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의 여행을 건강히 마치고 지난 주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인들은 여행이 일주일만 넘어가도 '와! 길게 다녀왔네'라고 하지만,
여행길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해, 친구와 함께 7일 동안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로의 여행 중에 만난,
네덜란드 청년들은 왜 이렇게 짧게 여행을 왔냐고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들은 2달 째 동남아 여행 중이고, 한 달 후에나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다시 그들을 만나면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게 됐다. ^^
이번에 다녀온  브라질-캐나다 여행이 한 달은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28일)
2002년에 38일 동안의 중국 배낭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가장 긴 여행이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떠났던 중국 배낭 여행과 달리 이번에는 잘 먹고 잘 쉬었던 여행이다.
좋은 분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돌아와서도 여행을 생각하면 감사함이 내 곁을 감돈다.

한 달이라는 꽤 긴 시간이었지만,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여행은 여행이다.
떠나서 돌아온다면 여행이다. 돌아오지 않으면 떠남, 이사, 이민이 되겠지만 돌아오면 여행이다.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떠나기 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좋은 여행이다.

그런데, 떠났다가 아주 오랜 후에 돌아오면 그것도 여행인가?
5년 동안 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살다가 돌아오면 그것은 여행인가?
아니면 짧은 이민 + 귀국인가?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삶도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어딘가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다.
또한 자기 생의 의미와 신의 목적을 찾아 묵묵히 여행하는 순례자다.
귀국하는 순간, 나는 한국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을 한국에서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보다 많이 배우고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외국 여행 중에 배운 유머 감각, 낙천성, 배려하는 마음 등을 기억하여 오늘의 삶에 조각하고
여행 중에 지녔던 모험심, 호기심,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 등을 유지하면 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더욱 활기차고 낭만적으로 살 것이라는 환상을 멈추면 된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기에.

이런 생각들은 줄곧 품고 왔던 것이지만 여행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에 자연스레 한 표를 던진 셈이다.
여행을 다녀 오며 새롭게 든 생각, 정리가 된 생각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단순함을 추구하다

앞으로 나는 보다 자주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가봐"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아냐면, 이런 류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듣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여행자의 삶을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니다.
여느 사람들과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물건들과 필요한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나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구매한다. 
나는 매달 물건 때문에 나가는 할부금이 없다. 통신비, 월세, 보험료가 전부다.
나의 재정 상태를 가끔씩 체크해 주시는 재무컨설턴트는
내가 일반 직장인들의 1/3, 1/4의 용돈으로 살고 있음에 놀랐다.
(사실, 나도 놀랐다. 나는 돈을 많이 쓴다는 약간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돈을 못 버는 편이 아니지만, 저축은 거의 하지 못한다.
나도 어딘가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나는 물질이 아닌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한다.
이것이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구매한다는 말이다.

나는 책을 구입한다. 이유는 책을 읽을 때 내가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에 투자한다. 여행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물질을 위해 투자할 때, 나는 개인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곳에 돈을 쓰는 것이다.

(장기적인) 해외 여행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바꿈으로 얻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물론,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며칠 전, 셔츠와 외투, 청바지 등을 버렸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필요없게 된 책들을 몇 권 정리해 냈다.
몇 년 동안 들고 다니지 않았던 가방을 처분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때 들고 다녔던 가방까지 갖고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 라는 단 하나의 생각이 못 버리게 된 이유다.
그 생각 때문에 나의 공간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지금의 내 방을 돌아본다. 여전히 너무 많이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관리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데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고 기계적인 삶을 위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WBC가 끝나면 스카이라이프를 해지할 것이다.
어서 월세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한 달 동안 집을 비웠는데, 돌아와서 내야 했던 월세는 어찌도 아깝던지. ^^

나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나에게 충만한 삶이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단순함이란,
아름다운 시간 활용을 돕지 않는 물건과 지출을 없애는 것이다.


일상의 여행

이번 여행을 통해 구체적으로 여행자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허구한 날 해외로, 다른 도시로 떠나겠다는 말이 아니다.
삶이 곧 여행이니 나의 일상을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것을 관찰하는 시선을 나의 일상 속에서도 갖고 싶다는 뜻이고
마음을 열고 배우겠다는 태도를 지금 여기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의 결과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고,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틀 전, <브라질 여행 후 달라진 것들 (일상편)> 을 썼다.
사고편을 쓰다 보니, 일상편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생각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나를 또 다른 생각의 지평으로 날아가게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사는 대로만 생각하다 보면 삶의 발전도 없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든,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삶과 일상을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크고 작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 변화는 또 다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주었다.


