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Live 여행이 시작되다

카잔 2009. 8. 21. 01:54



- 여덟째날 (8월 13일 목요일)

홀로 남겨진 류블랴나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내렸다.

아마도 스탕코(운전기사)가 다운타운에 내려 주었으리라.

그러니 시내 중심 어딘가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도로에는 BUS 전용 차로를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다.

알 수 있는 문자라서 반갑다.

건물에 쓰인, 이정표에 쓰인 다른 모든 글자는 낯설다.

'Ljubljana(류블랴나)'라는 글자만이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건물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매혹적이고 고독하다.

매혹과 고독은 내 여행을 설명하는 좋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혹은 일상의 여행자들에게는

나의 유럽 여행은 매혹적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많은 부분 매혹적이다.

허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여행자(나)는 지독히 고독할지도 모른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번호를 확인한다.

1번, 3번,

어떤 버스도 우리 집으로 가는 번호는 없다.

내가 아는 곳으로 가는 버스도 없다.

아는 곳이 없는 곳, 아는 사람도 없는 곳,

나는 이 곳 류블랴나에 서 있다. 나는 여행자인 것이다.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사방이 알려준다.


이.제. 나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것은 삶을 살아가다 머리가 커졌을 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은 나의 소원을 묻는 것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니?"

대답할 수 없었다. 류블랴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길 가에 내려 둔 배낭을 바라본다. 4개의 가방들.

내가 들고 온 가방 2개, 일행이 남겨 준 음식이 든 가방 2개

저 2개의 가방에는 그들의 애정, 선생님의 배려가 들어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동양인 보따리 장수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보따리 장수로 보이든,

낯선 이방인으로 보이든,

확실한 것은 나의 배낭여행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가야 할 곳도, 머물 것도 정해지지 않은

살아 숨쉬는 Live 배낭여행 말이다.


배낭을 들쳐 짊어졌다. 무겁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여행자에게도 해야 할 일은 있다.

무작정 걷는 것. 걸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가방이 무거워 오래 걷지 못하고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큰 나무를 찾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늘을 줄 것이다.

문득, 나도 누군가가 쉴 만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싶다,

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짓게 될 일은 하지 않고 싶다는 등의 생각이 들었다.

쉴 만한 그늘을 선사하려면 먼저 힘껏 자라나야 한다. 큰 나무가 되어야 하니.




내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는 관심 없다.

나무는 자기 종자만큼 클 것이고

나는 내 그릇만큼 클 것이다.

다만, 내가 갖고 태어난 그릇을

다 활용하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다.

금그릇이면 좋겠지만 은그릇이어도 괜찮다.

아니 철그릇이어도 좋다.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어떤 그릇이든지 나는 깨끗한 그릇이고 싶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 건넬 수 있을 테니.


누군가에게 바람 한 점 주기를

물 한 모금 주기를

그런 삶을 꿈꾸어 본다.

이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내가 이 벤치를 택한 건

큰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왠지 나는 오래 앉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해가 이동한대도 내가 따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던 게다.


이런 생각들로

집도 없는 나의 형편도, 배고픔도 잠시 잊었다.

몰입은 이런 것이다. 형이학적인 문제들을 잊게 만든다.

자신은 창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소모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몰입은 균형을 곁들일 때 더욱 멋진 것이 된다. 어려운 일이다.


현실로 돌아온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어딜까?

저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배가 고파오니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하자.

햇반과 참치캔을 땄다. 여행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하하.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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