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길이 꽤 피곤했다. 어젯밤 늦은 시각에 잠이 들었고, 오늘은 오전 9시부터 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일정은 일산의 모 출판사에서의 강연이었다.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따뜻한 유대관계로 진행된 강연이라 긴 시간의 강연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순간들이었다.

다음 일정은 오후 6시, 충무로에서의 모임이다. 집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했고, 동선은 비효율적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책임을 완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날은 내가 '자문위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그 단체의 1주년 기념행사였다. 평소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에 이번 행사만큼은 참석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피로감을 달래며 충무로로 향했다.

 

비전을 품은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단체의 비전은 대학 신입생들이 아름다운 20대를 살도록 돕는 것이었다. 자문위원이란 직함은 내 능력에 비하면 민망하긴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요청을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는 적당한 타협선이었다. 거절하는 것과 많은 일을 하는 것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인 셈이었다. 민망함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괜찮은 타협이었다.

 

2시간 정도 식사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계획이었는데, 모두들 밤을 새는 분위기란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 힘든 내게는 만나자마자, 밤을 샌다는 것은 고문과 같은 일이다. 더 있다 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 자체가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밤새 진행되는 행사를 의식해서인지, 조금씩 늦게들 도착했고 행사도 조금씩 지체되었다.

 

'식사만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이었고, 그러기엔 2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시계는 8시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 즈음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는 8시에는 일어난다는 최초의 계획대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준비가 거의 끝난 식사는 퍽 먹음직스러웠지만, 더 늦어지면 내일 일정에 지장이 될 것 같았다. 내일 오전의 강연을 위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피곤했지만,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유진 피터슨의 책을 읽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했고 강연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했다. 노트북과 6권의 책이 든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선릉역에 서서 떠오른 생각을 메모했다.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 교훈 하나를 얻으니 불끈 힘이 솟았다. 

오늘은 매서운 꽃샘추위가 불어닥친 날이다. 한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도 테헤란로의 밤거리는 차가웠다.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와 선릉역 사이의 테헤란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밤거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일렬로 늘어선 고층 빌딩, 밤하늘에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사무실 불빛, 가지런히 움직이는 자동차의 불빛들.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밤하늘의 어둠이 세상의 불의와 삶의 힘겨움을 모두 삼겨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의 눈이 낭만적 시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테헤란로의 풍광을 음미한 것은 찰나였지만, 느낌은 진했다. 다시 못올 여행지를 떠나며 그곳의 사람과 풍광에 보내는 시선처럼. 평온하고 충만한 느낌도 들었다.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릴 만큼.

 

필름을 되감듯 나의 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아침부터, 4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기독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고, 나는 하나님이 내 영혼에 하신 일을 나눴다. 마음 좋아 보이는 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편안함을 느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글 하나를 썼고, 몇 명의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내게 전화하신 한 분은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부탁을 하셨다. 그런 부탁을 하는 걸 보니, 그 분과 친해진 것 같아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모임에 한 번 와 달라고 세번째로 연락한 리더의 열정에 감동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누리는 짧은 독서 시간은 내게 기쁨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친구의 방문을 위해 정리정돈을 하고 잤다. 잘 잤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신이 허락한 재능으로 살고 먹으며,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 누군가와 대화하고 격려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활동을 하며 내 영혼에게 기쁨을 주는 것. 이 모든 일을 통해 신을 기쁘게 하고 나 역시 기쁨 넘치는 삶을 사는 것. 일상적인 하루 속에도 행복이 깃들어져 있다. 그것을 느낀 하루였다.

 

사이판에서 리노 photo by justi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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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소라 2009.03.15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성공의 삶을 살고 계시며 충분히 성공을 누리고 계십니다.
    내면세계에서의 성공의 가치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안다면 더욱 행복한 삶을 살게 되겠죠^^
    저희의 모임에도(현애, 은미, 소라)어서 오시게 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 보보 2009.03.16 2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일단, 진행상황에 대해 메일로 살짝 듣고 싶습니다.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

      여유있는 시간에 천천히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안 보내셔도 완전 괜찮은 일이지요~! ^^

  2. pumpkin 2009.03.16 0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바쁘셨던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시고..
    기쁨의 충만함을 느끼시는 선생님이 그려져..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테헤란로에서..
    마치 마지막인듯..
    진하게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모습도 함께 그려지네요...^^

    늘 일상속에서 의미를 느끼시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시는 선생님..

    그래서 우리 와우는..
    선생님을 그렇게 닯고 싶어지나봅니다..

    오늘은 푹 쉬시는 하루셨는지요...

    • 보보 2009.03.16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네요. 의미 없는 순간들을 살고 싶진 않네요~ ^^

      오늘 잘 쉬었냐구요? ^^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저녁엔 동료 연구원과의 약속이 있었는데
      그 분이 바쁜 일정으로 다른 날로 미뤄지는 바람에
      뜻밖의 저녁 시간이 자유로 주어졌습니다.
      집에서 <불후의 명곡>을 내리 3개를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또 다시 시차 부적응 생활이 부활하나, 싶어 긴장했네다.

      잠이 많아진 건가? 이상하네요. 자꾸 제 시간이 아닌 시각에 잠을 자니...

  3. 최우성 2009.03.16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희석 팀장님의 일상생활에 대한 글을 읽노라면 참 치열함이 느껴지네요.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랄까요. 지난 주 수요일 남산에서 함께한 아침의 대화는 저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만날 대화의 시간을 기대합니다.

    • 보보 2009.03.16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팀장님 오셨군요. ^^
      지난 주의 만남은 아주 근사했어요.
      좋은 곳에서 좋은 분과의 만남이 너무 짧아 아쉬웠지요.
      저 역시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4. 김혜진 2009.03.18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팀장님~일산 모 출판사 김혜진입니다~^.^
    시차적응 중이신 분을 이른 아침부터 모셔서
    강의를 부탁드리기 좀 죄송했었는데, '열강'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ㅎㅎ
    개인적으로 '책'을 통한 청년대학생들의 자기계발을 돕는 것이
    꿈이기도 해서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고민하고 있거든요.
    종종 찾아와서 인사드리고 제 고민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네요.
    봄꽃 가득한 4월에 뵈요~ ^.^

    • 보보 2009.03.18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하다니요? ^^
      스스로 부끄러웠던 일이지요.
      이미 정해진 일정인데, 제가 자기 관리를 못하여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지 못했으니까요.

      김혜진 팀장님의 비전은 제 관심사항이기도 하네요.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종종 이야기 나누며 비전을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 받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