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벤쿠버여행 4일차] 보보의 개똥철학 About Travel

카잔 2009. 3. 2. 11:38

벤쿠버 여행 4일차. 2009년 2월 28일 토요일.
무슨 연유인지 일찍 자게 되고 새벽에 깨게 된다. 3시에 일어났다.
오늘은 6기 와우팀원들의 1차 지원 마감일이다. 
벤쿠버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면 한국 시각으로 자정이 된다. 
오전 7시까지 보내는 지원자들만 접수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할 일들로 새벽을 채웠다. 

새벽 : 독서와 욕조 놀이 ^^

새벽에 특별히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멍하니 있다가 어제 구입한 책을 조금 읽었다. 
워낙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기에
혹시라도 있게 될 대량 구입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읽은 게다.
『You've got to read this book』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살 책들을 결정하여 계산하러 가는 길에 눈에 띄어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다.
꼭 이런 책이 먼저 구미에 당긴다.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원서 독해 실력을 깨닫는다.
'아! 생각했던 속도만큼 내가 원서를 술술 읽어내는 것은 아니구나!' 
'대량 구입 미연 방지'라는 독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
이 정도면 나의 독해 실력을 충분히 머릿 속에 각인시켜 둔 셈이다. 
오늘 서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 믿으며 독서 시간을 마쳤다. ^^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된 책임을 계산하고 서점을 나오면서 알았다.
역시 충동 구매의 결과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욕조 속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호텔에서의 아침 일과다. 
피로를 푼다는 생각을 들어가 있지만, 한번도 시원함의 효과는 없었다. 
그저 샤워했다는 개운함만 있을 뿐.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식 효과를 노리며 매일 아침 들어간다.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나왔다.
4일차의 여행은 도전과 실험 정신을 한껏 발휘하리라는 다짐을 욕조에서 얻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쳤고, 나는 오예를 외쳤다.
그보다 나의 외침이 조금 없어 보이지만 거짓말할 수는 없으니 그대로 적었다. ^^
(내일은 근사한 것을 떠올리고 나서 '유레카'라고 외쳐야지~ )


덴버 오믈렛이 어떤 맛일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오믈렛이어서 시켜 놓고 기다린다.
식사가 나왔다. 딱 보는 순간 내 마음에 들었다. 맛있을 것 같다. ^^
와... 맛도 좋다. 메뉴판에서 오믈렛과 치즈라는 단어만 보고 시킨 것인데...
기분 좋은 아침 식사다.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토스트가 나오면 참 좋겠다는 나의 마음을 주인장은 어찌 읽으셨을까. ^^
내가 그런 메뉴를 주문한 것이겠지만 마냥 고맙고 즐겁다.

보보의 개똥철학 About Travel

오늘은 나의 여행 정신에 대하여 적어 보겠다고 호언했으니
이에 대하여 몇 마디라도 끄적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어서 떨쳐내고 일지를 써내려가고 싶다.

1. 여행도 삶이다. 그러므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명소를 둘러보았더라도 가슴에 한 줄기 느낌이라도 없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나 거기 다녀왔지"라고 말하는 데에 쓰이는 경험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다. 
허영심보다는 배움을 향한 탐구심과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여행에 필요하다.

2. 여행은 삶이지만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목표 지향적일 필요가 없다. 
일에서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생각하고 효율성을 따져가며 일해야 한다. 
일은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여행은 시간표대로 행동하는 것보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목표보다는 새로운 새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는 자체에 집중한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는 일도, 물건을 구매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 된다.
여행책자를 통해 계획한 곳을 방문하는 것보다 더욱 신나는 일은
여행지에서 마음에 피어오른 호기심을 따라 모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4. 그러므로 느긋함과 즉흥성은 내 여행의 묘미다.
가야 할 곳의 목록과 해야 할 것의 목록이 있긴 하지만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즉흥적인 수정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정은 느긋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느긋해야 한다. 거기에는 꼭 가야지, 라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5. 관광 명소는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큰 실망만 안겨 주는 관광 명소가 많다. 상업성만 가득하고 볼 거리, 생각꺼리는 없는 경우다.
그렇다고 관광 명소를 적으로 삼을 필요도 없다. 정말 명소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곳도 많으니.
사람들의 평가에만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관심도까지 고려하여 방문할 명소를 정해야 한다. 
여행은 객관적인 명소를 방문하는 사이 사이에
자신만의 주관적인 명소 리스트를 추가하는 묘미가 있어야 한다. 

