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짧은소설 긴여운

해결

카잔 2016. 10. 28. 19:22

[짧은 소설] K는 중고 믹서기를 2만원에 팔았다. 물건을 건네며 K가 말했다. “날이 여전히 날카로워서 어떤 과일이나 채소도 곱게 잘 갈려요.”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자신의 기대만큼 날이 날카롭지는 않음을, 이튿날 당근을 갈면서 알았다. 갈리긴 갈렸고, 불편하진 않았다. 아쉬움이 찾아든 것은 뚜껑이었다. 흘림 방지용 고무패킹이 조금 헐거웠다. 믹서기 용기를 거꾸로 뒤집으니 내용물의 수분이 약간씩 새어나왔다.


믹서기를 뒤집어 사용할 일은 없지만, 조금은 불만족스러웠다. 환불을 요구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하고 정확한 공지의 중요성을 느꼈다. 다른 중고 매매자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로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거나 갈등이 일어날 만한 일은 모조리 피하려는 그였다. 감동했던 책에서 “침묵은 때때로 비겁함이고, 불의에 말없이 동조하는 결과에 이른다”라는 문장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다.


구매자는 정의로운 용기를 내어 K에게 전화했다. “생각보다 날이 날카롭진 않지만 그런 대로 잘 갈리네요. 크게 불편한 것은 아니니 제가 쓰긴 할게요. 그런데 고무패킹이 조금 헐거운 건 처음부터 알려주셨으면 좋았겠네요.” K는 불쾌하진 않았다. 왜 전화를 했는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K는 최근에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사람들을 좀 더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의 말에 동의했고, 자신도 나아지고 싶었던 터라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K의 노력이었다. 노력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구매자는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돈을 돌려 달라고 전화한 건 아니잖아요.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뭐… 미안하다거나 아니면, 다음 번 중고매매 때에는 자세하게 적어주시길 바라는 의도였습니다.” K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답답해졌다. 성의껏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K는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제가 환불해 드리겠다고요. 그러면 된 거 아녜요?” 구매자는 구매자대로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어 화가 났다. 그는 오해 받는 것이 싫었다. “제가 돈 몇 푼 받으려고 전화한 줄 아세요?” 서로의 목소리는 더 커졌고, 두 사람 모두 불편한 마음을 안고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구매자는 K를 참 매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한 결과가 불쾌하게 끝난 상황은 K에게 짜증 섞인 질문을 안겼다. ‘믹서기에 불만이 있으니, 돈을 돌려받으면 상황이 해결되는 것 아닌가?’ (끝)



[사족]

 

1.

살면서 누구나 불만, 어려움, 고통, 힘겨움을 느낀다. 어떻게 이겨낼까?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도움도 필요하다. 두 가지가 우리를 구원한다. 공감과 조언! 우리는 어떨 때에는 곧장 조언을 원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먼저 공감을 필요로 한다. 서로의 관계가 친밀할수록, 특히 감정적 힘겨움이 클수록 먼저 공감하고 나중에 조언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비공감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공감은 드물다.

 

2.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주장, 의견을 이해하여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지적이고 정서적인 역량이다. 공감의 키워드는 ‘이해’다. 이해하지 못하면 공감도 없다. 공감은 동의나 동감과는 다르다. 동의(동감)은 의견이나 생각이 같아짐을 의미하지만 공감은 상대의 감정, 주장, 의견을 잠시 공유하는 것이다. 의견이나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의 관점을 이해하고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으로 공감에 이른다.

 

3.

무엇이 상대를 도울까? 어떤 사람은 이해하고 공감이 진짜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구매자는 전자였고, K는 후자였다. 구매자는 감정의 교감을 중요시했고, 오해 받는 것을 싫어했다. K는 문제의 해결을 중요시했고, 감정적인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었다. 구매자가 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었다. (“불편한 건 아니니 잘 쓰겠다”는 말을 보라.) K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다음 번 중고거래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4.

K는 전화의 의도를 잡아내지 못했다. 문제 해결을 시도했을 뿐이다. K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상대를 돕는다고 생각했고, 실제적인 문제가 사라지면 감정적인 문제도 정리되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적인 문제는 아예 그의 고려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거나. K의 마지막 의문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느낌마저 안긴다. 구매자는 공감을 원했다.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를 바랐지만, K는 문제의 해결에 집중했다. 문제해결은 공감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구매자는 K를 매너가 없는 사람,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5.

“우리는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그를 이해하려는 시간은 갖지 않은 채 자신의 관점에서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하고 있거나 말할 준비만 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에 통과시키며 그들의 삶에 자신의 경험을 심어주려고 한다.” “훌륭한 판단을 위한 열쇠는 공감하는 것이다. 판단부터 하는 사람은 결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스티븐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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