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하지 못할 일은 지혜롭게 거절하라

카잔 2009. 1. 27. 08:06

 

“요즘 정신 없이 바빠요. 가만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삶을 컨트롤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소중한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고 교회에서 맡은 역할도 잘 해내고 싶어요. 교회 사람들은 제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고 바쁜 것 같아 말 붙이기가 힘들다고 해요.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에요.”      

 

역삼동의 어느 카페에서 팀원의 힘겨움을 들었다. 나의 힘겨움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문제는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말은 대체로 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 없이 산다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는 종종 “요즘 많이 바쁘시죠?”라는 말로 인사한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는 말은 업무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표현인가 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쁜 것은 미덕이 아니다. 소중한 것을 돌볼 수 있을 정도의 바쁨은 성실함이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분주함이 된다. 바쁘다는 말은 대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기에, 나는 “요즘 많이 바쁘시죠?”라는 호의적인 질문에 종종 당황한다. ‘내가 요즘 시간 관리를 잘못 하고 있나?’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쁘고 싶지 않다. 여유롭게, 천천히 살고 싶다. 필기체가 아닌 정자로 글을 쓰듯,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인생의 순간들을 음미하고 싶다. 그래, 연필의 이미지처럼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이 쓰라고 하는 글자가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자를 정성을 다하여 써야지.         

 

파울로 코엘료의 에세이집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연필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내 삶을 이끌고 있음을 기억하리라.
쓰던 것을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를 분별하여 나를 발전시키리라.
잘못한 일은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로 얼른 지우고 “미안합니다”라고 쓰리라.
연필에서 중요한 것은 심지라는 사실을 깨달아 내면세계의 일에 관심을 가지리라.
연필이 가는 길은 항상 흔적이 남으니 나의 걸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그.러.나.
연필이고 뭐고, 이런 삶과는 거리가 먼 2009년 1월이다. 어찌하다 보니, 다음 주말까지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 없고, 점심 약속은 딱 하나가 비었다.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 들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유학 중인 소중한 후배가 몇 년 만에 귀국한 것부터, 메일 회신 같은 일상의 일들까지 나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들이 쌓였다. 오늘 글은 분주함으로 힘겨워하는 팀원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다.

 

효과적인 위기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라

 “가장 큰 압박감을 주는 일이 무엇입니까?”
“2주마다 돌아오는 프로젝트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그건 안 돼요.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제게 필요한 일이거든요.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게으름 때문에 미리 하지 못하는 제 미루는 습관이 원인입니다. 사실 결과물을 제출하고 나면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프로젝트에 임하는 과정 자체도 제 삶에 많은 도움이 되지요.”

 소중한 것을 미루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행복한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서 자신의 우선 순위를 알아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만, 알아두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선 순위대로 실천하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선 순위대로의 행함을 방해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자기 규율 부족, 위기의 발생,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 거절 못하는 성향 등.

 위기가 발생하면 우선 순위가 수정되기 마련이다. 업무시간이 끝날 즈음, 플래너를 들여다 보면 답답해지는 경우가 있다.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오늘 꼭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급한 일의 다른 이름은 위기다. 위기는 즉각적인 관리를 필요로 한다. B2B 플래너 영업을 할 당시, 최악의 위기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거나 납품된 제품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다. 당장 달려가서 사과를 하고 제품을 수거해 오거나 제작업체의 상황을 전화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급한 일이며 매우 중요하여 즉각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

 반면, 급한 일 중에는 가짜 위기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긴급성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데드라인까지 일을 미룬다. 미루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가장 급하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에 처리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한 번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마감기한이 다가 왔을 때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설명은 대개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두 가지 상황(여유롭게 일하기, 시간에 쫓겨 일하기)에서 실험해 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산성이 언제 높아지는지 섣불리 말하기 힘들다.

 예측할 수 있는 위기는 진짜 위기가 아니다. 마감일이 미리 정해져 있는 업무, 주마다 월마다 반복되는 업무를 미루다가 긴급해진 일들은 모두 가짜 위기다. 이런 가짜 위기를 잘 관리하는 것은 시간 관리에서 의미가 없다. 위기 관리란 미루는 습관 때문에 다급해진 일을 허겁지겁 처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과적인 위기 관리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일상에서 가짜 위기를 걷어내는 것이다. 자신만의 규율을 엄격히 실천함으로 평범한 일이 가짜 위기가 되는 일을 막아 내자. 얼마 전부터 나는 한 가지의 규율을 정했다. 원고 작성, 강연 준비 등에 도움이 되는 나만의 규율이다. 여러분들도 가짜 위기를 없애는 자신만의 규율을 만들어 보시길. (가짜 위기의 특징 중 하나는 어느 특정 요일이나 특정일에만 바빠진다는 점이다. 당신이 만약 그렇다면, 가짜 위기를 관리할 규율이 필요한 사람이다.)

 - 1.3.5 시스템
마감기한이 정해져 있는 중요한 일은 1.3.5 시스템으로 처리한다. 마감일 하루 전, 3일 전, 5일 전에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D-5일 :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일을 시작하여 계획한 부분까지 진전시킨다.D-3일 : 마감일이 다가온 것을 인식하여 미친 듯이 일에 몰입한다.D-1일 : 마감일인 것처럼 생각하여 최대한 집중하여 일을 끝낸다.