6. 열린 마음과 적극적인 용기로 여행지에 관심을 가져라.
여행은 여행 책자의 정보가 정확한지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인생 레슨을 받는 것이다.
배우려는 자에게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7. 결국 여행의 목적은 만남이다.
웅장한 자연과의 만남, 이방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낯선 세계에서 문득 자신과의 만남이 있으면 더욱 좋다. 아니 필수다.
만남이 없는 여행은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는 활동으로 전락한다.

8. 여행의 완성은 (진보된 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옴으로 완성된다. 돌아옴이 없다면 여행이 아니라 떠남이다.
돌아오되 떠나기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면 좋은 여행이다.
여행 중에서 배운 것들을 일상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다.

9. 결국 여행처럼 흥미진진한 삶을 살아간다면 삶이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품었던 호기심으로 일상을 관찰한다면...
낯선 외국인에게 주었던 친절과 미소를 이웃에게 전한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발휘했던 용기와 모험을 자기 일에도 투입한다면...
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사족1] 패키지 여행으로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패키지 여행을 떠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여행에 대한 생각이 나의 개똥철학과 비슷하다면
패키지 여행 그 이상의 것을 고려해 보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사족2] 모두 여행자가 호치민의 묘를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우리는 긴 줄을 서야 했다. 호치민의 묘를 보기 위해.
줄은 정말 길었다. 천 미터는 족히 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나 박물관에서 감흥을 못 받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호안키엠 호수에서 맥주를 마시 흥취를 즐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오전 : 메일 회신과 글쓰기


새벽 시간을 너무 멍하게 보낸 것 같아 아침 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플래너를 꺼내 해야 할 일들 몇 가지를 적었다.
긴급한 메일 회신, 5기 와우팀원 축제 피드백, 여행일지 작성 등
일감 바구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되면 의욕이 생겨난다.
늘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몰라 부담스러운 것이고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뭇해 해결이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낀다.

6기 와우팀에 지원한 분들에게 회신을 보냈다.
모두 자기 인생의 도약을 절절히 희망하는 분들이어서 모두 함께 했으면 좋겠다.
혹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면 다음 번에라도.
지원한 분들은 연령대도 다양했고 직업도 다양했다.
나는 그런 다양성을 존중할 것이다.
그들만의 고유함과 재능, 열정으로 가진 존재로 각 개인을 맞이할 것이다.
나이와 직업 등으로 그들의 과거로 평가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삶을 펼쳐질 것인지를 가지고 그들의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계획한 것을 못다 했는데, 12시가 되었다. 
오후에도 호텔에서만 있을 수 없잖은가!
일을 접고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차이나타운과 벤쿠버 시립도서관에 가고 싶다.  
가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후 : 스포츠 박물관, 차이나타운 방문 & 벤쿠버 시립도서관에서 독서

오늘 여행은 어제는 지니지 못한 3가지 도구를 지녔다.
용기 - 가고 싶은 곳이면 들어간다. 먹고 싶은 것이면 주문한다. 영어가 안 되면 제츠처를 동원하여!
탐구심 -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리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가 딛는 곳마다 관찰하리라.
느긋함 - 여유롭게 오늘 하루를 즐기리라. 가야만 하는 곳은 없다. 가고 싶은 곳에서 시간을 누려야지. 

BC SPORTS HALL OF FAME AND MUSEUM

발걸음이 가볍다. 마음가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역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가 보다.
차이나타운을 향하여 내딛은 발걸음은 금방 방향이 바뀌었다.
호텔 앞에 아주 큰 체육관 같은 게 있는데 늘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오늘은 무서울 게 없다. 궁금하면 확인해 보는 것이다.
<BC SPORTS HALL OF FAME AND MUSEUM>라고 적혀 있는데
스포츠, 명예, 박물관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어색하기만 하다. 확인해 보자.



