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다시, 태백산행

카잔 2017. 1. 2. 12:05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

성실하고도 매몰찬 세월이다. 365일 동안을 쉼없이 흐르더니 얄짤없이 내게 한 살을 얹어 놓았다. 나이 들어서 맞는 새해는 희망과 서글픔이 손을 맞잡고 오는 걸까? 서글픔에는 해학이 제격이다. 지난달에 읽었던 시 <태백산행>을 다시 읽으며 기운을 낸다. 잠시나마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아름다운 예술이 좋은 앎마저 선사하니, 마음이 조용히 춤을 춘다. 혹독한 내면에 시인이 희망의 깃털 하나를 얹어준 느낌이다. 부디, 오늘만이라도 바람이 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