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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카잔 2016. 8. 31. 18:03

2016Aug 2. 원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 OO 출판사 편집2팀과의 미팅이 안긴 결실


[요약]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은 나를 기쁘게 했다. 미팅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안겼다. 조바심을 내려놓으니 길이 보인다. 글 쓰는 과정의 행복과는 별개로 작가로서의 결실도 놓치지 말자!


2016년 4월, <범람하는 인문학> 원고를 갈라파고스와 사계절 출판사에 보냈다. 반가운 소식은 돌아오진 않았다. 8월 초에 다시 세 출판사에 투고했다. 며칠 뒤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희 기획2팀의 내부 논의 결과, 인문학을 오래 연구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깊은 통찰이 담긴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2주 후, 동교동의 어느 카페에서 편집장님과 편집자분을 만났다. 넓은 테이블도 많은 카페인데, 두 분은 자그마한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 앉아 계셨다. ‘초면에 너무 가까운 거리가 아닌가’ 하는 대수롭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며 동석했다. 오랜만의 출판사 식구들과의 만남이다. 나의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호의를 가진 분과 나누는 자리는 사실 부담이 없는 만남이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떤 모양으로 책을 내고 싶으신지, 이번 원고에 덧붙여 쓰실 내용이 있는지, 어떤 곳에서 무슨 강연을 하시는지, 이번 원고 다음으로 쓰실 주제는 무엇인지, 개인 블로그가 있는지 등을, 내게 물었다. 물음들은 정중했고 따뜻했다. 황송한 마음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좋게 보았다는 마음과 더 좋은 책을 위한 예리한 마음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카드(집필한 원고와 집필 계획 중인 원고)를 모두 펼쳐 보였고, 원고에 적힌 이름은 본명이 아닌 필명임도 알렸다. 전작이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편집자는 편집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랬죠? 원고가 첫 솜씨는 아니었어요.” 나는 출판사와 투명하고, 즐겁고, 유대감을 나누며 작업하고 싶었다. 필명으로 투고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함은 좀 아쉽다.


물 흐르듯 진행되는 출간 과정을 꿈꾸었지만, 물 건너 간 느낌이다. 출판사와 나는 원고 선정부터 다시 조율하게 됐다. 집필된 원고 목록을 들으신 두 분은 투고한 원고가 아닌 ‘리버럴 아츠’에 더 욕심을 내셨다. 난감했다. 나의 계획으로는 세 번째 책이고, 시기도 내년을 염두에 둔 원고다. 원고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우선은 퇴고가 완료된 부분을 보내 드리기로 했다. <범람하는 인문학>은 분량을 좀 더 늘리자는 의견을 주셨다. 덜어낸 분량이 많아 어려울 건 없지만, 다시 재구성과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니 번거로운 일이다. 어쩌면 ‘리버럴 아츠’부터 출간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필명에 대한 의견도 편집자는 나와 달랐다. 생산적인 대화였지만, 첩첩산중이다.


사실 첩첩산중까지는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들긴 했지만, 상황은 희망적이다. 나는 이번 출판사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두 분 역시 추가 미팅을 통해 책의 출간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편집장님은 한 권의 원고가 아니라, 세 권 정도 계속 출간할 수 있는 필자를 만나고 싶다고도 하셨다. 나 역시 한 출판사와 세 권 정도를 이어서 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반가운 말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미팅 후 느낀 감정들, 미팅에서 깨달은 교훈, 며칠 동안 생각한 결론들을 정리해 둔다.


1)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쉬움과 후회가 찾아들었다. ‘인문학’의 인기는 한 풀 꺾였다. 2014년과는 다른 분위기임을 모르지 않기에 “요즘 인문학 열풍이 많이 지났잖아요”라는 편집자의 말에 “맞아요”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4년 9월에 완성한 원고를 이제야 보낸 고질적인 완벽주의! 자족하고 나면 세상의 인정에 대해서는 무신경해지는 기질! 확실한 끝맺음(출간)을 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원고 집필에 들어가는 바보 같은 뚝심! 나를 살리기도 하고, 후회도 안기는 내 모습들이다.


2) 글쟁이의 집필 스타일 선택은 두 가지다. 쓰고 싶은 책을 쓰거나 팔릴 만한 책을 쓰거나. 나는 둘 중 언제나 전자의 글들을 썼다. 시장 조사를 하거나 마케팅 감각을 발휘하려는 노력보다는 나의 호기심과 열정을 쫓아가는 식이었다. 나의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종종 책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판사와 함께 작업하며 의견을 구하는 식으로 집필하는 일도 나의 식견을 넓히는 길이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삶에서 내 두 발로 걸어가지는 못한 길이다.


3) 두 편집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들의 실력 덕분인지, 나의 새로운 선택 덕분인지는 모르겠다(둘의 합작품이리라). 내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변화다. 이번 출판사와 가장 어울리는 동시에 두 사람이 가장 즐거워하는 기획안으로 느긋하게 원고를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주제야 무엇이든 글 쓰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가 아닌가’ 하는 자각도 나를 도왔다.


4) 원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니 당장 집필할 수 있는 원고가 제법 많다.
인문주의를 권함 (인문학의 본질과 인문학 공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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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에 접속하기)
책읽기는 달팽이처럼 (슬로리딩을 추구하는 독서 에세이)
한 권으로 읽는 수잔 손택 (입문자를 위한 손택 가이드북)
이것이 서양문학이다 (문예사조로 읽는 우선순위 서양문학)
플로라이팅 (작가적 역량을 키우는 글쓰기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