처음에는 오늘은 문을 열지 않은 줄로 알았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 근처에 경찰관으로 보이는 듯한 2~3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티켓 판매소에도 직원이 없고, 모든 창구에도 문이 닫혔다.
그래도 안에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허접한 접수대 같은 것이 있었고, 여성 직원이 내게 뭐라고 말했다.
못 알아 들었지만 상관않고, 나는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마 그도 무슨 소리인가 했을 게다.
입장권이 있냐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10달러랜다. 에그머니나. 왜 이리 비싸대?
티켓을 구매하여 스포츠 박물관으로 보이는 그 곳으로 들어갔다.



스포츠 박물관을 둘러 본 소감. '와~!' 라는 감탄사의 연발이었다.
- 와, 이렇게 허접하게 꾸며 놓고서도 사람을 받을 수 있구나.
  '이건 뭐, 동네 좀 괜찮은 전시관 수준이네. 하긴 제주도에서 이런 류의 관광지가 더러 있더라.)
- 와, 스포츠를 주제로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구나.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대 올림픽 참가 성적 등이 자세히도 모여 있구나.'
- 와. 재밌네.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참여할 수 있는 관이 하나 있어서 즐거웠다.
  '이왕이면 1.4초 안에 들어 봐야지... 나도 달리기는 좀 한다구!'



참여관은 암벽 등반 코너, 달리기 코너, 축구 슛 코너 등이 있었다. 근사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초등학생들이 즐길 만한 수준이고 규모도 작고 시설도 볼품없다. 다만, 나의 노는 수준이 딱 초등학생이기에 나는 즐겁게 즐겼던 게다.
특히, 달리기가 재밌었다. ^^ 처음에는 2.0초가 나왔는데 재미가 붙어 가방과 점퍼를 벗고 제대로 달렸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1.6초 이상의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 땀이 나기 시작해 관뒀다. ^^
박물관 중간 중간에 이런 참여할 수 있는 코너가 있으니 괜찮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였다.
이제 즐거워지기 시작하는구나, 라는 생각이었는데, 박물관은 거기서 끝이었다.




차이나 타운

차이나타운까지의 거리는 15분 거리다.
지도를 보며 따라 갔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차이나타운의 대형쇼핑 건물에 들어섰다.
푸드 코트가 있어 중국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아주 흡족한 맛과 가격에 신이 났다.  


식사를 하고 난 후, 차이나 타운을 걸었다.
세계에서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큰 차이나 타운이란다.
메인 도로를 따라 모두 둘러보았다. 빨간색의 등이 많아 확실히 중국 분위기가 나긴 했다.
중국은 가장 많이 여행한 국가인지라 친근감이 갔다.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지도에는 <Dr. Sun Yat-Sen Classical Chinese Garden>에 볖표가 붙어 있다.
Attractions Site 를 별표로 표시한 것인데, 들어가 보았더니 실망이었다. (아래 사진)


겨울이어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이 정도의 가든은 중국에 얼마든지 있다.
상하이에서 보았던 예원(?) 등이 아기자기하고 예뻤던 것에 비하여 보통 수준에 불과했다.
매력적인 포인트라기보다는 지나가다 잠시 쉬며 살짝 정취를 느끼는 정도... ^^
이 날엔 추워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던 뒷골목 탐험

차이나 타운을 둘러 본 다음에는 걸어서 다운타운을 향했다. 나의 방향 감각을 믿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한 두 블럭을 걸어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운타운과는 달리 거리는 지저분했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걸인들이 많이 보였다. 멀쩡한 복장이지만, 캔을 줍는 큰 자루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걸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거리에는 포대 하나를 덮어 쓰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우르르 모여 뭔가를 구경하는 듯 하여 가 보았더니 한 사람이 담배를 한 개피씩 나눠 주고 있었다.

