를 통해 명함을 전해 주셨다. <Shortest History of Eupope>이라는 좋은 책을 선물해 주셔서, 내가 읽고 나면 리뷰를 써 보겠다고 약속드렸더니, 이메일 주소를 전해 주신 게다. 5주차 후에는 대표님과 1시간 20분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귀가했다.


교훈과 단상들을 정리해 둔다.


1) 강연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상반기에 진행한 최고의 성취는 <학습조직화> 워크숍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때도 행복했지만, 이번의 피드백이 더욱 영광스럽고 기쁘다. 평생을 학업에 매진하신 분께서 여러 차례 나의 지적 생산물에 동의하고 격려하고 인정해 주셨다. 대학에서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에, 스승의 위치에 계신 분께서 나의 공부를 인정해 주신 적은 처음이다. 감격적이었다.


2) 이 기쁨을 지인에게 아는 형에게 얘기했더니, “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줄 몰랐네” 라는 화답이 돌아왔다. 나를 생각하게 만든 고마운 답변이었다. ‘인정받음’은 나의 기쁨을 세밀하게 설명해 주는 표현은 아님을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물론 내게도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이 크게 존재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죄다 표현하기엔 미진한 단어다.


나는 무엇이 기뻤던가? 2주차 강연 후 회사를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안도감’이었다. “휴! 다행이다. 지금까지 공부한 게 틀리지 않았구나.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 공부를 이어가면 되겠다.” 나는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는 나와 같은 유형을 ‘안정지향’형이라 불렀다.) 교수님들의 칭찬은 인정받는 기쁨보다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기쁨이었다.


3) 이번 서양문학사 강연은 내게 이렇게 말해 준 것 같다. ‘지금까지 잘 걸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시게.’ 특히 고전 독파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성’을 관념적으로 정의하긴 쉬우나, 어떠한 실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과감히 시도해 보자면, 지성의 한 면모는 분명 ‘고전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관점’이다. 이번 강연에서 자주 고전을 다뤘는데, 지성의 한 영역이 ‘고전 이해와 비평’임을 절감했다. 고전을 독해하고 서평을 쓰고 자신의 관점대로 논할 수 있음이 곧 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