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경주 봄나들이

카잔 2009. 4. 5. 22:38


즉흥적인 여행

여행지에 고작 5시간 동안 머물렀던 당일치기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길을 나섰지만, 오후 2시 14분이 되어서야 경주역에 도착했고,
저녁 7시 16분 새마을호를 타고 경주역을 떠나야 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떠남이 목적인 여행.
경주에 가게 된 것도 문경세재에 가려던 계획이 당일 변경된 것이다.
경주역 앞에서 관광 안내지도를 보고 목적지 하나를 정해 길을 가던 아저씨께 물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황성공원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 하나의 질문으로 참 많은 정보를 얻었다.
경주는 동로마의 비잔틴과 함께 천년의 고도를 자랑하는 도시라는 것,
경주 이씨의 시조 '이알평' 묘가 경주역 인근에 있다는 것 등. (바로 나의 시조다.)

아저씨는 무려 10여 분 동안 구수한 역사 이야기와 함께 5시간짜리 여행 코스를 안내해 주셨다.
단 두개의 질문으로 여행 계획이 세워졌다. 즉흥적이지만 괜찮은 코스라 생각되었다.
다른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황성공원 근처의 가 볼 만한 곳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해박한 지식에 놀라 무슨 일 하시냐고 여쭈었다. 예전에 경주 여행가이드를 하셨단다.
여행지에서 항상 가이드 출신의 행인을 만날 수는 없지만,
질문을 통해 몇 가지의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질문은 좋은 것을 얻는 지름길이기에.


나를 반겨 준 햇살과 가슴을 흔드는 서시

갑작스런 경주 여행이었는데도 봄 햇살이 반겨 주어 고마웠다.
조금 걷다 보면 겉옷를 벗어야 하고, 벗고 쉬다 보면 움직여야 하는 정도의 날씨였다. 
황성공원 김유신 장군 동상 앞의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이 참 맑았다. 휴대폰 사진으로 하늘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하늘처럼 맑고 푸르게 살자"는 문자와 함께. 
스스로 식상한 말이라 느끼면서도 진정이었기에 보내버렸다. ^^

저 유명한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려 본다.
이 짧은 시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가슴에 품고 살았더라면 떳떳할 텐데... 쯧쯧.
이것 저것 지식이라고 머릿 속에 담아 두었지만, 삶의 진보를 이뤄주는 지식은 얼마나 될런지.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벚꽃과 보문 호수

길을 걸었다.
벚꽃이 피었으면 잠시 멈춰 사진을 찍거나 눈으로 보았다.
다리가 아프면 잠시 앉아 동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 계획을 바꿔야 할 만큼.
즉흥적으로 찾은 곳이니 이곳에서의 계획 하나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보문호수를 가는 것으로 마음을 합쳐 택시를 잡아 탔다.

보문호숫가 잔디 위에 앉았다. 단지 바라보고 싶었기에.
지난 해, 가족과 함께 묵었던 대명리조트가 내가 앉은 오른편에, 호수는 정면에 있다. 
대명리조트를 보며 가족과의 여행 이런 저런 장면을 떠올리는 나는 직관적인 사람임을 느낀다.

고개를 돌려 호수를 내려다본다.
사진을 찍는 연인들, 저물어가는 석양이 보였지만, 그보다는 그저 기분좋은 감상에 취했다.
전화가 왔다. 이크, 잠시 꺼 두는 것을 잊었다. ^^ 허나, 즐거운 대화였다. 와우팀원이었기에.

저만치서 들릴까말까한 소리의 음악이 들려 온다. 음악을 따라가 보니 어느 새 곡이 바뀌었다.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 흘러나왔다.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다음 곡은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명곡들을 들려 준다는 말인가!

음악의 진원지는 호숫가의 호프집이다.
훗날 친구와 다시 와서 꼭 시원한 호프 한 잔으로 은혜를 갚아 주리라. ^^
기차 시간이 다가왔지만 식사는 거나하게 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걸쳤으니. 하하.


만남 그리고 여행의 유익

새마을호에는 카페 열차가 있었다. 한 량 전체가 커피, 인터넷, 노래방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문득, <1박 2일>에서 카페 열차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묘하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미디어의 힘이다.
<1박 2일>에서 보여 주었던 여행지 중 마음에 드는 곳으로 떠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5시간을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려던 계획이었지만, 우연히 교대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는 여인을 만났다.
에너지 절약, 비용 절약, 시간 절약, 일석 삼조의 기회였다. 택시비를 나눠 내면 될 터이니.

우리는 동승했고 택시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경주에 출장을 다녀 오는 길이었고 건축일을 하는 분이었다.
택시비를 나눠 내기가 머쓱해서 그냥 내리시라고 했더니, 4천원을 건네 주신다.

나는 5천원, 그녀는 4천원. 서울역에서 온 것이니 저렴했다.
이것은 시너지인가? 연대의식인가? 그저 행운인가? 하하.
나는 만남이라 하련다. 살아가다 도움을 주고 받는 만남.

오래 지속되든, 그렇지 않든 모든 만남은 소중하다.
그 때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기에 나는 만날 수 있었고, 만남을 통해 배우거나, 배움을 나눌 수 있었다.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기회도 만남이 준 것이니 만남이야말로 소중하다. (내가 늘 친절한 건 아니다. ^^) 

헤어지기 전, 블로그 주소를 알려 주었다.
"전화번호를 달라면 오해 받을 테니 제 블로그를 알려 드릴께요.
서로 다른 직업 가진 사람 알아 두면 좋잖아요."

블로그에서 그의 반가운 댓글을 보았는데 댓글을 달기 전 사라졌다.
머쓱했는지, 실수인지 모른다. 그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욱 행복하기를 바란다.
기분좋게 헤어진 후 걷다가 지하철역사에서 쓰러진 취객이 있어 "집에 가셔야죠"라고 흔들어 깨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한참 쳐다 보며 눈에 초점을 맞추더니 "일행 있어요" 한다.
"정말이예요? 지금 열차 막차 시간 다 되어가요."
거듭 확인하고 갈 길을 간다. 술독으로 속이 아프지 말기를... 삶에서도 마음 아프지 말기를...

취객을 챙기는 여유가 생긴 것은 오랜만이다.
아무런 계획 없는 여행은 실속 없는 것인가, 하고 회의하려 했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
이렇게 걸어가다 멈추어 내 곁의 사람들을 둘러보게 만드는 여유를 안겨다 주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
                                  - 이문세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땐 떠나간대도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보다가
그대를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