브라질과는 달리 치안이 좋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별다른 무서움이 없이 그들과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묘한 모습의 뒷골목 하나를 발견했다. 한 여인이 한쪽 손을 떨고 있고 골목 중간 중간에는 앉거나 서 있는 흑인들이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눈다. 왠지 음산한 분위기의 골목... 손을 떨던 여인이 걷기 시작하는데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전다. 순간, 나는 그 골목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편까지는 300m 정도 되어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혹 바로 앞에 있던 걸인이 시비를 걸까 봐 도로 하나를 건너가서 멀찌감치서 찍었다. 쓰레기를 줍는 청소부도 보이고,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청소부도 있고 차도 있으니 뒷골목 통과하기는 한 번 시도할 만했다. 도로를 건너 뒷골목 앞에 섰다.
이미 카메라는 가방에 넣었고 옷을 고쳐 입었다. 여차 하면 뜀박질을 해야 할테니까 말이다. 긴장감이 감돈다. 분명 조금 전에는 지나가는 자동차도 한 대 있었고, 야광복을 입은 청소부도 있었는데, 어느 새 그들도 사라졌다. 사진에 찍혔던 멀쩡한 복장의 행인들도 없다. 괜한 두려움이 들었지만 별일이 있을까 싶어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으아..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골목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배인지 모르는 무언가를 피워대고 있었다. 한 명이 나를 가로 질러 걸어가는데 그의 눈빛은 풀려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왠지 무서웠다. 걸음을 빨리 재촉한다. 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보일까봐 눈에 띄지 않게 속도만 높였다. 흑인들 무리를 지나칠 때마다, 나는 혹 나를 따라오지는 않을까 하여 뒤로 곁눈질을 하며 걸었다. 몸이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느끼며 발걸음을 신속히 옮겼다. 골목의 끝이 왜 저리도 멀까?

골목이 50m 즈음 남았을 때, 한 부류의 흑인들 앞을 지나칠 때에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글을 쓰는 지금도 몸이 움츠려 든다. 어쨋든 무사통과다. 대로에 나오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공포 영화를 볼 때에 여인들이 무서워 털썩 주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짓을 했을까? 종종 사람들은 자신도 모를 행동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달랬다. 쓸데없는 짓은 아니라 여기며... 어쨌든 재미는 있었으니까. (울 할머니가 내가 이러면서 노는 줄 알면 큰일인디. 걱정 하실테니...)

벤쿠버 시립도서관 관람

외국인이니 신분증을 보여 주며 간단한 카드를 작성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 두 마디 말로 (단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설명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들어갔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용기와 호기심 가득한 진짜 여행자다. ^^
머릿 속으로 살짝 상상해 둔 상황이 무색해질 만큼 그냥 슈퍼마켓에 들어가듯 열람실로 들어갔다.
통과해야 하는 기계도, 누구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도서관에 하나 들어가는데 홀로 긴장이라도 했나 보다. 하하. ^^

이곳 저곳을 둘러 볼 곳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1층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책장 사이 사이를 지나는데 문득 동양인이 많다 싶더니 외국어 코너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된 책장들이 나왔다. 반가웠다. 한 한국 여학생이 한국어로 된 책을 한아름 들고 나를 지나쳤다.
와... 공부 열심히 하네, 라고 생각하며 들고 있는 책을 봤더니 만화책이다.
여기까지 와서 만화책을 보나, 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배움은 만화책을 통해서도 얻는 것이고, 진짜 열심히 공부하다가 난생 처음으로 만화책으로 머리를 식히려던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각층을 모두 돌아보고 나는 어느 좋은 자리에 앉았다. 책상이 있지도 않고 의자가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곳이다. 정렬된 책상과 의자들이 주지 못하는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여기에
청년들은 앉고 싶은 포즈로 앉아 책을 읽는다. 나도 창가의 어느 의자에 앉았다. 바로 곁에는 흑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손에 든 책은 없었다. 그냥 이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보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짜릿하거나 감흥이 넘치진 않았지만 흐르는 강물의 물결이 주는 편안함처럼 자연스러움 가득한 기분 좋음이었다. 여행자와 생활인을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에서 호텔까지는 5분 거리다.
도서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행인에게 부탁했더니 각기 다른 거리로 4장이나 찍어 주었다.
고마웠다. 그 중에 도서관이 가장 많이 나온 사진 하나를 올린다. ^^



호텔에 돌아와 잠시 일을 하다가 출출해져 식사를 하러 갔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뉴욕스테이크로 저녁을 해결했다. 어제 먹은 뉴욕 스테이크와 비교도 하면서... ^^
당연한 말이지만. 일단 분위기가 달랐다. 하하. 나에게 와인 한 잔도 선물했다. 호호.
혼자 신났다.



객실로 돌아와 뻗었다. 9시, 10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