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훌륭한 1인자 & 위대한 2인자

카잔 2010. 2. 25. 09:56

이승훈은 '행운의 금'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을 땄어도 축하할 일이고 장한 일이다.
세계 2위라 해도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란 말인가!
그러나 1위로 골인한 크라머의 실격 소식이 전해지고
이승훈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감격적이다.

동시에, '불운의 주인공'에게 관심이 간다.
아뿔싸! 그는 코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실격 되었다.
10,000m 경주에서는 인라인, 아웃란인을 번갈아 타야하는데
순간의 착각으로 코스를 놓쳐 버린 것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네 인생이었다.

*

스포츠에서 Rule 을 지키지 못한 메달은 박탈 당한다.
인생에서도 Rule 을 지키지 못한 영광은 빛이 바랜다.
스포츠만큼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은총 주기를 즐기는 신이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살아가다가 받게 되는 크고 작은 충격은
'지금 당장, 당신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변화하세요!"라는 표지다.
변화의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아! 괜찮구나'라는 표지로 잘못 인식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 찾아든다. 그가 깨달을 때까지.

그가 뒤늦게 깨닫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여러 번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신이 지속적으로 그런 기회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자신은 잘 사는 삶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쌓은 돈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의 승리만큼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나는 게임의 규칙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참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여 스스로의 인생 철학을 세워볼 일이다.

자기 인생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덕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쫓아가라는 말이다.

정의와 덕(悳)을 지켜나가는 사람의 인생은 빛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금씩 자기 영혼의 빛이 희미해져간다. 
밤하늘의 별빛에서 죽은 물고기의 어둔 빛으로 바뀌어간다.
내가 사탄이라면, '조금씩 조금씩'의 전략을 쓰겠다.
사람들이 '이번 한 번만' 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즈음 하면, 크라머의 얘기보다 훨씬 많이 진전되었다.
한 가지만 정리하고 다시 크라머 얘기로 돌아가자.
최고, 최대를 추구하다 보면,
정의와 도덕이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의를 벗어난 최고, 최대의 인생은 예상만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지금까지 다소 일반적인 인생 이야기를 했다면,
크라머에게서 배울 점을 생각해 본다.
마치 크라머가 잘못한 것처럼 글을 써 오게 되었는데,
사실 이번 실격은 크라머 선수가 아닌 코치의 잘못이었다.
크라머와 2위 선수와의 시간차를 확인하다가 순간 착각한 것이다. 

다음은 연합뉴스 박성진 기자의 상황 보도다.
"경기장 25바퀴를 도는 10,000m 종목에서 선수들은
같은 거리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코스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탄다.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다가 잘못된 코스에 접어들지 않도록
코치들은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에게 코스를 지시한다.

그날 경기에서 크라머는 8바퀴를 남겨 둔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들어가려다
켐케스의 지시를 받고 황급히 인코스로 바꿨다.
켐케스가 인코스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잘못된 진로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인코스를 두 번 탔다는 이유로 크라머는 금메달을 딴 이승훈(21.한국체대)보다
4.05초 앞선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당하고 말았다.

켐케스는 8바퀴를 남겨 둔 시점에서 크라머에게 이승훈과의
시간차를 알리려고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 선택을 두고 망설이던 켐케스는 크라머와 함께 레이스를 펼치던
이반 스코브레프(러시아)가 어느 코스를 타는지도 쳐다봤다.
레인을 바꾸는 교차 구간 시작 부분에서 미리 코스를 바꿔 인코스로 치고 들어온
스코브레프를 본 켐케스는 잘못된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때로는 엄청난 충격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닥치기도 한다.
자기 실수나 잘못이 아니기에 더욱 억울하고 화가 난다.
크라머는 결승선 골인 직후 실격당한 사실을 알고 격분해 고글을 집어던졌다.
켐케스 코치도 한탄과 자책을 거듭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이런 말 자체가 크라머에게 위로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잘못했다는 사과가 아니라, 금메달의 놓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일 테니.
인생을 되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충.분.히. 분노를 표현하고, 그를 용서함으로
과거에 집중된 자신의 관심과 에너지를 오늘로 되돌리는 일이 최선이다.
Big Picture Mind 를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언론이 전한 크라머의 사건 후 모습을 이렇다.
- 절망 속에 하루를 보냈다. 화를 냈고, 코치에게 말도 안 했다. 
- 다음 날, 훈련장에 나타난 크라머는 지난 일을 깨끗이 잊은 표정이었다.
- 이렇게 말했다. "켐케스 코치와 함께 해온 지난 몇년은 너무 좋았다.
                        그만한 일로 누군가와 떨어질 수는 없다."

그의 넓은 모습이 금메달 감이었다. 그는 말한다.
"켐케스 코치와 대화를 재개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문제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화를 내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아마추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크라머가 품은 다짐이요, 마음 속의 결론이다. 멋진 모습 아닌가. 24살 청년인데.
허나 그가 여느 사람과 같다면, 현실 속에서는 당분간은 괴로움이 떠오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더 큰 선수가 되는 자양분으로 삼아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승훈 선수는 금의 맛을 알았으니, 크라머의 위대한 라이벌이 되어 주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랫동안 훌륭한 1인자와 위대한 2인자의 모습을 보여 주길.

크라머와 함께 지난 5년간 동고동락해왔던 켐케스 코치.
그는 크라머가 세 차례 세계선수권대회 타이틀과 4개의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
그리고 이번 올림픽 남자 5,000m 금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켐케스 코치야말로 그의 말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날'을 맞았으리라.
할 말이 없다. 그저 힘내시라는 말 밖에.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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