생각하기의 중요성 & 생각을 돕는 도구들

이번 여행 후에, 생각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절절히 느꼈다.
새로운 생각 하나가 내 삶에 만들어 낸 변화를 나의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여행 후 달라진 것들 (일상편)>은 여행 후 생활의 변화 몇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생각하며 살기가 쉽지 않지만, 생각을 돕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독서, 영화, 대화다. 이것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야 누릴 수 있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통해 생각하지 않아 더욱 시간이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목록에 하나를 덧붙인다. 여행.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드 보통의 말이다.
독서도 생각의 산파다. 대화도 생각의 산파다. 영화도 생각의 산파다.
독서, 대화, 영화. 이 세 가지는 내 삶으로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여행에 대해서도 당당히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삶으로, 가슴으로 구구절질히 늘어놓을 이야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표현은 구구절절히 지저분해 질 것이니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린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선한 싸움'의 스펙트럼 확장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파울로 코엘료도 '선한 싸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코엘료는 순례의 길에서 깨달은 '선한 싸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 선한 싸움은 자신이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
- 선한 싸움을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선한 싸움의 대상은 내면적인 것과 외부의 것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내면적인 것들을 물리치는 법에 대해 공부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외부의 것들과 벌이는 '선한 싸움'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됐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꽤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감사하고,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얻어왔기에 행복하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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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씨 2009.03.13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뭐랄까 그 전과는 좀 다른 아니 더 넓고 깊어진 느낌이 들었는데...역시~~ ^^

  2. pumpkin 2009.03.1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도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어딘가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다.
    또한 자기 생의 의미와 신의 목적을 찾아 묵묵히 여행하는 순례자다.

    .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보다 많이 배우고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외국 여행 중에 배운 유머 감각, 낙천성, 배려하는 마음 등을 기억하여 오늘의 삶에 조각하고
    여행 중에 지녔던 모험심, 호기심,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 등을 유지하면 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더욱 활기차고 낭만적으로 살 것이라는 환상을 멈추면 된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기에.

    .

    당연한 말이지만, 생각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나를 또 다른 생각의 지평으로 날아가게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사는 대로만 생각하다 보면 삶의 발전도 없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든,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
    .

    구구절절이 와닿는 말씀들로..
    읽으면서..
    마치 제가 지구별을 떠도는 여행자라도 된듯한 떨림니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내 일상을 여행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정말 삶은 더 흥미롭고 흥분되고 신나는 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떨림이 느껴져서...때로는 감당이 안될때가 있지요..

    이 떨림은..
    때때로 '자유롭고 싶은' 저의 마음에...
    잔잔한 물무늬를 일으키는 것...
    부정할수는 없으나..
    또한...내 일상을 어떻게 충실하게..
    충만하게 채워나갈수 있는지..
    용기를 불어넣어주심에...
    감사를 느끼게 되지요...

    정말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이 아닌...
    그렇게 살면서...함께 느낌을 나눌수 있는...
    그런 생활속에 실천하는 제가 되고 싶단 생각...강하게 드네요..

    다시한번 용기 주심에..
    자극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제가 살아가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며..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선생님의 글 속에 녹아있어...
    잠시 멈춰...한참을 생각에 잠겨보게되는 글이었어요..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며..

    펌킨 드림~

    • 보보 2009.03.14 1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 글이 펌킨님께 전해진 울림이 특별한 것 같네요. ^^
      댓글 속에 떨림이 깃들어 있음이 느껴집니다.
      조만간 글쓴이보다 더욱 많은 걸 느끼시고 얻으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 ^^

  3. 해바라기 2009.04.08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선한 싸움은 자신이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
    - 선한 싸움을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간직한 꿈의 이름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모르겠고 그럴싸하게 단어만 포장한 어설품으로 느껴지네요~
    하나님이 비웃고 계시겠어요~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선한 싸움을 하신 선지사도들께 고개가 쑥연해 지는군요~

    선한싸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지키는 것이 선함 싸움입니다~


    누가복음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청하여 집과 부모와 형제 그리고 처자식을 떠나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족을 돌아보았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뒤 소금기둥이 된 롯의 부인처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민없이 값없이 자신의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디모데후서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순교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말할수 없는 희생과 수고를 치른 후 네로의 박해 아래 로마의 집행장에서 칼에 목이 베여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형당하던 당시, 1만 8천여 명의 기독인들도 함께 순고하였지요~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 혁군 2009.04.08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나님께서 비웃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좋아하실런지도 의문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다시한번 느끼고 갑니다.

    • 보보 2010.06.16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한 싸움의 정의, 정확하십니다. ^^
      제 표현이 선한 싸움의 고귀한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현재 저의 부족함이고 앞으로의 해결 과제랍니다.

      허나, 이제 이런 말다툼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신앙의 세속화를 조장하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제 마음은 오직 예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제 꿈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고 그 영광스런 사역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의 의미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 해바라기님께 중요하다면
      제게는 마음 속의 꿈을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항상 연결되어 내 마음이 시키는 것과 곧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 같아지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
      읽는 이가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제가 개선해야겠지요.

