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행 0일차, 10월 15일(토).


1.

열흘 동안 함께 그리스를 여행했던 일행과 헤어졌다. 그들은 서울로 갔다. 나는 아테나 공항에 남았다. 지금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일행과 헤어진 시간이 정오니까 일곱 시간 반이 지났다. 렌트카를 예약하고 다시 취소하고, 여행지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크레타 섬으로 바꾸는 등 네댓 시간 동안 혼자서 소동을 치렀다. 신용카드를 챙겨 오지 못한 결과들이다.

 

신용카드를 지참하지 못한 사연은 길다(기회가 온다면 그 사연을 풀어내고 싶지만, 지금은 ‘허락된 지면이 짧다’라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련다). 신용카드만 있었더라면 차 렌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테고, 나는 폭스바겐 골프를 몰고서 코린토스의 어느 호텔에서 쉬고 있으리라. 지금쯤이면 에게해의 밤하늘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용카드 사태는 실수가 아니다. (미루기를 즐기는 나의 타성이 한 몫 거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 사정을 감안한 나의 선택이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로 불편했고, 허비하지 않아도 될 시간을 낭비했다. 이 모든 상황은 ‘신뢰 없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표지인지도 모르겠다. 신뢰는 일을 수월하게 만든다. 지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과 행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의 차이가 신뢰가 주는 실용적인 힘이다.

 

휴대폰 앱으로 크레타행 항공권을 발권하고 탑승 게이트 앞에 앉고 나니, 비로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19:30)

 

2.

크레타는 그리스의 6천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의 4배란다. 크레타에는 그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이라클리온이 있고, 고대의 중요한 유적지 크노소스 궁전이 있다. 크레타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나를 크레타로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나를 이끌었다. 내게는 더없이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6년 전, 나는 그의 무덤 앞에 섰다. 읽지도 못하는 그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묘지 한쪽에 앉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아랍계 유럽인으로 보이는 참배객이 왔다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다. 6년 사이, 이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커다란 감동을 얻었기에 앞으로도 여러 차례 더 읽을 생각이다.

 

크레타에 머무는 동안 할 일도 하나다. 자주 이 책을 읽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 두 주인공과 함께 의논할 생각이다. 가 볼만한 곳도, 가야 할 명소도 내게는 중요치 않다. 오직 마음이 끌리는 대로 시간을 보낼 텐데, 바로 그 일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다. 그리스에 조금 더 머물게 된다면 조르바에 관한 26개의 글을 쓰고 싶지만(이 책의 챕터가 26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6일 뿐이다.

 

6일 동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것! 나는 니코스와 조르바를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 크레타로 간다.

 

3.

크레타의 숙소에 도착하니 적막감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어제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함께 묵었던 근사한 객실과 호텔 라운지가 생각났다. 지금은 3성급 (어제와 비교하면) 허름한 호텔에 묵고 있다. 지내기엔 괜찮지만, 지금까지의 여행과 대비되어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이 어설퍼 서글픔을 더했고, 촌스러운 붉은색 침대시트가 울적함을 추가했다.

 

방안 가득히 음악을 채우고 싶었지만 쓸쓸함을 쓸어내 버릴 것 같아 참았다. 나는 지금의 기분에 집중하고 싶었다. 쓸쓸함과 적막감을 음미하면서, 이러한 감정에도 유익을 있음을 경험하고 싶었다. (모든 세상사는 양면적이니까.) 유익을 발견하려면 실체부터 알아야 했다. 작은 숙소 안에는 나 혼자다. 지금의 기분을 나눌 사람이 없다. 창밖은 낯설다. 의지할 데가 없다.

 

외로움, 쓸쓸함, 의지할 데 없음이 적막감이다. 기분이 적적하거나 으스스해진다. 무서움이 아니다. 낯설음이나 음산함이다. 화장실 싸구려 타일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떨어지진 않을까 싶은 의심이랄까. 이런 감정이 적막감이다. 적막감에도 유익이 있다. 창밖에서 은은히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보게 만든다(달빛이 나를 비춰주고 있구나). 차분하게 책에 몰입하도록 돕는다(이 날밤『그리스인 조르바』 3장을 읽었다).

 

다시 양면성이다. 일행들과 함께 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그들과 함께라면 갖지 못했을 체험(차분한 단상과 조용한 독서의 시간)을 누렸다. 정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22:00)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