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3절)

어디에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지혜롭게 물러나서 더 중요한 일을 찾아야 할 때는 언제인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는가?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은 그들을 피해 마게도냐로 계획을 변경했다. 
아마도 주님의 뜻을 살피었을 것이다. 그 뜻에 복종했을 것이다. 
혹은 잠시 기도한 후에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께 둔 자는 자유하게 된다. 
본질에 깊이 뿌리박은 사람은 비본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자유를 지닌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질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살아 있는 관계, 날마다 깊어지는 관계. 
내 삶의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 생활은 본질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뜻이리라.
미지근함은 현상이다. 현상에 드러나는 문제는 본질에 접근함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 큐티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내 안의 한 가지를 터치하려 하심을 느꼈다. 
난 그것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드리려는 것으로 타협하려 했다. 아..!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바울이 존경스럽게 느껴진 오늘 큐티다.
어쩌면 반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까, 는 좋은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반대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을 변화시켜 더 깊은 영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9절)


말씀 듣는 중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바울은 그를 안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바울은 침착했다. 바울이 말했다. "He's alive"
본문만으로는 유두고가 잠시 기절했다 깨어났는지. 정말 죽었다가 회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유두고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12절)

그들에게 위로가 주어졌다.
상상컨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확신케 되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더 큰 줄 아는 사람들도
위로와 흥분을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곳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서' 이 사건을 간증했을 것이다. 불미스럽고 불행했던 사건이 변화되었다. 축복의 사건으로.

2006년 어느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에 위로가 깃들어져 있음이 느껴졌다.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위로를 받았고, 회복과 용기를 얻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나의 강연과 글에도 위로와 희망, 용기를 깃들게 해 달라고.
  
이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는 독자와 청중들이 더 민감히 알리라.
유두고 사건을 보면서 오늘의 적용거리를 찾았다.
나는 작은 예수요, 작은 바울이 되고 싶다. 
내 주변의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 
이틀 동안 외로워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답답해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혹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친구, 후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오늘의 말씀을 살아내야겠다.  


[적용]

1. 할머니께 오랜만에 손 편지 쓰기
 (불쑥 교회에 나가시기를 권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2. 군 복무중인 동생에게 편지쓰기
(그 녀석, 한 번씩 보고 싶다.)

3. 선교중인 L 위해 기도하고 회신하기
(영적 성장을 갈망하고 있는 L이 문득 생각났다.)

4. 친구 K 에게 손 편지 쓰기
(친구야... 마음으로 널 계속 응원하고 있다. 오늘 그 마음을 전할께.)

5. 와우팀원 그에게 연락하여 식사하기
(편안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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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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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6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09.07.27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음에는 그리하도록 할께요.

      옆 동네에 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화번호를 누르는 일이 거의 없었던 저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먼저 전화를 하는 사람은 딱 한 녀석이네요. 허허.

      다음 번에는 달리 행동해 보도록 하지요. ^^
      늘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2. 2009.07.27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09.07.28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09.07.28 05: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의 글을 통해 나 역시 도전을 받습니다.
      긴 글을 쓰기까지 묵상과 임재하심의 체험으로 은혜를 누렸겠지요. ^^
      그 은혜를 나눠주어 고맙고, 괜히 기쁩니다.

      자주 당신을 생각합니다. ^^
      회사 생활은 어떠한지, 이직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하고 생각합니다.
      밥 한 번 먹을 때가 됐는데... 하는 생각도 함께 하지요.

      자주 댓글을 쓰지 않는 당신이기에
      오늘의 댓글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포스트 와우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와우입니다~! ^^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4. 전승연 2009.10.08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마음에 분노와 적대감을 가득 품은 하루였습니다.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