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이모네 고깃집

카잔 2010. 1. 20. 09:32

지난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마포에 있는 이모네 가게로 갔다. 이모는 고기 집을 하는데, 친구와의 동행은 처음이다. 이태 전 가을에 군 복무 중 외출 나온 동생과 함께 이모네서 고기를 먹었고, 지난 해 겨울에는 이모 아들이 결혼해서 이모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전에는 왕래가 없었으니 최근에는 그나마 자주 뵌 셈이다. 이리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내가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살가운 조카가 아님을 알리고 싶어서다.


그런데도 나는 고기 집 이모가 무척 편하고 좋다. '이모가 편안하고 좋은 것은 당연하지. 엄마랑 다른 없는 사람이 이모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여동생이고, 서로 대구와 서울에 살았으니 거리도 조금 멀었다. 최근에 두 번 뵌 것이 성인이 된 이후의 첫 만남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결혼식 등 가족 잔치 때 뵈었지만, 온 가족들이 함께 모였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우정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쌓이지 않는다.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함께 떠들어야 쌓이는 법이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여서 잔치에 참석하여 축하하는 것보다는 함께 밥 한 번 먹는 것, 이야기 한 마디 나누는 순간에 정을 느낀다. 내가 이모에게서 느끼는 따뜻함도 손을 붙잡고 나누는 한 두 마디의 대화였다.

 

친구와 만나 이모네 가게로 들어가기 전, 깜빡 잊었던 걸 떠올렸다. 나는 지갑을 열어 들여다보았다. “준길아, 잠깐만! 저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자.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 카드결재는 거의 불가능이야. 안 받으실 게 뻔하거든." 모처럼만에 찾아뵈었으니, 고기 값을 꼭 내고 싶었다. 현금으로 책에 끼워서 드리든, 이모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든지 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의 마음을 전혀 고려치 못한 치기 어린 생각일 뿐인데, 나는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린 마냥 뿌듯했다.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랑을 내놓으셨다. "어, 지원이 왔어? 뭐 먹을래? 일단 쇠고기부터 순서대로 내 줄게. 많이 먹어라." "네. 이모. 그럼 안창살부터 먹을게요." 안창살에 이어 목살 2인분이 나왔다. 기본 요리로 찌개와 계란찜 그리고 공깃밥 두 개까지 먹으니 배가 불렀다.


고기 집에서도 풀코스가 있나 보다. 이모가 물었다. “마지막은 오리구이로 할래?” 사실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모의 권유에 오리구이까지 먹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이모의 마음을 한껏 받아들고 싶었다. 고기는 맛났다. 내가 먹은 목살 중 최고의 맛을 경험했고, 안창살의 부드러움이 입 안에서 녹을 때마다 ‘캬’ 소리가 났다. 소주를 마신 뒤의 소리가 아니었다. 친구도 연신 고백한다. “맛있네.”

 

2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사이다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일어났다. "이모, 나 부탁 하나 드려도 돼요? 이모 들어 주실 거죠?" 갑작스런 말이라 당황하실 만한데도 주저함도 없이 선뜻 대답하셨다. "그래. 말해. 이모가 들어줄게." "들어준다 하셨으니까 말할게요. 오늘 고기 값 계산하고 가려고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요." 다음에 또 온다는 말이 비장의 카드일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혼만 났다.


“아이고, 지원아. 그러는 거 아니야. 이모가 먹이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래.” 이모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서운하실 것도 같았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았다. 내 누이의 아들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을 상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음이 느껴졌다. 돈을 내 주머니로 집어넣고, 준비한 두 권의 책을 전해 드리고 나왔다. 이모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쓴 책이다.

 

친구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다시 엄마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세상이 안전하고 포근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가 존재하고, 엄마의 없을 때면 이모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생각을 체험한 날이었다. 내가 고마워함을 이모에게 전하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다. 그저 마음을 전함으로도 기뻐하실 것 같다. 어쩌면 안타까워하실 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때 엄마 잃고 외롭게 컸는데, 작은 일에도 저렇게 좋아하네.’


이모는 성정이 따뜻한 분이셨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일하는 모습과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하나같이 서로를 정겹게 대했다. 사장님의 조카를 살뜰히 챙겨준 아주머니도 계셨다. 그러니 이 날 이모의 대접은 자연스럽고 ‘작은 일’에 불과했으리라. 가까운 거리라면 자주 갈 텐데 그게 참 어렵다. 선릉에서 마포구청, 집에서 출발하면 지하철로 1시간 남짓 거리이니, 사실 거리보다는 나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숫기 탓이 크다. 자주 찾아뵈어야 이모랑 더욱 친해지고, 언젠가는 고기 값 계산도 허락하실 텐데…. 이 역시 나만의 착각이려나?

 

집으로 돌아와 플래너를 펼쳤다. 날짜를 꼽아보기 위해서다. ‘언제 또 한 번 갈까?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일단 손 편지 하나는 꼭 써야지. 선물은 자문을 구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구하지?’ 나 혼자 하하하, 웃었다. 기분 좋은 고민이다. 생각해 보니, 고기 집 이모의 언니들도 참 따뜻한 분들이다. 만날 때마다 따뜻한 눈 맞춤을 주고받거나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눈다. 친지 분들이 많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가운 인사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 돌아가신 엄마의 사촌 여동생들인데, 이 집안에 흐르는 좋은 가풍인가 보다. 사촌 이모를 만나면 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돌아가신 엄마의 품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데,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엄마, 잘 계시죠? 엄마를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그래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려고 이렇게 엄마 동생들을 만나게 하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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