하지 못할 일은 지혜롭게 거절하라

 “No”라고 말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인생 경영의 지혜인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거절 이유를 찾기 힘든 긴급하고 갑작스러운 부탁, 우선 순위를 잊고 지냄, 여지를 남기는 듯한 분명하지 못한 표현, 자존감 부족, 자신의 가용 시간에 대한 부정확한 측정, 상대방이 상처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사실 이 두려움은 자신이 좋지 않게 비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거절하기 힘든 이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해야 할 일이라면,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거절해야 한다. 거절해야만 하는 일에 거절하지 못하면 크고 작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거절하는 것보다 더욱 미안한) 뒤늦은 취소를 하거나, 마음이 없는 모임에 앉아서 인내심을 테스트하거나(혹은 먹기 싫은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 삼키듯 하기 싫은 일에 매달리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상대방과 자신을 모두 지켜 주는 지혜로운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거절의 기술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몇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1. 우리의 능력은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크다.
무턱대고 거절하기보다는 일단 시간 관리 기술, 업무 처리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거절은 그 다음 문제다. (물론 거절하는 것 자체가 시간 관리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거절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된 것이기에 진솔한 태도와 섬세함이 필요하다.)

 2. 자신에게 소중한 것과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없다는 이유 만으로 중요한 일을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절한 일들은 자신의 일감 바구니에 들어 있는 일들보다 덜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 (회사 혹은 당신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라는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일에는 NO라고 거절할 수 있다.

 3.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것이라면 하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
일과 가정이 그러한 경우다. 거절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 사이에서 취사선택을 할 때 필요한 기술이다두 가지 일이 모두 중요하다면, 거절보다는 균형과 조화를 시도해야 한다. 두 가지 중요한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지만 한 주, 한 달이라는 시간 속에서 균형을 이룰 수는 있다.

 4.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외부의 인정이나 칭찬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들이기에 바빠지거나 힘겨워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이렇게 시간 경영을 이야기하는 뜻밖의 장소에서도 등장하는 주제다. 자기 사랑은 인생에서 참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제 거절의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할 차례다.<경청 → 거절 → 이유 → 대안>이라는 4단계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뜸을 들인 것 치고는 단순한 이야기다.

 1 경청하라.
거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나에게 찾아 든 전화와 상사의 부탁에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 마음을 닫으면 세상과 소통할 수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자신을 발전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적극적인 자세는 삶을 발전시킨다. 거절을 해야 하더라도 일단 말이 끝날 때까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첫 단계는 경청하여 상대방의 요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부탁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거절하면, 시간은 지킬 수 있어도 다른 어떤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

 2. 거절하라.
자신의 우선 순위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거절해야 할 것 같으면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라. 미안하다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대한 거절 의사가 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해 상대방이 또 다른 가능성을 품게 한 적이 많았다. 그 결과는 전화 통화가 결론 없이 질질 늘어지는 것이다. 결국, 상대에게 정말로 피해를 끼친 것이다.

 3. 이유를 말하라.
경청을 하고 난 후, 자신의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인 거절이라면 상대방이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경우마다 그 이유를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유를 말해 주는 것이 신뢰 유지에 도움이 된다. 상대방이 서운해 할 것 같다고 느껴지면 친절하게 거절의 이유를 말하라. 이때, 다시 부탁의 여지를 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직 거절의 이유를 진솔하게 말하면 된다. 이유를 말하는 것조차 미안하여 3번째 단계를 생략할 때가 많지만, 상대방은 나의 진솔한 이유를 듣고 오해 없이 거절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상기하자.

 4. 대안을 제시하라.
부탁한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알려 주라.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면 된다. 미안한 마음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대안을 찾으려는 생각은 지혜롭지 않다. 나에게 부탁을 한 그는 또 다른 대안을 나보다 빨리 찾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상의 4가지 단계는 단순하니 실천하기 좋고, 실천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에 저녁 식사를 한 번 하자는 연락이었다. 지난 주에 미리 나에게 이야기했었던 터라 거절하기 참 힘들었다. 나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번 주에 중요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와우 신년회, 유학 간 후배의 귀국, 지난 해부터 미뤄왔던 모임 약속 등. 나는 후배에게 거절해야 했고 양해를 구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미안함에 살짝 당황한 나머지 거절의 이유를 말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불가피한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후배의 마음이 보다 편해졌기를 바란다. 분명한 사실은 두 번째 통화에서는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사의 업무 부탁에도 지혜롭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거절이라기보다는 상사에게 우선 순위를 여쭈어 일의 순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받는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 부탁 받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상사는 오늘 또 다른 일을 맡기는 경우, 어떡해야 하는가?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어떨까?

“부장님, 어떤 일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생기네요. 저는 지금, 부장님께서 어제 지시하신 일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오늘 업무 시간까지 부지런히 해야 겨우 끝낼 수 있을 듯 합니다. 지금 주신 일과 제가 하고 있던 일 중,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까요?”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려는 과욕은 대개 어설픈 결과물로 이어진다. 상사에게 우선 순위를 정해 달라고 부탁하여 하나씩 제대로 처리해 나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상사에게도 흡족한 결과물을 보고 드릴 수 있는 길이다. 머리를 짜내어 저렇게 점잖게 이야기해도 “자네는 그것도 모르나?”라는 핀잔만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꿋꿋하자. 상사는 칭찬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하든, 상사의 칭찬을 기대하기보다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한 본인의 성장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순위를 모르면 물어야 한다. 핀잔을 들으면 자신의 업무와 상사의 우선 순위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아이들은 무르팍을 깨며 자라고,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깨지며 성장한다. 깨짐은 두려워하지도 말 일이고 전수하지도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