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비즈니스 석을 예매했다

카잔 2016. 10. 17. 21:37

 

크레타행 에게항공(Aegean Airlines)은 본의 아니게 비즈니스 좌석으로 예매했다. 이코노미 석이 없었고,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가격이 비슷했다(3만 5천원 차이). 비즈니스 탑승권을 살펴보았다. 이름부터 달랐다. ‘탑승권(Boarding Pass)’이 아니라 ‘탑승/ 라운지 이용권(Boarding / Lounge Pass)’이었다. 이런 문구도 보였다. “We are pleased to invite you to our lounge prior to the departure of flight." 나를 라운지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라운지가 어디에 있지? 단 한 번도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적은 없다. 누군가가 나를 비즈니스 석이나 일등석의 세계로 초대한 적도 없다. 이왕이면 라운지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는 라운지를 찾아 나섰다. 탑승권을 보여주고 면세점 거리로 들어섰다(우리나라는 수하물 검사를 하고 나야 면세점인데, 아테네 공항은 면세점을 지나고 나서 수하물 검사대가 있었다). 카페가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각을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4유로를 지불하고 Greek Coffee와 머핀을 샀다. 저녁을 먹지 못해 간단하게 요기도 하고, 한 시간을 카페에서 알차게 보낼 심산이었다. 그새 라운지는 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코노미 석 승객으로 바뀌어 있었다. 커피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라운지 생각이 났다. ‘아! 라운지! 나는 라운지에 가려던 참이었지!’ 이것은 탄식이었다. 라운지엔 무료 커피나 간단한 스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얼른 커피를 마시고(그릭 커피는 그다지 뜨겁지 않다), 빵을 챙겨 일어섰다. 카페 30초 거리에 수하물 검사를 위한 짧은 줄이 보였다. 별 일 없이 검사대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를 맞았다. 신문과 스낵을 파는 가게가 보였고 게이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5분을 걸어 B19 게이트에 도착했다. 라운지가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라운지는 없었다. 포기하고 게이트 앞 좌석에 앉았다. ‘아니지! 한번 가 보기나 하자. 경험삼아.’ 다시 일어섰다. 지나쳤을 지도 모르니까. 나는 수하물 검사대까지 돌아다녔지만 라운지를 찾지 못했다.

 

발길을 돌려 게이트로 향하는데 유리창 건너편에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 라운지가 보였다. 수하물 검사를 하기 전에 만났던 면세점 거리였다. 근처에 에게항공 라운지도 있으려나? 저가항공사라 라운지가 대수롭지 않으려나? 되돌아나갈 수 있는지 물어볼까? 갈등은 짧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수하물 검사대를 다시 통과하긴 싫었다. 결국 라운지엔 가지 못했다. 한번쯤 비즈니스, 일등석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내를 받는다면 더욱 좋겠다.

 

라운지를 잊은 채로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내가 이코노미 문화에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혜택을 잊고 말았다. 어쩌면 삶이 나에게 선사한 혜택도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라는 시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지금 내가 가진 소유물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자산(이나 특권)을 누리지 못하며 살겠구나.’ 내면속에 잠자고 있는 재능에서부터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들여서 구입한 물건까지(K 씨는 구입하고 나서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는 물건도 있다고 했다).

 

라운지에는 가지 못했지만,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 석의 차이를 경험하긴 했다. 저가 항공사의 40분짜리 짧은 노선임에도 비즈니스 석은 달랐다. 확실히 대접 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탕 하나가 제공되는 이코노미 석과 달리, 조금 식긴 했지만 맛난 치킨과 치즈가 들어간 미니 브로슈어 빵과 미니 크로와상이 제공되었다. 커피는 물론이다. 좌석도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았다. 3명 좌석에 두 명이 앉았고, 가운데 자리에는 테이블이 셋팅되어 있었다. 1번 열에 D번 좌석이 나의 공간이었다. 조종실 문이 열렸을 때에는 기장이 슬쩍 보였다.

 

나는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렸다. 셔틀버스에도 가장 먼저 올라탔다. 40~5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즈니스석 8명만 태우고서 출발했다.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올 때는 나도 저 무리에 섞이겠구나)을 동시에 느꼈다. 이코노미석 승객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수하물을 찾았다. 먼저 올라온 수하물에는 모두 “PRIORITY"라고 쓰인 빨간색 태그가 붙어 있었다. 내 가방이 두 번째로 나왔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줄을 서지 않고 택시를 탔다. 10~15분은 절약한 느낌이다.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눈을 크게 떠서(그런다고 찾아 질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주어진 재능과 소임을 발견하고, 성실하게 재능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삶이 펼쳐질 수도 있겠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중에서 나를 제한하는 태도, 성격, 생각들을 개선해 나간다면 말야! 비즈니스 석은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지만, 새로운 인생은 돈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좋은 생각만을 남기고 어설픈 생각은 모조리 내던지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함으로 가능하다.’ 3만 5천 원짜리 교훈치고는 값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