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일행들과 헤어지다

카잔 2009. 8. 18. 21:28

일행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10시.

일급(!) 호텔에서 나와 잠시 서성였다.


이제 몇 분 후면,

일행은 떠나고 나는 남을 것이다. 묘한 기분이다.

내일부터는 저렴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덤덤한 기분이다.


아마도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예상이 다 빗나가는 날이

더욱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여행자니까.


낯선 이곳에서 느끼고 성장할 테지만,

9일 동안 함께 했던 이들이 가면 한동안 허전할 것 같다.


처음 나의 생각은 호텔에서 헤어지는 것이었다.

공항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건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나 한 사람 빠지는 것이니 일행들과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싶었다.

머리 속에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만났던 가이드와 헤어졌던 장면이 떠올랐다.

가이드는 공항 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나를 따라와 주었다.

고마웠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떠나는 사람은 나 혼자였기에.

가이드와 나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헤어졌다고 해고,

우리 연구원들과는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렇기에 이별 장면을 짧게 하는 것이 일행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허나, 공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따라갔다 조용히 돌아오면 될 일 아닌가.

용기를 냈다. 공항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두 분이 물었다. 왜 공항까지 가냐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것 즈음이야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저 돌아오면 되는 것이니.

시내에서 헤어지는 것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자주 이렇게 감정이 합리적인 이유를 덮어 버리는 결정을 한다.

(이것은 나의 약점이기도 하다. 조금 부끄러운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선생님께

여행을 떠나는 제자에게 한 말씀을 해 주십사 하고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허나, 공항까지 간 건 참 잘 한 일이다.

이과수에 갔을 땐, 가이드가 공항 안까지 들어왔지만, 우리의 이별은 짧았다.

사실, 너무 짧았다. 아쉬울 만큼. 그래도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


공항 입구 주차장에서 헤어졌던 것이다.

더 함께 있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행들의 대화 주제는 '귀환'일 것이고,

내가 끼게 되면 '남은 자의 또 다른 여행'으로 주제가 바뀌게 될 것이기에.

그저 일행들이 편하게 귀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몇 명의 누나, 형들과 포옹을 하며 격려를 받았다.

좌 선생님이 "우리 세희도 한 번 안아 주라" "제일 세게 안아 줘라" 하신다.

쑥스러워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어찌 그걸 보셨을까? 하하.

여행 중 고마웠던 크기만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


공항으로 들어서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나는 9일 동안 우리 일행을 태워 준 운전기사 스탕코와 함께

다시 류블랴나 시내로 향하여 버스를 달렸다.

우리는 인사를 하다가 말을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말이 없던 순간에는 그도 나도 일행들 생각을 했으리라.


이렇게 연구원들과 함께한 여행은 끝이 났다.

5기 연구원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음은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 날 밤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할 기회가 있으면 용기내어 한 두 마디 하기도 했다.

내 생각이 옳은 건 아닐지라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전해졌다면 좋겠다.

아쉬움이 덜어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었다.


최고의 장면 몇 가지를 꼽아본다.

- 자다르와 스플리트의 교회 종탑 위에서 보낸 두 시간

- 마지막 날 밤을 류블랴나의 풍광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즐긴 것

- 선생님과 아드리아 해를 헤엄쳤던 짧은 시간

- Bol 해변에서 여러 연구원들과 함께 바다 보트를 타며 놀았던 시간

- Supetar 선착장에 서서 5분 동안 이승철 노래를 들었던 순간

- 나폴레옹 협곡을 지나 어느 계곡의 매우 차가운 물에서 헤엄쳤던 일

- 꼬불꼬불한 Vrsc (?) 패스를 버스를 타고 지났던 일


아! 그리운 날들~!



- 여덟째날 (8월 13일 목요일)

공항에서 일행들과 헤어지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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