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다면

카잔 2016. 10. 25. 00:49

“두목 당신은 말이오.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만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 『그리스인 조르바』(p.100)

 

조르바가 자기다움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까마귀가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렸다”에서 중요한 대목은 ‘거들먹거림’이 아니다. 거들먹거리든, 겸손을 떨든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비둘기처럼’이 관건이다. 까마귀는 자신이 아닌 존재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조르바에게 삶이란 자신의 내면세계와 일치해야 했다. 삶은 자기다워야 했다. 다른 사람처럼 사는 것은 ‘뒤죽박죽’ 인생이 되고 만다. 자기답게 걸으며 당당하게 살아야 했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고 해서 인격적 삶이 된다거나 고상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다움의 영역이 아니라 인격, 태도, 사고방식의 문제다. 자기답게 살아도 욕을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자기답게 살아야 할까?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어기적거림, 삐걱거림, 뒤죽박죽이 사라진다. 그래야 어기적거리지 않고 곧게 걸을 수 있다. 삐걱거림이 없어야 오래 걷는다. 오래 걸어야 많이 보고 느낀다. 곧게 걷는 자들이 자기를 직시하는 법이다. 반성과 교정은 걸어본 자들의 전유물이다. 인생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변화와 성장의 여정이다.

 

선의를 갖고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어기적거림이 찾아들 수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의욕이 충천했고 높은 이상을 품었다. 멋진 인생을 살고자 내가 추구할 가치를 세웠다. 한 성공철학서의 제안을 쫓아 14가지의 지배가치(자신의 행동을 지배할 가치)를 수립했다. 자의식이 강한 천성을 타고나 나의 내면과 모조리 불일치한 가치들은 아니었지만, 나의 본질에 가깝기보다는 멋진 말들의 향연이었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끌어온 언어의 조합에 더 공을 들였다. 결과는 어기적거림이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로 뒤죽박죽 인생은 모면했지만, 까마귀 같은 모습도 연출됐다. 2~3년 후, 나는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는 미국의 교육 사상가 파커 파머가 나를 이끌었다. 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책이 스물다섯 살 청년을 번개처럼 일깨웠다.

 

“세상에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도덕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도덕적인 삶이란 베스트셀러 처세서의 차례를 뒤적여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을 일일이 체크해 가며 교양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쯤으로 여긴다. 살다보면 우리가 너무나 미숙한 나머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떤 가치를 버팀목처럼 세우고 그것에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있긴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순간들이 자주 되풀이 된다면 잘못된 것이다. 남의 인생을 살려고 하거나 추상적인 규범에 의존해서 살려는 사람은 십중팔구 실패하게 마련이다. 나아가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p.15)

 

극단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단순한 도덕주의자’였다. 남의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살지는 못했다. 생각은 이상적이었고, 꿈은 추상적이었다. 추상적인 가치를 힘써 추구하는 일은 제법 대견한 일이지만, 달려갈 푯대가 모호해서인지 종종 실패했다. 파커 파머는 ‘까마귀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법을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밝혀 주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우리 안의 자아는 침범을 당하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다. 진실을 인정할 때까지 때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며 우리 인생을 방해할 것이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듣는 데서 출발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나의 두 발로 나에게 걸맞은 보폭과 모양새로 걷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기적거릴 때가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 감을 때까지 어기적거리는 실수를 하게 될 테니까. 어기적거림에서 벗어나 얼른 당당함을 회복하면 그만이다. 파커 파머의 교훈들은 언제나 내게 위로와 방향을 건넨다. 그는 말한다. “소명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이라고! “우리는 내면의 소리만 빼고 그 밖의 곳에서 들리는 말에는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고. (연지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