      제가 연약하고 죄인된 인간의 본성을 과도하게 신뢰한다면
      해바라기님은 그 반대편에 서 계신 것이겠죠.
      '벌레만도 못한 죄인'의 탄성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앞에 값싼 단어들을 갖다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혹 갖다 붙인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더럽혀지지 않으시겠지요.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 자체로 온전하시니까요.

      흥분함으로 글을 썼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지 않고 자유함을 향한 갈망으로 썼습니다.

      해바라기님의 글로 인해 제 믿음을 반추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영적인 것과 영적이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듯한 이원론에는 반감을 갖게 되네요. ^^

      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럽히는 날이 오더라도,
      이 글을 쓴 날이 그 날일지라도,
      따뜻함으로 제게 다가와 주시길 바랍니다. ^^
      목적 뿐만 아니라 방법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때 복음이 복음다워질 테니까요.

      세상의 부드러움과 타협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한껏 배우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심은 진정 감사합니다.
      그러나 판단하는 마음은 사양합니다. ^^

  4. 해바라기 2009.04.08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석님의 세상지식은 풍부하나 진정 갈망해야 하고, 우리가 의지하며 붙잡아야 하는것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있는척 하는것에 거슬렸고, 미련해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지식에 묻혀가는것이 아쉬웠습니다.

    희석님은 참 좋은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더큰 계획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이나 있을지 의심이 가지만요~

    희석님의 펜으로서 위 글의 같은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에 있어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점점 퇴색해가는 모습도 비춰지구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장과 도약을 필요로 한다면서 남이 정확한 판단을 했다고 하여 기분나빠하시는걸 보니 나약한 사람이군요~
    그리고 거짓인가요? 강연때에도 저에게 인상깊었던 단어는 사람의 성장과정에는 충격이 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사람은 충격이 오래가지 않아서 그렇지 대학에 가게된 요인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충격때문이였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몇개의 리플을 통해.. 충격이 커겠죠~


    자신을 돌아보기는 했습니까?

    편한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망상은 하지 마시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의지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쳐주면 감사한것 아닙니까?
    이보다 값진것이 칭찬이고, 자신을 높여주는 사람의 지혜의 말입니까?

    스스로 죄없이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착한사람들이죠~
    제가 이곳에 들르는 이유는
    희석님이 아까워서 입니다~ 알고계신 지식이 더 빛이 날수 있는데 말입니다~
    영성을 갖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영성이 더해진다면.. 세상을 지고갈만큼 강력한 힘을 얻게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그동안 충격을 주었지요~ 알고있습니다.
    저도 충격을 주고싶어서 쓴 글이니까요~

    그러나 희석님께서 지금알고계신 지식은 하급입니다~
    알고계시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신의 글인 하늘의 것입니다. 땅과 하늘을 어찌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기분이 상하셨겠죠~ 의외로 자존심도 있으시네요~
    무척 겸손하고 낮은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간의 상황이 짐작이 가는군요~


    저를 어찌 믿을수 있겠습니까 .. 자신을 이렇게 깍아내리는 사람은 없었을듯 싶으나 하나님은 희석님을 아시겠죠~

    나(하나님)를 위한 지식인지.. 세상의 욕구를 충족하고픈.. 여행자의 모습인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교만때문에 깨우치질 못하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직설법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암튼... 요~ 자신만큼 스스로를 아는것은 없으니까요~

    성경도 보시고, 말씀공부도 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도 않고, 이웃을 사랑할수 없습니다.
    제가 희석님께 매를 맞을것을 각오하고 쓴 글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옷한벌, 지식한자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헉군님때문에 다시 메일로 보내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궁금해 하실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는 지혜도 지식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면 전토를 버릴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의 생각의 허무함을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헉군님께서도 제가 올린 리플도 찾아보심 조금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 보보 2009.04.08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작 이렇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 하하.
      하고 싶은 말을 이리 시원하게 해 주시니 좋네요.

      하하하하.
      (지난 글에 흥분했음을 그대로 표현했듯이)
      저는 속으로 열이 나면서 웃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웃음은 진정입니다. ^^

      블로그에 오신 분들이 저를 제대로 평가할 기회가 온 것이니까요. ^^
      보보에 대한 좋은 말들만 오가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스스로를 경계해야 했으니까요. ^^

      제가 충격을 받아 흥분했다고 생각하셨다면,
      그 오해만은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란 걸 첫 만남 때 느꼈지요.
      저는 다름이 존중받지 못한 것 같아 흥분한 것이지요.
      근본 원인은 저의 미지근한 신앙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저의 죄를 '다름'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형편없는 관계를 직면케 하는 해바라기님의 조언 앞에 마냥 감사하니까요.
      제가 흥분한 것이 기분이 상한 것과 동일하게 판단되지 않기를 바라는 게지요. ^^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선한 싸움'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100% 동의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